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좋아한다는 썰이 있다.

원래는 "가무에 능하다" 라는 표현이 맞고, 일제치하에 한국인의 근면 성실성을 가려 보고자

가무 앞에 음주를 붙여 왜(倭)분들께서 퍼뜨리셨다는 썰도 있다....-_-;

가무에 능하다.....

우리의 선조들께서는 풍류라는 또 하나의 삶의 멋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그것은 멋에 머무르지 않고 철학에 이르렀었고....

풍류(風流)라는 것은 속된 것을 떠나 풍치있고 멋있게 노는 것 아니 운치있는 일, 그 자체를 일컫는군...

세(世)는 속되고 탈세(脫世)는 안 속되다는 것까지 고개를 끄덕이긴 내키지 않지만,

번잡한 일상을 떠나 맘 맞는 벗과 함께 자연경관 좋은 곳에서,

한 잔 술을 나누며 살고 죽는 것과 변치않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일은

입을 가진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다.

하찮은 인간이 위대한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일이다.

비록 그 존재는 미약하지만 그 정신만은 자연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요즘은 직접 몸으로 들었다 놨다 할뿐만 아니라 자연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니.....-_-;

요즘처럼 과학이란 검과 방패로 무장한 듯 착각하는 시절도 아닌,

오랜 옛날 그 시절에는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대단한 인간의 단계이다.

먹고 사는 일을 떠나 그러한 단계에 이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요즘처럼 플라이 낚시를 한답시고 가끔 인적 드문 자연을 찾다 보면

봄이며 가을이며, 좋은 시절에 굳이 먼 곳까지 자리를 깔고

대취(大醉)토록 놀았던 선조들을 이해할 것도 같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의 낚시 문화라는 것도 어쩐지 풍류의 한 조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시 쓰고, 난 키우고, 돌 줍고 하는 취미 뿐만 아니라, 낚시 역시 자연에 가까워 지는 그 자체로

풍류이었던 것이다.

비록 손에는 비린내 묻히는 일이 낚시지만 우리의 선배들은 낚시를 풍류 삼아 즐기신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웬만큼 낚시를 한답시고 하는 낚시인들은

요즘도 옛사람의 그런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다.

혹은 닮으려 하고 있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고....

자연을 즐기고 아끼며, 그 속에 내가 있음을 깨닫고 혹은 잊고,

인간은 다시 자라게 된다.

자연은 우리에게 처음에는 입으로 먹여 주고 다음에는 마음으로 먹여 주는 모양이다.

최근에 일본의 플라이 낚시 소식을 들었다.

기(技)의 극한으로 달려가는 낚시의 모습, 플라이 낚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낚시가 그러한 것 같다.

물론 눈에 띄는 모습만 보이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살아온 자연이나 문화와 역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모양이다.

서구의 플라이 낚시는 오랜 역사를 통해 논리를 찾아 다투는 이(理)의 낚시 모습인 것 같다.

물론 그들은 그들의 역사답게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 익숙해져 보이긴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짧은 역사에 비해 겉 늙은 어린애 마냥, 한쪽 구석에서 양쪽을 향해 번갈아 가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낚시터로 돌아가서는 어느새 "하하! 내 낚시나 즐겁게 해야지....."  이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나 우리는 그들처럼 기술이나 이치에 치중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과 환경보호라던지 캐치엔릴리즈 등으로 낚시 자체의 의미에 대한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우찌 보면 이 또한 선입견 같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플라이 낚시를 시작하기만 하면

붕어빵 틀에 찍혀 나오듯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모양이다.

이 시대의 또다른 사대(事大)를 보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결과는 내 맘에 드니 혼자 만족이다....^^;

나는 이 역시, 옛사람의 풍류 문화에 기인 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어차피 역사의 길이를 뒤집을 수 없고, 남들처럼 파고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플라이 낚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 풍류 낚시로 자라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이 분야라면 그 복잡한 플라이 낚시의 기술이며, 이론이며, 경험을 전혀 모르는

대나무 꺽어,  피라미를 놀리는 꼬마에서부터

일평생  붕어 만을 낚아 온 평범한 시골 한구석의 촌로에 이르기 까지 모두 나름대로 일가견을 숨겨 있을 테니까....

체질에 맞아 보인다는 것은 순전히 나만의 경우인가?  

어! 이러고 보니 게으름을 가리는 가면이 또 하나 생겼군.

나는 언제 멋지게 낚시 한번 해 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