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낚시 이외의 취미
낚시꾼들이라 하면 보통 낚시라는 한 가지에 빠져드는 수가 많다.
실제 낚시에 미치다 보면 낚시대를 접기 전 까지는 딴 거에 신경 쓸 틈도 없다.
가끔은 먹고 사는 생활이 오히려 귀찮아 질 정도니까...-_-;
원래 나는 취미가 좀 많은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도둑질도 배워두면 쓸데가 있다 라는 제멋대로의 생각으로 이것저것 많이 뒤적거린 편이다.
제대로 파고 든 건 몇 개 없으니 모두 허사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의 균형을 갖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고 혼자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낚시에 있어서도 무작정 빠져서 허우적 대지 않으려고,
요즘도 가끔씩 딴 짓(^^;) 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딴 짓 속에서도 다시 낚시로 엮여서 생각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혼자 씨~익 웃고 만다.
내가 가진 많은 취미 중에서 요즘도 가장 가까이 있는 것 중의 하나는
AV로 요약되는 오디오와 비디오, 즉 음악과 영화감상이다. 그것도 집에서.....-_-;
지금 생각해도 다분히 사치 스럽다....
집을 떠나 내 돈으로 내 밥을 사먹는 내가 되면서 돈 쓰는 재미를 처음 익힐 무렵,
한 날, 갑자기 오디오를 구해서 제대로 음악을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얼마되진 않았지만 먼 훗날(장가??)을 위해 들던 적금을 버럭 깨어서는
용산 전자상가로 갔다. 잡지와 선배의 조언을 대강 들은 다음,
혼자 낯선 가게를 뒤지면서 맘에 드는 오디오를 찾아 나섰다.
몇 시간을 돌아 다닌 끝에 가게들이 문을 닫을 무렵,
나름대로의 선택으로 구입해온 중고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CD player 한대.....
때마침 헤어진 옛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달래려 했는지 모르지만, 한 동안 맘껏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_-"
그리고 사는 곳은 좁은 단간 방이었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돌비프롤로직을 해본 답시고,
남은 돈으로 AV전용 앰프와 서라운드 효과를 위한 나머지 3개의 스피커를 구입했다.
가만보니 나의 플라이 낚시 시작하던 것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잠시 그 때를 회상하면.... 잡지와 영화를 보고, 정보를 대강 얻은 다음,
부산시내 수많은 낚시가게들을 뒤졌다.
특히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 쪽에는 어선을 위한 전문 낚시가게들 비롯해서
수 십개들의 점포가 모여 있었다.
가게 마다 들어서서는 혹시 플라이 낚시를 아냐고? 계류에서 하는 가짜미끼 낚시를 아냐고?
모두다 그게 뭐하는 낚시냐고 반문을 해왔지만,
겨우 한 가게에서 계류용 가짜미끼 낚시대가 있다고 해서 보여 준 건
아직도 갖고 있는 계류 송어용 루어대 였다.
난 그게 플라이 대인줄 알았고 덜렁 사버렸고,
플라이 라인을 볼 수가 없어서 물에 뜬다는 굵고 뻣뻣한 노란 형광색 모노필라멘트 라인을 구하고,
같은 릴을 구할 수 없어서 클로우즈드 페이스 릴 타입(?)의 스위치를 누르면 자동으로 라인이
풀려나가는 자그마한 스피닝릴을 구했다.
; 해보면 알겠지만, 이걸로도 캐스팅이 된다...-_-;
손으로만 하는 캐스팅도 있는데 뭐...
그리고 또 다른 수 십개의 가게를 뒤져서 부두 옆의 조그만 가게에서
전에 일본에서 잘 못 들어온 게 있는데 혹시 이것 아니냐고 보여준 게 바로
나에게 첫 산천어를 낚아 주었던 머들러 미노우 훅세트 였다.
스티로폴을 붙인 종이에 8번부터 14번싸이즈까지 5개가 나란히 꽂혀 있던 한 세트.....
아쉽게도 지금은 하나의 훅도 남아 있지 않다....
앗! 또 역시 잠시 샜다. 나도 모르게....-_-;
그봐라 역시 모든 길은.....다시 돌아가서,
그때 구입한 오디오 장비들은 결혼 후에도 그리고 최근에 이사한 오늘까지 아직 잘 쓰고 있다.
물론 이젠 낡은 장비라서 남들이 별 가치를 쳐주지도 않는다.
최근에 유행한다는 돌비디지탈을 해보기 위해 몇가지 추가 구입을 하긴 했지만,
낚시에서 더 이상 장비 타령을 하지 않듯이, 오디오도 바꿈질을 하고 있지 않다.
무언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이 오디오 매니아들도 보통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미묘한 음질의 차이를 나름대로(?) 구분하고 분석해가며 장비를 바꾸고, 전선을 바꾸고, 위치를 바꾸고,
심지어 방의 인테리어를 바꿔가며 자신만의 음질을 찾아 나간다.
물론 그들도 공식적인 정답이 없다. 자신의 확신 마져도 흔들릴 때도 있다.
낚시도 꽤 비슷하지 않던가?
장비를 바꾸고, 미끼를 바꾸고, 채비를 바꾸고, 기법을 바꾸고....
그래도 정답은 없고, 한번의 기쁨과 또 한번의 좌절 속에 그렇게 취미 생활은 깊어 간다.
낚시처럼 오디오 취미도 고가의 장비에 현혹되어 원색이 바래지는 경우도 간간히 있다.
남에게 과시할 일이 아니고 자기만의 영화와 음악 감상을 중요시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은
낚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웬만큼 오래 오디오 취미를 하신 분들을 보면 갖추고 있는 장비보다
소유하고 있는 소스, 즉 LP 나 CD, 그리고 요즘의 DVD 같은 S/W에 더욱 애착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시간 시간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미 CD 세대라 CD만을 모았는데, 한 장 두 장 맘에 드는 것만 골라 찬찬히 구한 게
벌써 300여장이 훨씬 넘는다.
실은, 정확하지 않다. 요즘은 못 세어 봤다...-_-;
한 구석에 쌓여 있는 음반들을 뒤져가며 음반을 구할 때의 추억마저 읖조리며,
뜻밖의 반가운 한 장을 찾아 CD 트레이에 얹고, 노곤한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은
물가에 서 있는 한 때 마냥 내겐 또 다른 천국이다.
가만보니 음악 취향도 낚시 취향이랑 닮아 있다. 주인이 한 녀석이니 당연한 일이 겠지만....
나의 CD에는 유행하는 가요나 팝송 이런 건 거의 대부분 없다.
그냥 오다가나 맘에 드는 한 곡, 표지가 멋진 것으로 한 장, 특이한 음악이라서 한 장, 먼나라 민속음악이라서 한 장,
이렇게 구하다 보니 남들이 보기엔 이상한 CD 들 뿐이다.
주로 듣는 건 비교적 조용하고 잔잔한 독주, 독창 위주로 듣는다. 국악이 많은 편이다.
남들이 즐긴다는 서양 클래식의 경우에도 주로 무반주 솔로.....
어쩐지 대편성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속이 좁은 나는 소화가 되지 않아서 피하는 편이다.
언더 플라이꾼을 주창하는 내 모습이나, 특이한 바늘이나 기법을 좋아하는 내 모습,
유행은 벗어나 플라이 낚시에서도 반골(反骨)을 해보고 싶은 내 모습.....
상도(上道)는 특이하지 않다고 하더마는....
아직은 삐져 나오고만 싶어하는 어린 모습이다.
당당하게 큰 물줄기로 걸어 들어가도,
나를 유지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자연히 내발로 걸어들어 가겠지....
낚시 이외의 취미를 갖는 것도 낚시꾼에게 그럭저럭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마 오디오 매니아라면 낚시도 도움이 된다고 했겠지...^^
가끔은 이렇게 비교를 해가며 회상도 젖고, 나도 돌아 보고, 지금의 위치를 알려주기도 하고....
아마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각자의 깊이와 넓이를 늘릴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맘에 여유가 있어야 되겠지만....
낚시꾼들이여, 가끔은 딴 세상도 살아 보자.
혹시 또 아나? 그러다 보면 저절로 여유가 생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