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낚시 안 간 날,
지난 석가탄신일, 근로자의 날에는 낚시를 안 갔다.
작년 이 날엔 어딘가 갔던 것 같은데....
주중에 어정쩡하게 낀 휴일에는 보통 가까운 한강을 나가는 게 보통이건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집사람에게 애기 데불고 에버*드에라도 다녀오자고 말을 뗐다.
원래는 금강 쪽의 눈불개를 다시 보러 갈 계획이었지만,
맨날 주중에는 낚시갈 계획 짜고, 주말이면 저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진 않더라도
늘상 한강이라도 한 두 시간쯤 보내고 오기 일쑤라,
맞벌이로 벅이찬, 아내는 최근 상황은 폭발 직전이었다.
웬만큼 이해심은 넓은 아내이지만, 서울과 수원을 매일 차로 출퇴근하는 요즘 형편에선
입으로 말은 안해도 짐작이야 충분하다.
이번엔 내가 먼저 자수, 자폭, 자해...? 아무튼 그런 걸 한 셈이다.
멋진 봄날 휴일, 놀이 공원에 사람 모이고 차 막히는 건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지만,
평소 아내가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벌써 여러번 다닌 곳이라 별 다른 감흥은 없겠지만,
아이가 조금씩 자라면서 에버*드 안, 동물원의 동물들과 노는 일은 나도 궁금한 일이다.
낚시꾼 애비로서 잘 놀아주지는 못할 망정 틈나는 대로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물고기, 동물친구 하나 씩 사귀게 하는 일은 꼭 해주마고
혼자 약속했기 때문이다.
출발 전날, 몇 군데 집 근처의 가게를 뒤져 이미 귀해져 버린(?) 건빵을 두 봉지 샀다.
이 정도면 넉넉하겠지....
웬걸 당일날 건빵이 모자라서 혼났다.
에버*드에 도착한 식구는 바로 동물원엘 갔고, 제일 먼저 본 녀석이 북극곰,
내가 던져주라고 건내준 건빵을 아이는 먼저 자기 입에 넣었다....-_-;
다음 건빵에서야 아빠의 시범을 보고, "이야!" 기합과 함께 발 앞으로 떨어뜨린다....-_-;
그 큰 덩치에 안 맞게 건빵에 환장하는 북극곰 녀석들이란....-_-;
다음엔 암탉과 병아리 우리,
적당한 가루로 뽀셔둔 건빵조각을 내 손에 얹어두고 아이는 고사리 손으로 조금씩 집어
병아리들에게 뿌려준다. "이야!", "이야!"
병아리가 병아리를 먹이는 군....-_-;
꼬마들이 유별나게 잘 먹으니 아이는 그치질 않는다. 벌써 건빵 한 봉지가 다 줄었다.
이번엔 검은 염소와 흰(아마도...-_-;)양들,
숫제 가방을 뒤지며, 끝까지 따라와 가진 건 다 내놓고 가라는 투다.
아이의 손에 쥔 건빵을 악착같이 뺏어 먹는 흰 양들....-_-;
아이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건빵을 놓치지 않는다....-_-;
아이의 손에서 건빵을 강탈해 가면서나, 내 손 위의 건빵을 줏어 먹을 때에도 한가지 특이한 것은
입을 벌려 덥썩 무는 게 아니고, 가지런한 이를 보이며,
조심조심 건빵만 찾아 무는 것이다.
마치 늙은 개가 과자 받아 물듯이....
; 어릴 때의 강아지는 과자를 주면 손 채로 문다. 조금 자라야 손과 과자를 구별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관광객에 의해 학습된 녀석들이겠지만,
밥주는 이의 정성(?)을 헤아리는 녀석들의 정성이 갸륵하다.
아이를 통해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 외에 남의 입에 뭔가를 넣어 준다는 건
아이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물론 본인은 정작 뭐가 뭔지 모를테지만....
더군다나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지나가는 동물에게 뭔가를 먹여 보고,
그걸 즐긴다는 건 꽤나 의미심장한 일이다.
특히 친구랍시고 여기는 고기들의 입에 넣는 척하면서 도로 빼내는
나같은 낚시꾼 어른에게는 더욱 찔리는 일이고....
지나가는 비둘기 한 마리,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에게 햄버거를 나눠주던(나말구 그런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정작 그렇게 즐거움을 주는 고기에게는 밥 한 끼 대접하지 않는 게 낚시꾼이었던가?
최근에 읽는 플라이 책 중에서 한 작가는 물론 실험과 data를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즐겨 찾는 계류의 고기들을 건강하고, 살찌우기 위해서 양식 사료를 구해다가,
낚시 후에 먹인다고 한다. 아마 우리들이 바다나 민물의 미끼 낚시 후에 남는 미끼를 아낌없이
고기가 모인 곳에 뿌리고 가는 버릇도 유사한 내용일 것 같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의도 있는 행동이지는 않다.
나도 그런 생각은 해봤지만 뭔가 밑밥을 뿌린다는 관념에 묶여 실행해보지 못했다.
식구들과 돌아 온 후, 나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강준치가 먹을만한 양식사료를 찾아 봤지만,
그럴듯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정성이 부족한가 부다....-_-;
아직 포기하지 않고 틈틈히 찾아 볼 작정이다.
따뜻한 밥 한 공기는 아니더라도 다만 건빵 한 조각일지라도....
놀러 가서는 또 엉뚱한 생각에 정신이 팔렸다.
결국 낚시 안 간 날도 마음으로는 낚시하다 돌아 왔으니,
역시 식구들에겐 좀 찔리는 하루다.
그리보면 내 맘 속에
하루라도 낚시 안한 날이 몇이나 있던가....
밥 먹고 살 일을 그리 했으면....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