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인터넷과 취미
지난 휴일, 동생과 함께 금강을 다녀왔다.
작년에 한번 눈불개를 보러 다녀온 이후, 올해 다시 찾아가는 금강의 신탄진.
두번째 길이지만 여전히 낯설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달려가는 중에 핸드폰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marcco님이십니까?"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중부지역의 謀 플라이낚시 동호회의 회원이시다.
이 분의 얼굴을 뵌 적도 없고, 게시판의 답글을 주고 받거나, 메일을 교환한 적도 없다.
단지, 각자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서로의 글을 읽거나 아이디를 통해
대략 알고만 있을 뿐.....
그런데도 그 분은 새벽 일찍 대전에서 차를 이끌고 오셔서
내가 도착할 신탄진 역에서 아침을 그른 채 나를 기다리셨다.
그리고 계획한 자신의 낚시를 포기하고, 식구들과의 약속시간을 넘겨가며,
하루종일 낯선 낚시꾼을 이 곳, 저 곳으로 안내해가며, 한 번의 손 맛이라도 보일 요량으로
연신 마음을 쓰신다.
오후에는 또 다른 한 분께서 나를 인수 받으시고 다시 같은 노력을 반복하신다.
돌아가는 차편까지 챙기시며 편안한 나의 귀향을 염려하신다.
이 분 물론 처음 뵙는 분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설 무렵엔 순전히 내 실력 탓에 못 본 고기를 오히려 미안해 하신다.
황송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뒤로 한 채.....
같이 간 동생이 올라는 길에 묻는다.
"형! 플라이 낚시하는 사람은 다 이러신 건가?"
동생도 단지 같은 낚시인이라는 이유하나로 낯선 이에 대한 황송할 만큼의 친절에 적잖이 놀랬나 부다.
"응? 아냐, 나 같은 사람도 있잖어...-_-"
나는 사실 그렇다. 누군가 가끔씩 샛강에서라도 보자고 메일을 보내오는 일도 있지만,
내 일정이 안 맞으면 잘 안 나갔다. 약속했다가 내 사정이 생기면 안 나가기 일쑤다.
게으른 정도가 아니라 이기주의에 가까운 지 혼자 낚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조행을 빌어서 다시 한번 깊이 반성할 기회였다....-_-;
위와 같은 놀라운 조행 뿐만아니라 나는 이 플라이 낚시 홈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아무런 댓가 없이 낯선 분들에게 타잉재료를 전달해 받거나,
귀중한 정보와 data를 얻는 등의 일이 많았다.
물론 나도 노력은 했지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정도의 호의에 늘 감사할 뿐이다.
인터넷이 주는 익명성 때문에 여러가지 불쾌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비슷한 생각과 취미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된 커뮤니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은 오랫동안 가까운 이웃이나 일가친척 간의 그것과 비교될 정도다.
미래는 소수 커뮤니티 중심으로 단결되어 별도의 생활영역을 가지게 된다고 하는 예측이 있다.
그리고 그 현상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더욱 쉽고, 빠르고, 견고하게 되고 있는 듯 하다.
내가 하는 낚시만 보더라도 벌써 다양한 낚시 사이트가 생겨났고, 한국에도 수 백 여개는 되는 것 같다.
낚시가 될지 모르지만(-_-;) 바다라고 부르는 인터넷 속에는
낚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미, 관심사, 등등의 수 많은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나날이 황폐해 가는 현대사회라고 하지만, 인간의 속 마음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이렇듯 제 갈길은 알아서 찾아 가는 걸 보면.....^^;
나도 이 인터넷 덕분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서,
즐거운 취미생활을 하고 있고, 즐거운 낚시를 하게 되었다.
한 덩이 쇠를 가지고, 생명을 해치는 칼을 만들 수도 있고, 생명을 먹일 호미를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인터넷으로 무엇을 해보고 있나?
낚시꾼인 나는 뭘 해보고 있나?
우선 나부터 좀 더 따뜻해져야 할텐데.....-_-;
어쩐지 다음, 금강 가는 길은 전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그 분들과 함께 했던 따뜻한 기억들이 함께 할테니.....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PS. 혹시 또 모르겠다, 고기들도 낚시꾼들에 대항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을지.....
"단결해라! 고기들이여....!"
어? 난 좀 끼워주면 안되남.....
오늘도 기웃 기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