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낚는 법과 놓아 주는 법
서점엘 가서 수많은 낚시책을 뒤져 보아도
낚는 법은 열심히 써 놓아도 놓아 주는 법을 자세히 쓴 책은 드물다.
수많은 조행기를 읽어 보아도
폼나게 낚은 이야기는 많아도 멋지게 놓아 준 이야기는 드물다.
물론 이 이야기는 낚은 고기를 놓아 주기로 한, 일부 낚시꾼들에게만 해당하겠지만,
한 편으로는 좀 섭섭하다.
낚은 고기를 늘상 맛있게 먹고, 혹은 죽이는 걸 당연시 하는
낚시꾼이라도 한 번쯤은 낚은 고기를 놓아줘 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일생에 한 번 쯤은 있지 않을까?
혹시 사형수가 되어서 죽기 전에 마지막 낚시를 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낚은 고기를 놓아 주고 싶지 않을까?
비록 언제 있을지 모르지만, 그럴 때를 위해서라도
낚을 때만큼 좀 더 멋지게 놓아주는 법을 배워 둔다면 좋지 않을까?
우리는 정신없이 낚고 혹은 잡는 기술만 배우고 익힌다.
원하던 고기를 바늘에 걸고, 한바탕 손맛을 본 다음
뭍이나 물에 대강 내팽게 쳐버린다면,
고기들에게 의식이 있어, 혹시 그들의 법이 있다면 인간 세상의 "강간치상" 쯤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좀더 교묘하게 미끼를 꾸며 낚는 나 같은 플라이 낚시꾼은
혹시 "혼인빙자 간음"도 추가되지 않을런 지....-_-;
자신있게 낚는 것도 훌륭한 일이고,
자신있게 요리하는 것도 아주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있게 놓아 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일 것 같다.
아직까지 나 역시, 아직 바늘에 걸린 고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이리 뛰고, 저리 발버둥하게 해서 지치게 만들고 나서야 겨우 고기를 끌어오고,
고기를 쥐었다 다시 놓쳤다, 낚인 고기마냥 나도 버둥댄 후에야 겨우 바늘을 뽑는다.
놓아 주는 일도 바늘만 뽑히면 물속의 고기는 저 혼자 퍼덕이며 휙 사라진다.
때로는 한참을 뒤집어져 있는 참담함도 보인다.
나 혼자의 강박관념 탓으로 빨리 놓아주기 맘이 급해서인지
낚은 고기의 얼굴을 들여다 볼 틈도, 감상할 틈도 없다.
그저 나쁜 짓하다 들킨 어린애 마냥 혼자 얼굴을 붉힌 채 후다닥~, 끝이다.
놓아 주기로 맘 먹은 후에는 낚은 고기를 얼마나 신속하고 안전하게 처리 하느냐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겠지만, 그것은 경험으로 자연히 익혀질 것 같다.
그보다는 놓아 주기 자체에 대한 낚시꾼의 나름대로 뚜렷한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남들이 다 놓아주니까 라던지, 남들이 보니까 라던지, 뒷편으로는 이 녀석은 맛이 없어서... 라는
변명을 달 바에야 떳떳하게 주관대로 하는 편이 더 낚시꾼 답다.
고기를 낚는 낚시꾼이 된 이상 먹으면 먹고, 죽이면 죽이고, 놓아주면 놓아 줄 수 있다.
물론 그 결과는 낚시꾼 자신이 책임져야 겠지....
다만, 기왕에 놓아준다면 좀 더 멋있게 놓아주면 어떨까?
고기와의 속고 속이기 한 판의 즐거운 낚시 끝에
게임의 상대역을 해준 고기에게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 위로의 말도 건네고,
비록 지긴 했지만 정말 멋있었다고 추켜세워줄 격려의 말도 더 얹고,
지쳐 돌아가는 그에게 질펀한 노름판처럼 갱편이라도 좀 쥐어 보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에 단 한 마리만 놓아 줄 뿐이라고 해도.....
이런 것조차 단순히 인간 자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허황된 놓아 주기일 뿐이겠지만,
그렇게 느끼고 행할 수 있는 낚시꾼이라면
낚인 고기의 안녕은 보지 않아도 분명하다.
앞으로의 나에게 멋진 낚시는 멋진 놓아 주기가 포함된 일이 되어야 겠군.
뭐, 가끔은 멋진 요리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주말엔 놓아 주기 연습하러 간다는 핑게로
난 또 낚시나 가야 겠다....-_-;
혹시 또 아나, 또 다른 것도 놓아주는 법을 배울 수 있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