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낚시 징크스
낚시꾼 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징크스란 게 있다.
낚시를 가기 위해서는 꼭 무슨 미끼를 챙겨야 된다든지, 아끼는 장비를 가져가야 된다든지 하는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서, 비가 온 다음날은 꼭 간다든지, 매년 특정일은 꼭 어디를 가야된다든지
심지어 출조 전날은 반드시 목욕재계하고 부부 각방을 써야 되는 낚시꾼도 있다.
그노무 조황이란게 뭔지....-_-;
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난 낚시 가기 전날부터 수염을 안 깍는 버릇이 있다.
본래 수염이 뭐 대단하게 나는 정도가 아니고 있어야 할 데 대강 있는 정도라
크게 눈에 띄진 않지만, 출발하기 이틀 전부터 그랬다면,
낚시 당일엔 제법 삐죽 삐죽 튀어나와 가뜩이나 볼품 없는 얼굴이 더욱 가관이다.
땡볕에서 온 종일의 낚시를 마치고 돌아설 때 쯤이면,
적당히 익은 얼굴에 지친 몰골로 뭔가 비릿한 항취와 함께 땀 냄새를 풍기고
도시로 돌아온 나는 영락 없는 노숙자 행색이다.
게다가 난 추리닝 입고 낚시 다니기 좋아하는 터라 옷차림도 후줄근하고,
어깨에 짊어진 낡은 배낭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이면
슬금슬금.... 남들이 피하는 눈치다.
나 나름대로는 고기들에게 깔끔한 낯선 도시인보다 늘 지나다니는 현지인 마냥 보이려고
위장술이라 생각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알 턱이 없으니
홀대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
한편, 정작 고기들에겐 어떨지 모르겠다. 지난 연말쯤 낚시 이야기 때,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려면 수염이라도 깍구 가기루 했으나
게으른 성질 탓에 출발하는 아침에는 여지 없이 그냥 나서고 있다.
꼭 수염을 잘라야 고기를 잘 낚는다든지 하는 건 아니지만
가만히 보니 나는 낚시가 없는 휴가에도 항상 수염을 안 깍고 지낸다.
난 사무실을 다니는 봉급쟁이라, 늘 아침마다 말끔하게 면도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잊기 위해서, 휴가의 기간과 상관없이 말도 안되는 나름대로의 자유를 즐기고 있나 부다.
아무튼 면도한 말끔한 얼굴로 물가에 선다는 건 아무래도 좀 내키지 않는 걸 보면
이제는 견고하게 굳어버린 나만의 낚시 징크스임엔 틀림없다.
이렇듯 낚시 외에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징크스를 갖고 살구 있을까?
특히, 운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따라줬음 하는 것에는 거의 광신적이다.
영업이나 경기, 시합, 심지어 도박과 노름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딘가 기대야 하는
인간 본연의 나약한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징크스를 과감히 깨어버려야지 하는 마음보다 그냥 작은 재미로 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따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나도 그저 그런
한 조각 생명체에 불과하구나 하는 안심도 해본다....^^;
그러므로 점점 고기 와의 높이 차가 줄어 드는 듯 하다고나 할까?
앗! 인간의 탈을 쓴 또 다른 고기가 고기를 낚고 있는 웃기는 상상이 머릿 속을 헤집고 지나간다.
"어어~이! 잠깐, 그래도 그 고기는 낚시대와 바늘을 만들었잖어...-_-;"
"누군 여태 낚이고 싶어서 손과 발대신 아직 지느러미를 달고 있는 줄 아냐?"
"성경에 보면 신의 선택이론이 있는데 말이야.... 주저리 주저리..."
"불경에 보면 환생이론이 있는데 말이야.... 궁시렁 궁시렁..."
갑론 을박... 이하 생략.....
어쩐지 내 머릿 속의 절반은 고기 귀신이 붙어 있는 듯하다.
때때로 고기 편을 드는 생각이 불쑥불쑥 드니 말이다....-_-;
아무래도 전생에 난 고기였거나 그동안 난 고기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이런 것도 내 낚시 징크스는 아닌지.... 쩝....
그런데 혹시, 낚시가기 전날 밤에 혹은 아침에, 많이 낚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불경을 읽거나, 혹은 주문을 외는 사람은 없겠지?
여지껏 그런 낚시꾼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마도 또 다른 생명을 괴롭히는데 신성(神性)까지 덜 먹이고 싶지 않은
마음속 깊은 곳의 양심 때문이겠지.
또 모르지, 고기들도 안 낚일 나름대로의 징크스들을 갖고 지낼지....
내 바늘엔 집어활조황(集魚活釣況)부적이라도 붙일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