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헛 바늘 통
언제부터인가 딴짓을 좀 더 해보기로 맘먹고
생각해 본 게 헛 바늘이다.
내가 생각한 헛 바늘이란
나름대로 고기 욕심을 줄이고, 고기에게도 피해를 덜 주려고 잔머리 쓴 것으로
낚시바늘의 뾰족한 바늘부분을 끊어 낸 고리 바늘하고,
아예 모두 잘라내어 걸리는 것 조차 없는 일자 바늘 둘로 나뉜다.
아마 고리 바늘의 다음 단계가 일자 바늘일 것 같다.
물론 나의 모든 낚시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그나마 제일 친한 친구라고 믿고 있는
샛강의 강준치에게나 겨우 써 볼 생각을 하고 있다.
'헛' 이란 접두사가 주는 감상은 쉽지가 않다.....-_-;
헛 소문, 헛 걸음, 헛 고생, 헛 제사밥과 같은 가벼운 일상부터
"만사가 헛 일", "인생을 헛 살았네" 와 같은 것들은 꽤나 무겁고도 가벼운 혼란을 전해준다.
그걸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바늘 위에 다시 얹자니 역시 쉬운 일은 아니겠지.
"헛 헛 헛....-_-;"
그동안 간간히 실험만 해보던 나는, 올해부터는 좀 더 자주 써 보기로 하고,
며칠 전, 평소에 내가 쓰던 훅 박스를 하나 더 구했다.
다니는 직장에서 제품 캐리어로 쓰는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
그리고 이 훅 박스에는 아까 얘기한 그 헛 바늘들만 담기로 결정했다.
물론 아직 훅은 얼마 없다.
그동안 매어둔 고리 바늘 흰색 카프테일 스트리머 하나, 고리 바늘 이노무 스트리머 하나....
애게~ 달랑 두 개다.
며칠 전부터 날 잡아서 일자 바늘을 좀 매자고 맘 먹었지만,
정작 밤이 되면 피곤해서 잠들고 말았다.
헛 바늘을 몇 번 매어 봤지만 꽤나 허무한 작업이다. 고기가 걸리지도 않을 바늘을
정성을 다해 치장하고 있자면.....
이 헛 바늘 통이 가득차게 되면
난 가끔, 이 헛 바늘 통을 들고 낚시를 다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헛 낚시를 하는 걸까??
플라이 훅에서의 일자 바늘과 그 옛날 강태공의 일자 바늘과는 엄연히 다르다.
강태공의 그것은 고기에게 밥도 주고, 세월을 낚던 낚시 였으므로
아예 낚으려는 생각조차 없겠지.
하지만 플라이 일자 바늘은 보통 플라이 바늘과 마찬가지로 온갖 치장을 그득히 하여,
낚으려는 욕심을 가득 품으면서도 현실은 그것을 꺽어 버리는 모순을 지녔다.
정말 '헛' 이란 접두사가 어울리는 듯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걸 쓰는 낚시꾼은 입질만은 느끼면서 끝까지 낚시란 무언가를 행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나마 낚시 공부(연구)가 되기 때문이겠지.
처절하게 가식적인 모습이기도 하고,
그래도 낚시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짓이다.... T_T
잠깐 감상에서 벗어나 떠오르는 생각은 '도대체 낚시라는 정의(定義)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낚시대를 매고 나서기만 하면 낚시일까? 물에 바늘을 드리우기만 해도 낚시일까?
반드시 바늘에 고기를 걸어야 낚시일까? 낚은 고기를 손에 쥐고 마음으로 입으로 즐겨야만 정말 낚시일까?
그렇지 않으면 지금 있는 자리에 앉아서 눈만 감아도 낚시가 되는 걸까?
사는 것도 낚시라고 누군가 얘기해준다면 혼란이 그칠 듯도 하다마는
아직 어린 나는 알 수 없다.
내 주제에 얼마나 자주 헛 바늘 통을 들고 다닐지 모르겠지만,
헛 바늘을 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낚시의 또 다른 넓은 세계에 한 걸음 들여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밤은 꼭 매야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