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무인도에서 플라이 낚시 하기


 

엉뚱한 상상으로 낚시를 또 한번 해봤다.

가끔씩 혼자 생각해보는 만일 내가 무인도에 떨어 진다면?

 

저 먼 옛날, 로빈슨 크루소처럼 문명의 끄트머리라고는 한 쪽도 없는

외딴 바다 한 가운데 무인도에 나홀로 후떡 떨어져 버린다면

그때는 낚시를 어떻게 했을까? 거기서도 플라이 낚시를 하고 있을까?

 

당장은 마실 것과 먹을 것이 우선이다.

섬의 규모가 너무 작지 않다면 조금만 움직이면 물과 간단한 식량은 구할 수 있을 것이고,

문제는 몸과 입이 원하는 단백질이다.

섬 안에 적당한 육고기는 조류인데, 그나마 끓이면 지방만 가득한 물새 떼들 뿐,

잡기 쉬운 벌레는 양이 너무 적다. 가까운 바다에서 구하는 편이 나을 테지.

조개나 갑각류를 줏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겠지만,

포만감과 씹는 맛이 있자면 물고기가 최고 일테지.

낚시꾼인 나는 낚시를 택하는 게 좋은 듯 하다.

작살질은 보기보다 상당히 힘든 일테니.....

 

먼저 입고 있는 옷의 올을 풀어내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갈은 물에 며칠 담궈서

타닌산의 힘을 빌어 내구성을 더한다.

3겹으로 꼬아서 우선 질긴 낚시줄을 만들고,

같이 떠 내려온 궤짝을 뜯어보니 몇 개의 못을 구할 수 있다.

잘 다듬고 갈아내면 낚시 바늘로 쓸 수 있겠군.

살아 있는 적당한 나뭇가지를 구해서 탄성이 좋은 낚시대를 꾸민다.

미끼는 조갯살이나, 갯벌레 혹은 갯지렁이를 구해서 큼직하게 꿰고,

얕은 곳보다, 단번의 승부를 위해서 직벽아 래 바위 틈의 확실한

포인트를 찾아 적당한 수심으로 미끼를 담근다.

한번의 입질을 놓치지 않고 귀한 채비를 망가뜨릴까, 단번에 끌어내야 하는 맥낚시이다.

어쩌다 운이 좋아 고기를 낚아낸다면,

처음 낚은 고기라도 캐치 엔 릴리즈라도 할 것 같냐?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시바신이여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맛있게도 냠냠....^^;

 

혹시 낚이는 고깃 수가 많아서 굶어 죽을 염려가 없다면 혹시 플라이 낚시를 시도해볼지 모르겠다.

덩쿨식물의 껍질을 가늘게 쪼갠 후 엮어서 굵은 플라이 라인을 만들고,

릴은 생략하고 긴 나무 로드를 구해서는 캐스팅 흉내를 낼 수 있겠지.

귀한 낚시 바늘 한 두 개를 꺼내서 몇 줄 남지 않은 옷의 올을 풀어 진짜 자연소재로

플라이 훅을 몇 개 만들어 낼 순 있겠다.

어쩌다 여유 있는 저녁에 놀이 삼아 한번씩 던져 보고,

운좋게 한 마리라도 걸리게 되면 그동안 잡아 먹은 고기들에게 감사하는 척하며,

캐치 엔 릴리즈를 한번쯤 해보게 될지도.....

 

무인도에서의 낚시는 지극히 실용이며, 생략이며, 간편이며, 효율이다.

폼나는 캐스팅도 없고, 장난삼아 매어 보는 엉터리 훅도 없고, 채비나 기법으로 장난치는 일도 없다.

단지 나의 생사가 달린 낚고 안 낚고가 있을 뿐....

거기에 비교하면 지금 내가 하는 이 플라이 낚시라는 것은 엄청난 사치며 낭비다.

그런 낚시를 지금 나는 여기서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먹고 살만한 지금의 운좋은 상황 아래 그마나 묵인될 수 있는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전세계의 55억 인구 중에 플라이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인간이 몇 %나 될 것인가?

인구의 절반은 끼니를 굶고 있고,

그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낚시대를 살 형편이 안되고,

또 그 나머지 절반의 절반의 절반은 플라이 낚시를 모른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몰라도 된다....-_-;

그 나머지는 낚시갈 시간 여유가 없겠지....^^;

 

만일 내가 무인도에서 무사히 귀환하여 돌아 온다면

아마 낚시에 대해 좀 더 진지해 질 것 같다.

지금까지 쥐고 있던 너절한 겉멋과 엉터리 상념들은 던져 버리고,

알맹이만 곱씹을 수 있겠지....

 

그 알맹이가 무엇인지 지금은 나도 잘 모르지만,

고기를 씹고 또 씹은 후에는

나중에 내가 죽게 되면 땅에 묻지 말고

물에 던져 고기 먹이로 보시(보시)라도 해 달라고 할지 모르겠다.

화장해서 가루로 먹이는 게 보기엔 좀 낫나?...^^;

 

하지만 늘 진지한 것도 재미 없고 가끔씩 노는 일도 좋다.

죽기 직전에 장난치며 여유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아마 죽음이 그를 두려워 하지 않을까?

 

엇, 또 장난 치고 있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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