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고기 그림, 물 그림 한 장 없는 홈이 썰렁하다는 얘기도 듣고 해서

카메라를 하나 사려고 별렸다.

자동카메라야 하나쯤 있지만,

홈에도 올리고 하려면 디지탈 카메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첨에는 디지탈 카메라를 열심히 살피다가 결국엔 엉뚱한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lomo라고 부르는 제멋에 사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수동 카메라다...-_-;

가만 따지고 보니 게으른 탓에 낚시가서 낚시나 하지 뭐, 사진 찍는 일도 드물고,

그걸 홈에 만들어 올리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고기 사진 찍는 일이 별로 내키지 않게 되었다.

한 번 낚아 본 것도 부족해서 손에 들고 햇볕에 고기 말려가며 사진 찍는 일이란

역시 썩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뭐, 가끔씩 나도 처음 만나게 된 녀석들은 찍어 온다....-_-;

그럴 바에야 굳이 베일 듯한 날(刀)을 숨긴 디지탈 보다는

적당히 두리뭉실하고, 잘 못나와도 카메라 핑게 댈 수 있는,

내맘대로 편하게 갖고 다닐 튼튼하고 자그마한 구식 카메라가 하나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다양한 물을 찍어와서 기록으로 남기고 분석해볼 생각이었다.

우찌우찌 헤메다가 귀가 얇은 나는 일단 "머찌다"란 말에 혹해서,

디카(디지탈카메라)살 돈으로 lomo라는 녀석을 만났는데,

이게 또 막상 길들이기가 장난이 아니다.

이 lomo 라는 녀석은 나름대로 특성이 있어

아무것도 아닌 화면을 독특하게 만들어 주고, 화려한 색감과 밤에 강한 카메라라고 한다.

클럽에서 운영하는 홈 페이지에는 하나 같이 멋지고 의미있어 보이는 사진들이 그득그득한데,

3주만에 8롤의 필름을 날려보았지만 봐줄만한 사진은 몇 톨 안된다...-_-;

책을 사다 읽고, 필름을 바꾸고, 플래쉬를 달아 보고, 현상소를 바꿔가며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제법 숱한 노력에도 도무지 결과가 맘에 안 드는 것이었다.

이제 포기할 때 쯤 떠오른 생각.....

'얘는 lomo가 아니고 카메라다.'

'내가 구한 건 처음 그 맘에 들고 쓰기 편한 그냥 카메라 일 뿐이다.'

lomo라는 널리 알려진 특성에 나를 맞춰 볼려고

특이한 사진만 찍어보고, 화려한 색만 찾아보고, 밤 위주로 사진을 찍어 댔던 것이다.

원래 내 생각은 그냥 편하게 즐기고자 했을 뿐인데,

카메라가 날 잡아 먹구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이건 바로 플라이 낚시가 내게 처음 반성을 주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플라이 낚시도 그냥 낚시일 뿐인데

특이하고 멋있고, 폼나는 뭔가만 들여다 보며 플라이 낚시를 시작했던 바로 그 상황.....

그나마 이젠 플라이 낚시의 반성을 통해서 또 다른 생활의 반성을 찾아 낼 수 있어 다행이다.

'얘는 fly fishing 이 아니고 그냥 낚시다'

'내가 하는 건 그냥 내 맘에 드는 그냥 낚시의 한가지 일 뿐이다.'

PS. 그래도 언제쯤 사진이 늘어서 홈에 한번 올리게 될까나.....-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