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낚시꾼의 욕심하면 고기 욕심을 떠올리게 된다.

한 마리라도 더, 좀더 큰 녀석으로.... 등등 그러나 또 다른 욕심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장비 욕심이다. 좋은 낚시대, 비싼 미끼, 좋은 복장... 이 욕심에 특징은 돈이 든다라고 할까?

낚시대가 한 대 있으면, 좀 더 긴 대가 갖고 싶고, 긴 대가 있으면 또 짧은 대가 갖고 싶고,

좀더 부드러운 대가 갖고 싶고, 또 튼튼한 대가 필요할 것 같고.....

왠지 비싼 대가 잘 잡힐 것 같고....

낚시대 한 가지만해도 이렇듯 다양하니 수천가지나 될 장비들을 따지면 끝이 없다.

게다가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날마다 신제품이 넘쳐 난다.

나도 플라이를 처음 배울 때는 책에 써있는 대로 가게에 가서 제일 저렴한 6번대(플라이 낚시대는

무게와 용도 길이가 대충 엮어져서 번호로 구분된다. 0번이 제일 작고 가는 대이며, 그 위로는

십몇번까지 있다.)를 하나 구했다. 릴도 필요하니 사고, 릴만큼이나 비싼 플라이 라인을 사고,

기타 소모품을 몇 개 사서 딱 낚시 한번 할 만큼만 갖추니 벌써 십여만원이 넘었다.

요즘도 최저로 맞추어도 그 정도는 들 듯 싶다.

낚시한번 하는데 십여만원에 추가로 나날이 드는 소모품 비가 만만치 않다.

얼마되지 않는 나의 한달 용돈이 거의 소모품 비로 사라진다.

물론 낚시대 한 대에 100여 만원이 넘고, 한번 출조에 몇 십만원이 드는 바다낚시에 비하면

소소한 편이지만 넉넉한 집에서는 큰 부담이 없을지 몰라도 나같은 서민에게는

욕심내기엔 부담스럽다. 하지만 남자 욕심이 어디가랴,

야금야금 사다 모은 플라이 장비가 벌써 낚시대만 6대, 각종 줄이 감긴 릴이 5개 ......

그 외에도 훅BOX(플라이 바늘 담아 두는 것)가 대여섯개, 타잉 툴(플라이 바늘 만드는 연장)이

한 세트, 플라이 재료가 되는 각종 새털과 짐승털이 한 상자, 물바지(웨이더라고 하며, 물에

들어갈 때 쓰는 바지 장화), 출조용 낚시가방, 등 각종 소소한 장비들을 합하면 총 비용은

대략 100여 만원은 훨씬 넘을 것이다. 아! 여기서 오해하지 말자.

나는 장비에 고급을 안 쓴다. 아니 여유가 없어서 못 쓴다.

고급제품으로 치자면 대나무로 만든 수제 플라이 낚시대 한 대에 200만원 가까이 하는 것들도 있다.

처음엔 욕심을 내었지만 요즘은 좋은 장비를 봐도 별로 욕심이 나지 않는다.

낚시대라는 것도 거의 모두 손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싸구려 보세 제품 중에도

어쩌다 잘 나온 것들도 많고, 나같은 초보가 봐서는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다.

좋은 제품을 써봤다면 장단점을 알겠지만 어차피 장비로 고기 잡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장비를

움직여 잡는 것이라면 큰 차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고급장비를 갖추고 오래 낚시를 한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초보가 있는 가 하면,

싸구려 장비를 가지고 재밌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좋은 장비가 있기 보다는 각 장비마다의 특징이 있어 그 특징에 맞게 사람이 잘 써주면 쓰는 사람도

즐겁고, 만든 사람도 기쁘고, 장비도 덜 섭섭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좋은 장비 보다는 맘에 맞는 장비는 있을 것이다.

나도 요즘에는 플라이 낚시대를 만들고 플라이 라인을 만들어 쓴다.

뭐, 진짜 손으로 빚어 내는 건 아니고 있는 재료를 조합해서 색다른 걸 만들어 보는 정도이다.

플라이 낚시의 주 요체가 되는 낚시대는 캐스팅과 연관되기 때문에 엄청난 다양성을 갖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멀리 플라이 미끼를 던지는 낚시를 많이 하기 때문에 롱 캐스팅이 잘 되는

그리고 고기에는 미안하지만 손맛을 위해서(아니 충격을 덜어 주니 덜 미안한 점도 있다)

낭창거리고 부드러운 대를 좋아한다. 국내에는 아직 보급이 많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게에 있는 플라이 대들은 한결 같은 길이에 거의 비슷한 뻣뻣한 대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유명한 수입 대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가격이 만만하지 않다.

보통 대들은 제법 큰 송어를 잡아도 낚시대 끝만 까딱, 피라미라도 걸면 고기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낚시대가 뻣뻣하면 챔질할 때 힘이 그대로 낚시줄, 고기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작고 가벼운 고기는 물밖으로 던져내어 진다.)

그러한 뻣뻣한 대는 고기와의 힘겨룸, 살겠다는 그들의 의지, 달래서 얼굴 한 번 보자는 나의 의지가

서로 소통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드러운 대는 그렇지 않다.

무슨 고기가 물었는지? 얼굴을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리고, 지금은 지쳤고, 다시 힘을

낼려고 한다는 순간순간을 나에게 전달해 준다.

물론 단점도 많다. 부드러운 대는 캐스팅(플라이와 플라이 라인을 원하는 곳으로 던지는 것)이

어렵다. 낚시꾼이 제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치 싸리비와 방비(방에서 쓰는 부드러운 비짜루)의 차이라고나 할까?

잘 휘지 않는 싸리비는 굵직굵직하게 쓱쓱 잘 쓸고 가지만 작은 먼지들이 많은 방은 쓸 수 없다.

방비는 먼지를 이렇게 모아서 또 저렇게 모아서 깔끔하게 쓸 수 있지만 마당은 못 쓴다.

한 마리를 잡아도 재밌게 잡으려면 부드러운 대가 낫다는 의미다.

캐스팅이 어려운 만큼 연습을 해야 된다. 공부가 된다.

또 뻣뻣한 대는 그만큼 빨리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마치 테크노의 몸짓처럼 몰입이 있다.

반면에 부드러운 대는 낚시대의 진동을 따라서 느려지는 움직임에 전통의 춤사위처럼

흥겨움이 있다. 왠일인지 고수 입네 하는 사람들은 부드러운 대를 좋아하는 듯 하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부드러운 대로 멀리 던지기란 어렵게 된다. 고수는 가능하니 자랑이 된는 건가?

그래서 난 긴 대가 필요한 것이었다. 한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힌트를 얻은 나는

민물낚시대를 개조하여 몇 번의 도전 끝에 만족할 만한 낚시대 2대를 얻어냈다.

짧고 캐스팅은 안되지만 낭창대고, 아예 알파 모양까지 휘는 부드러운 대,

아주 길고 적당히 낭창대고 캐스팅이 엄청 잘 되는 대.

물론 내가 가진 낚시대 중에 가장 많은 돈을 들여 얻은 낚시대가 되었지만

요즘은 출조 때 항상 이 두가지 대만 가지고 간다.

그동안 돈들여 샀던 나머지 대가 필요없이 아마 엄청 긴 한 대만 가지고도

평생 만족하며 쓸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 이후에는 갑자기 장비 욕심이 사라졌다.

만족이란 말이 쉽지 않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간사함을 숨기고 있지만

낚시대를 찾아 가게를 뒤지고, 고급대와 비교하며, 나만의 낚시대를 찾아 만들어가는

그 과정에서 좋은 장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맘에 드는 장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옜날의 어느 고수는 고기와 나 사이에 아예 장비가 없이 직접 "낚는다"를

느낀다는 얘기도 있더라 마는 아직은 머~언 얘기 같다.

무슨 일에든지 깨달음이 있고서야 넓어짐을 느끼게 된다.

다시 또 깨달으면 또 넓어 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