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아마도 낚시 다녀온 후, 귀가 길의 내 모습을

꽤나 잘 표현한 것 같군......

요즘 나는 낚시 다닐 때

다시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디지탈 카메라를 구해서 들고 다닌 적도 있었는데,

게으른 탓에 물 사진과 벌레 사진 찍는 일이 드물어 졌다.

대신 막쓰기 좋고 자그마한 아날로그 카메라를 하나 들고 다닌다.

(구)러시아제 Kiev-35A 라는 조금 드문 카메라다.

프라스틱 바디에 렌즈 덮게를 접었다 폈다 하는 불편함도 있고,

초점도 손으로 대강 맞춰야 하기에 흐린 사진이 많지만,

조리개 조절을 적당히 할 수 있는 데다가

촬영시 소리가 나지 않는 점, 그리고 주머니 넣고 있다가

나 좋을 때, 마구 찍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구형 러시아 카메라 몇 종류를 포함해서 대 여섯개의 카메라가 있지만,

요즘은 이걸 자주 들게 되었다.

사진을 통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겠지....

난 혼자 낚시 다니는 일이 많아서 주로 찍는 사진은 풍경이나

뭔가 내게 의미를 주는 사물의 조각들을 찍는다.

그리고 가끔은 낚시 중인 혹은 이동하는 혹은 귀가 길의 내 모습을 찍는다.

보통은 손을 앞으로 뻗어서 카메라를 내게 향하도록 하여

얼굴만 퍽 찍는다.

아마도 혼자 여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찍는 버릇이라 제법 오래 되었다.

요즘 다시 재미 붙이기 시작한 건 엘리베이터 사진이다.

엘리베이터에선 항상 거울이 있기 때문에 자화상(Self-Portrait)을 찍기 편하다.

거리를 두 배로 계산해야 되기 때문에 초점 맞추기 쉽지 않고,

적당히 흔들리는 엘리베이터에서 귀가길 혹은 출근길에서의

내 모습을 남기는 건 제법 재밌는 일이다.

위의 사진은 한참 전 출조를 나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나의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찍은 사진이다.

거울을 통해 비친 내 모습을 혼자 스스로 찍은 것이다.

사진이 세피아 톤인 것은 ILFORD XP4라는 흑백필름을 써서 칼라로 인화했기 때문이고,

적당히 어두운 상황에 400 필름을 써서 입자가 조금 거칠다.

사진 속의 희미한 나는 웨이더와 낚시가방 그리고 웨이딩 신이 들어 있는 작은 배낭을 메고,

한 손으론 낚시대를 쥐고,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쥐고 있다.

하루 종일 모자를 쓴 탓에 머리는 적당히 구겨져 있고,

무거워진 배낭 탓에 어깨는 아래로 분명히 쳐져 있다.

귀에는 저 홀로 흥얼거리는 귀에 익은 멜로디를 걸쳐 놓은 채,

아무 생각 없는 듯, 휑한 듯한 표정의 두 눈은 무엇을 쳐다보는지 혹은 떠올리는지 초점 마저 분명치 않다.

바로 온 종일 물가에 서서 캐스팅을 더하다 지쳐서 돌아온 나를

내가 다시 쳐다 볼 때 마다 늘 보는 낯익은 모습이다.

이제는 낚시를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직전의 초라한 모습...

오른쪽과 왼쪽이 뒤바뀐 거울 속의 자화상은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야누스적인 낚시 속의 나 자신을 폭로하는 듯 하기도 하고.....

그리고 눈에 띄는 한 가지.....

사진 하단에는 죄수번호 마냥, 낯선 숫자와 기호로 해석되는 삶의 조각들이 박혀 있다.

하루 동안의 자유를 처절히 즐기고 이제 다시 사각형으로 대변되는

문명과 사회의 증거인 엘리베이터 속으로의 의도된 귀환.....

그 엘리베이터의 벙벙한 조명에 고집 세어 보이는 주름진 이마와 광대뼈가 돋보인다.

어둠 속에 윤곽만 또렷한 나의 모습은

하루를 온통 낚시로 소진하고 탈진해버렸지만,

그래도 낚시를 놓지 않으려는 끈질긴 내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주길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 낯익은 초라한 모습이지만,

난 이 사진이 좋은 지도 모르겠다.

피사체의 바램과 저항을 무시한 채,

시간을 그대로 굳혀 버리는 사진의 마력 덕분에

피와 땀 냄새 나는 질펀한 낚시의 끝을 다시 다녀오지 않고서도

때때로 혼자 되돌아 볼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