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지내기??


 

어젠 평일 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쉬었다.

직장생활하는 평범한 봉급쟁이로서 평일 날 쉬는 일이란

극히 드문 일인디, 낚시도 안 가고 평일에 쉰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집에 아이를 내가 보게 되어서 하루를 맘먹고 쉬었다.

느지막히 일어 나서 아침을 적당히 챙겨 먹고,

밀린 비디오를 때리는 백수 흉내를 적당히 내고는

딸애와 약속(?)한 스파이더맨 이란 영화를 보기로 했다.

조그만 가방에 카메라를 담고 마실 것을 담아 가로질러 메고,

딸애를 한쪽 팔에 걸친 후, 집을 나섰다.

그리고 점심 무렵에 도착한 곳은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옆의 극장과 햄버거 가게.

 

찌든 봉급쟁이가 평일에 느슨한 옷과 신발을 입고 천천히 거닐며,

바삐 뛰어다니며 점심시간을 쪼개 쓰는 잠시동안 먼 봉급쟁이들을 들여다 보기란,

극락의 열락에나 비길까....

마주치는 햇살이 새롭고, 풀 한 포기가 반갑다.

간판의 글씨체가 눈에 다시 들어오고, 벽에 붙은 광고지 한 장 한 장이 의미 있어 보인다.

그 봉급쟁이들 사이를 뛰노는 아이 사진을 찍으며

나는 맘껏 즐겼다.

한참 근무 중일 근처 사무실의 친구를 불러 햄버거를 함께 먹고

덕수궁을 거닐며, 서로 사는 얘기를 했다.

앞으로 살 날 이야기, 각자의 집안 이야기,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

아이는 친구가 선물한 인형을 안고 덕수궁의 풀밭을 사정없이 뛰어 다닌다.

그가 가진 시간이 다 된 친구를 보내고,

아이와 나는 덕수궁 연못가에 앉아서 함께 좋아하는 고기 밥주기를 했다.

자연 색을 가진 붕어와 잉어들....

어슬렁 어슬렁 시간 맞춰서 극장에 도착해선

사람 없는 넓고 넓은 극장을 나와 비슷한 사람들 몇이서

푸근하게 나눠 쓰며, 최신 유행 영화를 봤다.

아이에게 영화 줄거리 설명을 해줘도 방해 받을 사람이 없으니 좋다....

둘이 함께 스파이더 맨 흉내를 내며,

집 근처로 와서는 대형 할인매장에 들려서 오늘 하루를 찍은 필름을 맡기고

아이와 나는 서점에서 각자 보고 싶은 책과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집 앞의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 덕분에

마지막 놀이를 한번 더 한다.

나는 곁에서 오랜만에 밀린 운동을 한 판 해보고....

 

아내가 집에 돌아와선 사진을 들여다 보며,

셋이 함께 오늘 놀았던 하루를 들여다 본다.

때맞춰 해주는 축구경기로 저녁시간을 마감한다. 어, 꽤 잘하는 군....

참, 느슨하면서도 빡빡하게 놀았군....^^

 

단순히 하루를 쉰 것 뿐인데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뭔지 몰라도 뿌듯하다.

그동안 낚시 다니느라 아이에게 밀린 사랑을 나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당장을 위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지내면서 느끼는 많은 것들, 그리고 알게 된 많은 것들.....

평소 발버둥 치던 내일(來日) 혹은 내 일(事)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지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평소에 내가 가끔 하던 하루를 비워 낚시 갔을 때와 비겨도

훨씬 뿌듯한 듯.......

 

그래, 나는 한 가지 답을 찾았다.

그 좋아 하던 낚시를 아껴 가기로 맘 먹은 후로 생긴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

낚시는 가급적이면 대중 교통으로 가고, 내 시간을 늘려서 낚시 간 날 전체를 즐길 것.....

그리고 뭔가를 얻고 이루려 의식하지 말고 그냥 즐길 것.....

 

아마도 오늘 하루를 보낸 것처럼 그렇게 저절로

가득 차게 될 것 같다.

 

아마 먼 훗날, 남은 시간이 줄어들 때이면

하루 하루 사는 것도 저절로 오늘 하루 같을 듯.....

그 때쯤이면 뭘 해도 즐거울 듯.....

비록 이 곳에 살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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