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강준치라는 친구2


 

어제는 오밤중에 여의도 샛강을 갔다.

일 년에 수 십 번을 들리는 곳이지만, 밤에 가는 건 주로 여름이고

그건 바로 고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요즘은 낮에 주로 캐스트 연습 삼아 가는 곳이지만,

밤에 가는 건 라인이 보이지 않기에 대부분 고기 보러 가는 게 주목적이다.

그리고 밤나들이는 특히 여름철에 집중되었다.

한여름 밤의 샛강에는 항상 강준치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온 후 물이라도 적당하고 물때가 맞는 밤이면 여지없이 강준치들이 와 있다.

물론 오고 가는 건 강준치 지맘이라 항상 맞을 순 없지만

몇 년이 지나 보니 OX 맞추기에 약간 익숙해졌나 보다.

 

대략 97년 여름부터 샛강을 나가면서 늘 나의 낚시 대상어는 강준치였다.

이것저것 연습하기에도 좋고 아무 것이나 아무에게나 잘 물어 주는 녀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주 많이 보다 보니 익숙해져서 인지, 나 같은 초보를 반겨 주는 게 고마워서인지

나중엔 한강의 멋진 친구라고 나 혼자 이름 붙였다.

막상 친구라고 부르다 보니 이게 또 이상해졌다.

나눠 먹는 것 하나 없이 나 혼자 바늘로 찔러 가며 괴롭히는 게 무슨 친구냐?

그래서 혼자 머리를 쓴 게 바늘 크기를 줄였다가, 훅킹을 아예 안 한다거나,

나중엔 고리바늘, 일자바늘을 만들었다가 이 짓 저 짓을 다해 보았다.

대형할인점 식품매장을 뒤져 밥 먹일 것도 찾아 보고 했지만

뾰족히 친구인 척 생색낼 꺼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재작년부터는 강준치 낚으러 가는 날 수를 좀 줄이고,

드디어 작년부터 맘 먹은 것이 샛강의 강준치는 안 낚겠다는 것이었다.

; 자세히 보라! 간교한 낚시꾼, 샛강으로 한정시키고 있다....-_-;

낚고 안 낚는 걸 잊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나는

일단 안 낚는 것만이 강준치를 친구로 둘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하였다.

그 후로 샛강엔 주로 낮에만 다니고

대상 어종도 낚일 확률이 아주 낮은 잉어로 바뀌 놓고

이것저것 다른 고기들 집적대고 있다.

그런데 어젠 강준치 오는 타이밍을 맞춰서 나간 것이다.

비록 깔다구를 목표로 하긴 했지만.....

 

솔직히 처음엔, 강준치가 올 타이밍을 맞춰서 나간 이유는

녀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였다.

한강을 가로 지르며 숨김없이 야성을 드러내는 호쾌한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비록 낚지는 않더라도 내가 짐작한 타이밍이 맞는 지를 확인하여

그들의 생태에 좀더 가까워 지고 싶었었다.

그런데 처음 계획과 약간 달라진 게, 막상 샛강에 도착해 보니

다른 플라이 낚시인이 먼저 와 있다.

그리고 물때가 되자 정확히 강준치를 연속해서 걸어 낸다.

퍼득이는 은빛과 철벅이는 물보라.....

활같이 휘는 낚시대와 겨루기.....

'아 그래, 저게 바로 강준치 낚시의 본 모습이었지.....'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서 불끈불끈 솟증이 나면서 강준치를 노릴 스트리머로 훅을 매고 싶은 욕구가 올랐다.

하지만 잠시동안의 혼란을 넘고,

나는 결국 깔다구 바늘을 매었다.

 

조용히 수로에 훅을 흘리는 동안 계속해서 옆에서 들려 오는 강준치와의 파이팅 소리....

낚시꾼은 고기를 낚는다는 당연하고 지극히 자연스러움 옆에서 엉뚱한 내 모습.....

실제로 강준치의 생계나 이익에는 별 도움도 안되면서

우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스스로를 옭아 매는 다짐으로 나는 엉터리 낚시꾼이 되고 있다.

손만 뻗으면, 아니 몇 미터 앞으로 라인을 던지기만 하면, 그도 아니면 흐르는 라인을 당기기만 하여도

물어올 수 많은 강준치들....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봐도 못 본 척 하는 가식 속에서도

상황이 점차 반복되니 오히려 평안해진다.

' 나는 널 낚을 생각이 없다.......'

다른 낚시에서는 수많은 고기를 낚더라도

내 속에서 강준치 하나 만큼은 친구로 정해 두고 아껴서 낚지 않으면

그걸로 이미 친구이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좀더 가까운 친구로 다가 서려는 순간,

깔다구 혹은 잉어를 노리며 물속 바닥을 흐르던 내 훅에서 반응이 왔다.

구불텅 구불텅.....

음... 이것도 강준친데......

이를 어쩐다....

 

친구인 척 하기도 쉽지 않군.....

당황한 척 하는 나는 세운 대를 그만 눕히고

주섬주섬 손으로 친구의 입에 걸린 바늘을 찾는다.

그러고 보니, 얼굴 보기도 참 오랜만이네.....

 

낚시줄을 쥔 손으로 녀석의 몸부림을 느끼며 물끄러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언제 봐도 참 멋진 녀석이다.

친구 삼기 잘 했군.....

 

비록 당장 낚시대를 꺽진 못하더라도, 언젠가 꺽을 요량이 있는 낚시꾼이라면 

낚시꾼마다 한 녀석 정도를 정해 두고

마음 속의 친구로 삼아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참, 공부 한번 잘 했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