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예술의 경지....


 

흔히들 무언가와 예술을 엮으려 한다.

아마도 사람이 가진 것 중에 가장 높아 보이는 것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겠지.

뭐뭐뭐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셨군요... 어쩌구 저쩌구....

그 중에 낚시 또한 빼먹을 수 없다.

 

플라이 낚시에서는 겉보기엔 폼나 보이는 캐스팅이라는 것이 있어서 특히나 걸치기 쉬운데,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전 유명한 사진가들과의 대담을 엮은 '사진가와의 대화'라는 책을 읽다가 한 줄의 글이 눈에 들어 왔다.

 

問 "사진기는 주로 어떤 걸 쓰십니까?"

答 "문학가나 미술가에게는 어떤 펜이나 타이프라이터, 어떤 물감이나 붓을 쓰냐고 묻지 않으면서

     어째서 사진가에게는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게요? 사진의 예술은 사진기가 해내는 게 아니고

     사진가를 통해서 흘러 나오는 것이오."

 

참으로 눈에 들어 오는 글이다.

예술의 경지에 오르고자 하는 플라이 낚시꾼에게도

무슨 낚시대와 채비를 쓰는 가를 궁금히 여길 것이 아니고,

어떠한 낚시를 하는지 그냥 눈여겨 살필 지어다.

 

요즘은 다양한 매체를 통한 접근의 다양성까지 포괄하는 예술의 개념으로 확대되었지만,

그래도 변치않는 하나는 예술이란 느낌과 인식의 세계이다.

느낌과 인식의 주체를 통해서 타자와 공유될 때 비로소 다시 예술이란 이름으로 느껴지고 인식된다.

 

그러한 의미라면 낚시에게서도 충분히 예술은 있을 수 있다.

한 번의 캐스트과 같은 단순히 겉보기에 느껴지는 한 조각 단편 역시 예술의 이름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기 쉬운 낚시에게서 보다 깊은 단계의 예술의 경지를 겪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큰 고기나 많은 물고기 수로 얻어 지는 것도 아니고,

찰나의 감각이나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도 얻어 지는 것이 아니다.

박식한 지식이나 유연하고 몸에 익은 손재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추함(醜)과 아름다움(美)을 떠나서 만물에게 예술의 느낌을 주는 것을 아름다움(眞美)으로 칭해보면,

생명을 죽이고 비린내를 풍기는 낚시의 모습이 아름다우려면

그 생명의 값어치 만큼이나 귀한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 그러한 아름다움이 몇이나 있으랴?

어쩌면 그래서 플라이 낚시꾼은 고기 놓아 주는 척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희의 개념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맘 편하진 않다.

내용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모습이 아름답기 쉽다.

유일하게 맞먹는 아름다움은

사람이 밥먹고 사는, 또 다른 생명이 밥먹고 사는 것, 일상 그대로 이다.

생명이 살고 죽고 다시 살아가는 것 그 자체....

 

사람이 만든 흔한 예술이 예술가만이 찾아내거나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남들에게 강요하거나, 과시하는 반면에

오랜 고대의 생활이었던 낚시는 만물의 생멸이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함께 굴러감으로서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Natural....

 

다시 말하자면 낚시 그대로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낚시는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낚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즐기는 낚시꾼은 몇이나 있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낚시를 준비하고,

아름답게 채비를 던지고, 아름답게 고기를 낚고....

 

요즘처럼 스포츠로서의 낚시로 변질(?)되면서 엉뚱한 겉모습의 아름다움에 오히려 빠져 있다.

차라리 사람이 갖는 여유로움이 생명을 바치는 고기에게로 이어졌으면 오히려 좋으련만

겉모습의 미추(美醜)에서만 예술을 찾으려는 낚시꾼이 아쉽다.

 

이미 낚시꾼은 예술의 경지 이건만,

그것을 깨닫는 낚시꾼은 극히 드물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