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웃음을 가진 낚시꾼


 

많은 남자들이 오랜 시절 잊지 못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군대에 관한 기억 혹은 추억들인데,

떨떠름 했던 기억들은 모두 버린 채, 나는 이젠 추억들만 남아 있다.

남들 군대 이야기 하는 것이 우스워 좀처럼 하진 않았는데,

결국엔 나도 군대 이야기 한번 써 보는 구나.....-_-;

 

재밌지 않으면 안 산다는 내맘대로 가졌던 좌우명 탓에

어린 마음에 재밌는 군대를 찾아서 헤메던 나는 재밌는 군대는 대부분 복무기간이 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나마 학교복학이 가능했던 재밌는(?) 某부대가 있어서 자원입대 했었다.

 

내무생활이나 다양한 훈련 등이 힘들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입대 후 처음 갖는

훈련소 시절이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고 재밌는(?) 추억들도 많았다.

다른 군대보다 훈련기간이 좀 길었던 탓에 그럴 수도 있고....

 

그중에 하나가 떠 오른다.

80년대말 쯤이라 구타근절이란 말이 좀 생소했던 때이고, 그런 거 없이는 기합이 안든다는

약간 묘한 분위기의 군대라서 훈련소 시절은 제법 유난했다.

소위 밖에서 한 가락씩은 했다는 녀석들이 모인 훈련생들이었지만,

로봇과 같은 교관들의 무시무시한 외모와 철인 같은 체력 덕분에 기합이 바짝 들었었고,

잘 하나 못 하나 얻어 맞거나 기합을 받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좀 덜 하려고 눈치를 살피며 죽을 힘을 다하며 악을 쓰던 때였다.

거친 녀석들 사이에 싸움이 날만도 했지만,

어쩌다 일어난 한 번의 싸움에 죽을 때까지 못 잊을 단체 기합을 받고는 그럴 일은 없어졌다.

그때 교관들의 카리스마는 어찌나 대단했던지 도저히 같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간단한 줄서기 하나에 오와 열을 맞춘다고

3층 이상 높이의 건물 옥상의 보통사람은 올라서 있지도 못하는 폭이 한 뼘도 안되는 담벼락 위에 서서는

건물 한 쪽 끝에서 다른 한 쪽 끝까지를 전속력으로 뛰어서 이동하고는

갑자기 멈춰서 로봇처럼 회전 한 후, 연병장을 바라보며, 어디에 몇 번째 줄이 어떻게 틀렸다고 고함을 쳐대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번 쑈를 본 후엔 전원이 오바이트를 할 때까지 굴러야 했지만,

같은 남자로서 오히려 교관이 부러워졌었다....-_-;

 

그러한 교관들이 취침 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시간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에러가 있으면 전원 잠 못자는 밤이 준비되어 있는 초 긴장의 시간이었다.

청소상태, 암기상태 점검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차렷자세에서 3분 이상이 지났는데, 눈에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고

건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맞아서 날아 다니며 한 바퀴를 돌아야 하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

우찌하다 보니 나는 훈련생 중에서 중대장 간부를 하게 되었는데,

총 대대장 생도가 나와 같은 중대 소속으로 내 옆에 자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유도 대표선수 생활을 하던 녀석이라 나와 함께 밤마다 지압과 스포츠 마사지를

서로 교대로 해주며 몸을 풀어 주던 친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저녁 점검 때는 서로 바짝 긴장해서 내 앞에 서 있는 녀석과 눈도 한번 맞출 수 없었다.

녀석의 인원보고에서 말을 더듬는 다거나 한 번의 실수라도 있으면 모두가 밤 잠을 못자고,

오늘 밤 하수구에선 무슨 맛이 나는지, 화장실에는 무슨 맛이 나는지 함께 확인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어느날 저녁 점검을 기다리며 내 앞에 선 녀석은

날 보며 실실 눈웃음을 치더니 농담을 해대는 것이었다.

낮에 있었던 웃기던 이야기를 하면서....-_-;

 

'죽을래?' 라는 눈빛을 내가 보내 봤지만,

잘하나 못하나 어차피 죽을 거 긴장 풀고 여유있게 하는 게 낫다며 녀석은 그치치 않았다.

살면서 처음 본, 참 배짱 좋은 놈이었다.

눈이 뒤에 달려 있다는 교관들을 속여가며

나와 함께 눈짓을 교환해 가며 스릴을 즐겼다.

 

아마 나도 그 순간을 지나면서 부터야 겨우 다시 사람으로 돌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주변의 녀석들에게도 조금씩 나눠 줄 수 있었다.

늘 여차하면 파묻어 버린다는 교관들의 위협 속에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은

잠시 동안 이성을 접고 본능으로만 사는 생존을 위한 짐승으로 변했었던 것이다.

 

언젠가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란 영화를 보면서

그 시절이 내 기억속에서 돌아나와 추억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웃음과 여유라는 것이 얼마나 삶을 바꾸는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낚시도 피비린내가 나기도 하는 짐승들의 생활 또는 놀이라 볼 수 있지만,

웃음과 여유가 더해진 낚시꾼이라면 조금 낫지 않을까?

 

물론 고기를 웃길 수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

라고 혼자 상상하며 키득 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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