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오후, 점심 때쯤 되어서 갑자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있냐구....

있다구 그랬더니 대뜸 온댄다.

그래라....-_-;

함박 웃음을 진채, 동생은 쬐금한 아이스 박스 하나를 메고

바다 냄새를 풍기며 현관 문을 열였다.

딸아이의 "쌈촌! 쌈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아이스 박스에서 꺼내 든 것은

얼핏봐도 제법 넙대대한 광어다.

'좌광우도' 라며 낚시꾼의 바이블이라고 외던 그 광어다.

나는 외기만 했지 그리고 솔직히 도다리 정도나 낚아봤지.

광어는 낚아 보지 못했었다.

오늘 아침에 서해에서 낚아 온 것이랜다.

"오옷, 대단한데!!" 추임새를 한번 넣어주고는

나는 얻어 먹는 자의 수고로움으로써

오래만에 회칼(일식 조리도; 사시미)을 뽑았다.

동생이 딸아이와 축구 놀이를 하며 거실에서 노는 동안

천천히 광어를 다듬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노무 회칼은 들고만 있어도 눈썹이 곤두선다.

극도의 예리함 때문에 실수로 손가락이 살짝 닿기만 해도 살이 쩍 벌어지기 때문이다.

우선은 자주 쓰는 사각칼(중식 기본 조리도)로 비늘을 벗기고

지느러미를 적당히 끊어 낸 후, 표면을 잘 씻어 물기를 닦았다.

도마에 꽉 차는 군.....^^

우선 회칼로 옆지느러미 바로 뒤에 칼집을 넣었다.

아가미 뼈가 밀리면서 살아 있는 듯 광어는 입을 쩍 벌린다.

이미 죽은 녀석이지만,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듯....

날카롭고 긴 이빨은 살아 있던 동안의 녀석의 삶을 짐작케 한다.

차로 오는 사이에 방금 죽은 거라 아직 피가 굳지 않아 흘러 내린다.

'녀석 미리 좀 뽑아 두지....'

그나마 완전히 굳지 않아서 좀 낫겠지만,

이렇게 되면 광어 회가 좀 분홍 색을 띄면서 살에 피맛이 나게 되어 맛이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난 안다.

동생도 나 같아서 직접 제 손으로 고기 숨 끊기가 싫었을 것이다.....

피와 내장을 긁어 내어 처리하고 다시 한번 도마에 얹었다.

이제 포를 뜨기 위한 칼을 넣어야 한다.

광어회는 솔직히 쉽지 않다. 고기가 옆으로 얇은 통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데다가

광어회가 갖는 특유의 지느러미 살을 제대로 뽑아 내려면 아마츄어 인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먼저 윗 판이다. 자연산 답게 등 판도 점박이 마냥, 얼룩 덜룩 하다. 그리고 흰색은 꽤나 희다.

영차 영차 최선을 다해서 지느러미 살과 뱃살을 붙여서 한 장을 뽑아 냈다.

음, 오랜만에 하는 거라 좀 어색하네.....^^;

광어는 내장과 옆가시가 적어서 지느러미 살만 잘 뽑으면 나머진 오히려 쉽다.

다시 뒤집어 아랫판을 마저 떴다.

뼈가 붙은 몸 판은 적당히 토막쳐서 매운탕 냄비에 담고,

도마를 깨끗이 씻은 후, 두 장의 포를 뒤집어서 껍질을 벗겼다.

광어와 같이 얇은 고기는 포를 뜬 후에 벗기고, 방어 같이 살이 단단하고 뚱뚱한 녀석들은 미리 벗긴 후 뜬다.

거의 마지막 단계인 껍질 벗기기는 언제나 그렇듯 쉽지 않다.

칼만 믿고 조심조심 칼을 넣어 껍질을 쥐고 밀어 냈다.

먼저 지느러미 살을 걷어 내고, 뱃살을 따로 끊어 낸 후,

두 장의 포를 옆선을 따라서 칼금을 넣어 네 장으로 나눴다.

각각의 포는 칼을 뉘어 얇게 먹을 회로 떠 냈다.

투명하니 옅은 분홍색의 녀석의 살은 적당한 바닷내음과 비린내를 풍긴다.

어쭈, 제법 한 접시가 꽤 넘네.....

상을 펴서 얇게 저민 마늘과 고추냉이 간장 한 종지 그리고 초장 한 종지와 함께 냈다.

집사람과 함께 셋이서 회를 즐겼다.

광어는 고추냉이 간장이 제격이다.

육질이 담백하고 잡미가 없는 탓에 정말 최소한의 간장만 있으면 된다.

광어를 상추와 같은 채소에 쌈싸 먹는 건 거의 아이러니에 가깝다.

광어의 섬세한 맛은 야채만으로도 충분히 가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미식가는 막소금을 곱게 갈아서 뿌려 먹는다고 하더라 마는 그러고 싶진 않다.....

게다가 자연산 광어는 날렵한 몸집 만큼 너무 담백하다.

양식산이 두툼한 몸집에 약간 느끼하며 고소한 지방을 숨겨 있는 반면에

자연산은 오히려 별 맛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런 탓인지 살점도 더욱 투명해 보인다.

시골의 토종닭 생각이 나듯 좀 질긴 듯도 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섬유질이 질긴 대신에 씹으면 알갱이가 터지는 듯한 색다른 느낌을 받는다.

뱃살이나 지느러미 살도 전혀 비리지 않다.

이게 뱃살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담백하다.

놀라운 것은 지느러미 살이 놀랍게도 부드럽다. 그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등판과 아랫판과의 맛의 차이가 심하다.

양식은 지방의 풍부함으로 대강 두리뭉실 가리는 반면에....

어느덧 접시는 비워졌고, 매운탕을 해봤다.

향내는 야채도 최소로 넣고, 고추가루와 후추도 줄여서 제맛 그대로 지리를 끓였다.

이런, 기름도 거의 안 뜬다.

양식은 기름을 걷어내야 하는 반면에.....

녀석의 국물 맛은

부시리(꼬마 정어리를 얇게 말린 국물내기용 건어물)나 좋은 멸치로 끓인 육수 맛에

광어의 살맛만 더해 있다.

아차, 실수로 아가미를 떼내지 않았는데도 광어답게 맛을 잘 유지하고 있다.

녀석의 몸 바침 덕분에 한 마리를 온전히 즐긴 후에 받는 느낌은

녀석은 참, 담백하다....

거친 바닷 속을 힘겹게 살아온 녀석의 맛은 그저 담백했을 뿐이다.

군더더기 없는 자연의 맛....

나도 죽을 때 쯤이면 그 맛이 날까?

시식을 끝낸 후, 집사람이 던지는 말이 내게 다시 남는다.

"당신보다 도련님이 낫네요...^^"

낚시랍시고 부지런히 다니지만 손에 쥐고 오는 것이 없는 나는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스로를 적당히 타협하자면

담엔 출조 후 돌아오는 길에 어물전이라도 들려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