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밤, 혼자 TV를 보았다.

한참 무슨 플라이 훅을 만들어서 뭐를 꼬셔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정신이 팔려 있을 때였다.

이젠 흔한 장면이지만, 부모의 IMF 실직으로 점심을 굶는 아이들,

갑작스런 사고로 아빠는 몸져 누워 있고 엄마는 가출하고 소년 소녀가장이 된 아이들,

외딴 집에 군불도 없이 혼자 당뇨병을 앓는 할머니....

그런 장면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 화면 위에는 항상 뭔가가 덧붙어 있다. 성금전화번호 700-****.....

TV에선 이미 오랫동안 다뤄와서 무덤덤해진 장면들이었지만

갑자기 낚시도 큰 사치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고기들의 생명을 담보로 놀아나는 피 냄새나는 유희라는 것 외에도......

저 사람들에겐 단돈 몇 천원이 큰 도움이 될텐데,

내가 한번 강원도를 안 가면 5~6만원이 남고, 유료저수지 낚시를 안 가도 3~4만원이 남고,

심지어 여의도 샛강을 한번 안가도 만원 가까이 남는다.

그런 것을 난 일년에 몇번, 한달에 몇번씩 하고 있다.

물론 내가 그런 애들과 노인들을 굶겨 가며 낚시를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어쩌다 그런 상황에 쳐 있는 것이고, 난 나 나름대로 노력을 해서

낚시 갈만한 여유를 얻은 것 뿐일 테지....

정신없는 사회생활에 쌓여 가는 스트레스를 어쩌다 한번씩 풀어서

다음의 생산성을 높혀 돈을 더 벌고, 좋은 일을 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도 해본다.

하지만 그들에겐 어떻게 봐도 사치라고 생각할 것이다.

싸구려라고도 해도 십만원대가 넘는 비싼 장비....

한번 출조에 몇 만원씩 드는 비싼 놀이....

니들도 열심히 돈 벌어서 낚시 다니라구? 그런 말할 정도로 떳떳한 낚시꾼은 없을 것이다.

휴~ 우......

비록 잠시지만, 금방 잊고 다시 히히 댔지만, 낚시를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했었다.

그나마 싸구려 장비에 헐렁하게 낚시 다녔던 게 속으로 다행이었다라는 웃기는 생각도 들었다.

출조 수라도 좀 줄여서 그 돈을 모아 좋은 일에 써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단지 생각만.... -_-;

낚시꾼들이라면 출조에 대한 그 열병같은 열정을 안다.

오랫동안 가지 않으면 손이 근질근질하다 못해 떨린다는 사람도 있다.

주윗사람들을 속여 가며, 갖은 핑계로 매주 낚시기회를 만들어 가는 낚시꾼들....

밥은 일주일을 굶어도 낚시는 한번 가야된다는 골수꾼들....

그들에게 출조를 줄이라는 건 사형선고와도 같다.

그런데 술값, 밥값, 옷값도 마찬가지로 줄여서 낼 수 있지만 유독 출조비가 맘에 걸리는 건 왜일까?

기본 의식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낚시 자체가 고기를 괴롭히는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기를 괴롭힌다면 그것도 줄이고, 그 만큼 다른 곳에선 좋은 일을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양심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옛 어머님들이 쌀독에서 한 종지 씩의 구황(救荒)쌀을 떠 두듯

나의 출조비를 모아서 딴데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낚시에 미쳐 헤메는 나의 마음도 많이 달래 지리라.

국내의 어떤 좋은 플라이 낚시 단체에서는 매달 출조마다 조금씩 금액을 모아서

멸종되어 가는 귀한 고기들의 치어를 키우고 방류하는 기금을 만든다고 한다.

참 좋은 일이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이 배워야 겠다.

그러고 보니 한편 딴 생각도 든다.

내가 낚시를 다니는 한은,

난 이 세상 최고의 사치를 누리고 있다고.....

아!  황제도, 갑부도 부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