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오징어를 다듬으며....


 

아이 손을 잡고 돌아 오는, 집앞 퇴근길에

오징어 활어차가 섰다.

 

10마리 만원!!

어라? 물론 자잘한 녀석들이지만 꿋꿋이 살아서 열심히 헤엄치는 녀석들을

보는 일은 즐겁다. 딸아이 또한...^^

 

그런데 먹는 것과 장난감의 개념이 없는 딸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빠 우리 오징어 사요!" 라고 조른다.

그래 오늘 저녁 반찬은 활 오징어 회 무침이다!

그렇게 맘 먹고는 샀다.

 

딸아이는 대야에 담겨서 물을 뿜는 오징어를 구경하며 꽤나 즐거워 한다.

도망갔다, 다시 살금살금 오고, 다시 또 꺅꺅 대며 도망가고....

 

근데 문제는 저녁 준비를 해야 하니 오징어를 잡아야 한다.

예전에 딸아이가 계란에서 병아리 나오는 동화책을 보고는 계란 프라이를 안 먹으려 했던 때가 있어서

좀 조심 스럽다.

이를 어찌 설명한다??

 

일단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이 오징어는 사람들이 먹으려고 멀리서 잡아 온거란다.

그냥 둬도 죽으니까 빨리 잘 다듬어서 먹어 주자.

먹으면 맛있단다. 어쩌구 저쩌구 꽤나 땀 닦아 가며 둘러댔다.

"응 알았어" 라고 대답하며 제법 어른스럽게 물러 나는 딸아이를 보니

내가 오히려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 뭐 내가 한 말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 라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산 오징어 한 마리를 쥐었다.

아무 생각없이 오징어 몸통과 다리를 각각 잡고 당겨

몸통과 내장 그리고 다리를 분리해 냈다. 다음은 몸통을 세로로 가위로 잘라 뼈를 발라 내는 일이다.

그런데, 다음 오징어를 쥐고 몸통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오징어는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반응해 온다.

죽음의 순간을 느끼고 있음을 명확하게 내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손바닥 보다 약간 긴 오징어,

늘 맛있게 먹었고 아무 생각 없을 것 같은 조그만 오징어 한 마리는

자신의 삶을 지극히 아끼며, 최선을 다해서 죽음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손쉽게 농약을 마시고, 가벼이 아파트 옥상을 뛰는

머리 복잡하며 자신의 존재를 무거운 척하는 인간의 가벼움이 떠오른다.

 

생명의 무게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고

아마도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낚시꾼인 나는 내 낚시줄 끝의 고기들이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 제대로 느껴 보았나?

 

내가 느끼지 못했던 그들의 진정한 무게는

크기와 상관없이 늘  무거웠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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