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고기를 잡다가...


 

원래 내가 쓰는 고기 잡다는 낚은 후 먹을 때 쓰는 말이고,

그냥 다시 놓아주는 것은 낚는다는 말을 쓰고 있지만,

이번엔 좀 이상하게 고기 잡을 일이 생겼다.

 

처가댁에 3자 정도 크기의 수족관이 있다.

딸아이를 장모님이 보살펴 주시는지라 매일 퇴근길에 처가댁을 들리는 나로서는

그 수족관의 고기 구경하기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단잉어 한 마리와 열대어 두 마리가 살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내 불찰로 잉어와 열대어 한 마리를 멀리 보내버렸다....-_-;

처가댁 어른들께서 휴가 가신 사이에 하루 저녁 내가 밥을 주게 되었는데,

이틀정도 굶었을 꺼라 생각하고 내 딴엔 밥을 넉넉히 주었더니

과식한 잉어와 열대어가 다음날 그만 운명을 달리하였다.

다시 한번 더 '부디 좋은 데 가기를.....'

 

썰렁해진 수조가 미안스러워서, 다음날 근처의 열대어가게를 들러서 구피(열대어)를 잔뜩 사왔다.

튼튼한 녀석인데다가, 새끼도 잘 낳고 심심찮게 해드릴 거란 생각이었다.

수초도 좀 구해다가 심고...

1주일 정도 지났을까? 어느날 퇴근길에 돌아와보니 암놈 한 마리가 수초더미 위에서

새끼를 낳고 있다. (구피는 몸 속에서 부화해서 새끼로 낳는다)

꼬마들이 수초 속에 몇 마리 보이는 걸로 봐서 이미 출산을 시작한지 제법 되었나 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종류의 열대어들이 암컷 옆에 붙어서 구피의 치어를 날름날름 삼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녀석은 아예 옆에 바짝 붙어서는 배가 터질 듯이 불룩해 있다.

벌써 몇 마리나 먹어치웠길래....

암컷은 애써 피해가며 한 마리씩 낳고 있지만 잡혀 먹는 녀석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함께 지켜보던 집사람이 애처로운 암컷의 심정에 감정이입 되는지

소스라치게 비명을 지른다. 나 역시 이마에 핏발이 선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열대어용 뜰채로 전문 치어 사냥꾼들을 떠서 잠시 격리해 놓고,

집적대는 다른 녀석들을 쫓아내며 암컷의 산란을 도왔다.

그리고 태어난 새끼들은 임시 부화용 수조통에 담기로 하고 한 마리 한 마리 뜰채로 잡아내기 시작했다.

수초사이로 숨고, 돌틈으로 숨고, 수면 위에서 다른 고기들에게 쫓기는 긴급한 상황에서

다치지 않게 5mm 정도 크기의 치어들을 건져 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의 1시간반 정도 어미의 산란을 기다리며 건져낸 새끼의 숫자는 대략 20마리 쯤,,

이마에 땀을 닦으며 뜰채를 내려놓는 나를 보신 장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이서방이 낚시를 많이 다니더니 고기 하나는 잘 잡는 구먼...^^"

 

사실 나도 꼬마 때부터 낚시를 해왔지만,

평생에 고기 잘 잡는다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언제 잡아 먹힐지 모르던 정글에서 조그마한 부화통으로 옮겨와 살랑살랑 여유있게 헤엄치는

귀여운 애기 고기들을 보고 있자면 무슨 엄청난 일을 해낸 듯 했다.

그동안 낚시가서 고기 잡는 일보다 비교할 수 없이 기쁜 고기잡이 한 판이었다.

 

이런 고기 잡이도 있다니.....

고기를 죽이는 고기잡이가 아니라 고기를 살리는 고기잡이라...

아무래도 낚시의 개념을 좀 더 넓혀서 보아야 겠다.

 

그런데 또 한번 더 생각해보면,

자연 속에서는 당연한 멋진 저녁식사감을 빼았긴 다른 고기들은 꽤나 황당한 일일테지.

게다가 당연히 어리버리한 녀석은 죽고, 똘똘한 경쟁력 있는 소수의 치어들만

수초 속에 살아 남아 건강한 후손을 이을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저녁 상을 앞에 하고 조금 떨어져 앉아서

다양한 종류의 고기들이 어울려 지내는 수족관을 다시 돌아 보니,

그저 작은 수족관 속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눈 앞에 벌어지는 일이라 모른 척 하지 못했을 뿐,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나 역시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어미고기 역할을 당하는 가 하면,

얼씨구나 배 채우던 또 다른 열대어의 역할을 하곤 한다.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이해하면서 인간은 자라는 것이겠지.

 

마이크로 코스모스와 매크로 코스모스가 뒤집혀 연결되듯이

작은 일상 속에서도 내가 아는 우주 전체를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여전히 낚시를 통해서 배울 게 꽤나 많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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