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물 웅덩이
예전에 나라면
길을 지나가다 물 웅덩이를 본다면
비온 뒤에 생기는 세숫대야만한 거라도 저런 물 속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하는
지극히 낚시꾼 같은 엉뚱한 생각을 했을텐데,
얼마 전엔 좀 다른 웅덩이를 보았다.
전날 저녁에 늦게 잠든 탓인지 어느날 아침 늦잠을 잤다.
'이런 지각이다.'
월급쟁이 노릇한지 9년째지만
다니는 직장이 좀 빡빡한데라 신입사원 때 좀 단단히 길이 들었는지,
아직까지 지각하는 데 대한 강한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나마 요즘은 좀 느슨해져서 일년에 두 어번 정도는 하게 되는데,
그래도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달려가는 맘 속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몹시 편치 않다.
'지금 출발하면 대강 10분쯤 지각하겠군...'
이런 맘으로 혼자 조급히 차에 앉아 있는데,
마침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
마음을 좀 달래 보자고 창 너머를 살피자니
길가에 조그만 물 웅덩이가 있다.
새벽까지만 해도 내리던 비 때문이겠지.
낡은 건물의 처마 밑으로 물방울이 툭 툭 떨어 진다.
물 웅덩이는 그 물방울을 온 몸으로 받으며
떨어 질 때마다 수면을 흔들어 댄다.
하지만 그것도 그 순간만 잠시, 다시 잔잔한 수면으로 돌아 오곤 한다.
물 웅덩이는 그냥 그렇게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 내고 있을 뿐 스스로는 큰 변화가 없다.
아마도 폭우가 와서 물 웅덩이를 파헤쳐 버린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녀석은 그냥 다시 조그만 물 웅덩이가 될 것이고,
해가 나서 물 웅덩이를 말려 버린다고 해도,
그냥 그렇게 있다가 다시 비가 오면 잠시 물 웅덩이가 될 것이다.
사람이 찾는 만물의 길(道) 역시 그냥 이런 물 웅덩이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외부의 자극이나 고통에 과장되게 꿈틀일 필요도 없고,
있는대로 느끼고 반응하되 그 본질은 변함없을 것....
혹은 그 본질 마져 만물과 비슷하게 순응해 가는 것...
물 웅덩이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지각한 내 마음이 조금씩 담담해져 감을 느낀다.
얼씨구, 핑게 하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