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호상(好喪)의 추억


 

살인의 추억을 꽤나 재밌게 봐서 제목만 한번 빌려 봤다.

 

얼마 전에 친분이 있는 한 플라이 낚시인 댁에 모친상이 있어서 문상을 다녀 왔다.

졸(拙)하신 분께서는 연세가 그리 많으시지는 않았지만,

오랜 지병 끝에 편안히 가셨기에 상주(喪主)분들께서도

이미 마음에 준비가 있으셨던지 가슴 속의 슬픔을 많이 이기신 모습이다.

 

이런 것을 호상(好喪)이라고 하던가?

그러나 세상에 좋은 상사(喪事)가 어디 있겠는가?

 

호상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나의 외조모께서 떠나 가셨을 때다.

18세기 말쯤에 첫 생신을 가지셨고, 아흔여섯의 연세까지 장수하셨다.

가시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밭일을 나가신다고 하실 정도로 정정하셨고,

가시기 하루 전날 자리에 누우셨다가 새벽에 주무시며 편안히 가셨다.

게다가 오랜 불심(佛心)으로 신통력을 얻으셨는지,

수 십년 전에 가실 해(年)를 미리 아셨고, 가시기 일주일 전에는

나를 비롯한 손자 자식을 차례로 부르셔서 마지막 인사도 하시고,

나에게는 단정히 해야 한다며 손톱을 깍아 달라고 하셨다.

그래도 막상 소식을 듣고서는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평소 덕이 많으셨던 분이라, 3일장을 치루는 동안 산골 외가집 앞마당에는 차양이 펼쳐지고,

문상객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문상객 마다 호상이라 칭하며,

모여든 마을사람들도 밤마다 윳놀이에 노래자랑에 아예 동네 잔치판이 벌어졌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어릴 때부터 무척 아껴 주시던, 친외가를 통털어 한 분 밖에 안계시던 할머님께서 돌아 가신터라

슬프기 그지 없는데, 웃고 떠들고, 술타령에 가끔 윳놀이 판정 시비까지 붙기도 하는

야단법썩 잔치판은 어린 마음에 뒤엎어 버리고 싶었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나 어른들께서는 그렇게 즐겁게 보내드려야 가신 분께서 편안히 떠나 가신다고 하시며 말리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슬픔의 승화 차원을 떠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지인의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인 것 같다.

떠나 보내는 이의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은 떠나간 이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고,

떠나 가신 이 역시 미련이 없으시다는 것을 뜻한다.

 

낚시꾼인 나 역시 언젠가는 죽겠지.

일생을 고기 괴롭힌 주제에 호상으로 느긋하게 죽을 복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무거운 상가의 분위기를 낚시꾼다운 호상으로 바꿀 엉뚱한 생각은 하나 있다.

 

고기를 늘 친구라고 우겼으나 발 달리지 않은 물고기들은 문상은 못 올 게고,

잿밥이라도 청해서 먹일 수 있도록

적당한 고기밥을 따로 챙겨 자주 가던 물가에 뿌려 함께 즐기라고 해야 되겠다.

 

아마도 낚시꾼의 好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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