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시계 이야기


 

한번의 캐스팅에 고단 삶을 잠시 잊고자 하는 낚시꾼에겐 

불필요해 보이면서도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시계다.

 

얼마나 달려야 늦지 않게 물가에 도착할 것인지, 언제쯤 잊지 않고 점심을 챙겨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쯤 낚시를 접고 차로 돌아 와야 하는지....

그렇게 보자면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 것 같군.

 

나도 주로 낚시갈 때 차는 시계는 군대 있을 때 구한 물에 들어가는 시계다.

물속에 있는 돌을 뒤적이느라 한 겨울에도 손을 물에 담궈야 하기 때문에 확실히 방수가 되는 시계가 편하다.

구한지 벌써 15년 가까이 되어 가지만 참으로 튼튼한 녀석이다.

두툼한 금속으로 된 외관부터가 참 실하게도 생겼지만, 쿼츠 스타일에 시간도 꽤나 정확한 편이라서  믿음직한 녀석이었다.

단점이라면 상당히 무거운 탓에 장시간 캐스트하면 에너지 소비가 추가 된다고나 할까?

잔정이 많이 든 녀석이라 결혼 후에도 줄곧 벗지 않고 함께 지냈다.

그런데 올해 초쯤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시계가 바꾸고 싶어졌다.

원래의 물시계(?)는 투박하고 큰 탓에 정장에 안 어울리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제 나도 조금씩 나이가 드나 보다.

열심히 고민고민하다가 생각난 건 엉뚱하게도 오토매틱 시계가 다시 갖고 싶어졌다.

 

처음 입대할 때, 아버님께서 주셨던 마구차기 편한, 골동품의 두툼하고 묵직한 시계가 하나 있었는데

최초의 전기모터로 가는 수은전지 방식의 시계라 초침이 똑딱 거리지 않고(전자식 쿼츠 방식),

바늘이 아날로그로 둥글둥글 굴러가는 시계였었다.

육중한 외관에 그때 당시 유행하던 각진 크리스탈 덮게 유리라서 가끔 유리 자를 때 쓰기도 할 정도로

튼튼 그 자체였던 시계라서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맘에 들었지만,

가장 맘에 들었던 이유는 인정머리 없게 똑딱이지 않는 둥글둥글 굴러가는 초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아쉽지만 그 시계는 예전에 알던 시계를 모으던 어떤 친구에게 줘 버렸고,

다시 찾는 일은 우습다.

 

그래서 그 바늘을 찾자니 아주 옛날에 보았던 오토매틱 시계가 떠 올랐다.

국내에는 별로 흔하지 않아서 곧장 ebay를 통해서 적당한 브랜드에 디자인을 골라서 하나 구해 왔다.

역시나 두툼한 두께를 가진 녀석이다. 군청색의 자판에 그냥 단순하게 생겼다.

전지를 쓰지 않고 차고 있으면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서 자동으로 태엽이 감겨지는 오토매틱 시계.

좀 과장하자면 주인이 살아 있는 한, 거의 무한정 동작한다는 오토매틱 시계다.

우찌 보면 이 시계는 차는 순간 주인 몸의 일부가 되어 함께 움직이는 묘한 느낌을 준다.

주말에 시계를 벗어 놓고 월요일이 되어 출근할 때가 되면 차갑게 식은 채 죽어 있다.

마치 내 생활이 멈춰져 있었던 것처럼....

다시 차고 몇 번 흔들어 주면 눈을 뜨고 나와 함께 새로운 월요일을 출근한다.

오토매틱의 아날로그이다 보니까 늘 시간이 정확하지는 않은데다가 잠시라도 벗어 두면

금새 멈춰 버리는 통에 시각을 알리는 시계로서의 가치는 다소 부족하다. 

어차피 요즘은 핸드폰이 시계 역할을 대신이니 이미 시계는 상징의 의미일 뿐일지도 모른다.

녀석은 세상이 알려 주는 시각 외에 항상 자신만의 시간을 따로 갖는다.

오히려 시간이 정확하지 않다 보니, 이 녀석을 차고 다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항상 여유 있게 움직여야 한다.

약속시간 보다 약간 일찍, 출근시간보다 약간 빨리, 낚시 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녀석은 끊이지 않고 둥글둥글 적당히 굴러가는 아날로그 감각으로 늘 시각과 시간에 쫓겨 사는 나에게

이런 시간 개념도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여유를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대충 살아 가는 시계가 주말에 죽지 않는 때가 있는데 그건 토요일 날 오후에 캐스트 연습을 했을 때이다.

플라이 캐스트라는 게 원래 팔을 흔드는 일인데다가 나는 왼손잡이라서

시계를 찬 팔과 캐스트 하는 팔이 겹친다. 

참으로 어울리는 사이 아닌가?  오토매틱 시계와 플라이 캐스트라니....

주말을 플라이 캐스트 연습으로 충전한 나와 시계는 휴일 내내 삶을 멈추지 않고 

흐려지지 않은 맨정신으로 몸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낚시의 답을 찾는 나에게 녀석들이 던져 주는 또 다른 답은

오토매틱 시계가 잘 어울리는 플라이 낚시 역시 O X가 분명한 디지탈이 아니고

아날로그 신호라는 것인 것 같다.

 

답이 정해진 것도 없고, 정확하지도 않는데다가, 늘 자신만의 시간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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