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샛강 그리고 낚시 모자


 

오랜만에 샛강을 나가 보았다.

다니는 직장에 일들이 좀 많아지면서 한동안 뜸했었다.

 

내게 있어서 샛강은 단순히 낚시질만을 위한 장소는 아니다.

고기도 낚고, 사람도 낚고, 낚시기술과 캐스트도 다듬고, 명상도 하고....

그러다 보니 연중 샛강 나가는 횟수가 내 삶의  고단함을 가르키는 지표 같기도 하다.

 

겨울 샛강은 고기가 없는 탓인지 낚시꾼에겐 강바람이 더욱 세차다.

물가의 강바람은 아스팔트 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옷 속을 파고 든다.

대부분의 낚시꾼은 찾지 않지만, 아무도 없는 심지어 고기마저 없는 샛강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때다.

그런 샛강을 찾기 위해서는 제법 중무장을 해야 하는데,

털모자와 목도리는 필수 아이템이다.

나는 겨울엔 주로 Beanie Hat 이라고 부르는 머리에 딱 끼는 털실로 뜬 뒤집어 쓰는 털모자를 쓰는데,

이게 따뜻하기는 그만인데, 짧으면 귀를 못 덥기도 하고, 푹 쓰고 있자면

머리가 죄여서 오랫동안 쓰다 보면 나중엔 두통이 오기도 한다.

가끔 불만을 얘기했더니 최근엔 집사람이 내게 맞는 털모자를 하나 떠 줬다.

귀까지 푹 쓸 수도 있고 적당히 커서 머리도 편하고, 모양도 멋진 녀석으로 아주 맘에 쏙 든다.

올 겨울 샛강엘 처음 나가는 터라 당연히 새 털모자를 쓰고 나갔다.

세찬 바람에도 느끈히 버틸 수 있는 게 겨울 샛강을 즐기기 한결 수월하다.

 

도착한 샛강은 바람과 그것에 답하는 물결만 일렁일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벌써 차가워진 수온 탓에 녀석들은 이미 깊은 곳으로 혹은 따뜻한 물로 옮겨 갔겠지.

강둑에도 낚시꾼의 발자국은 없어 진지 오래고, 겨울 철새들의 발자국만 가득하다.

스산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샛강은 어쩐지 밝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샛강 저 멀리 강 건너가 시원하게 보인다.

수로 앞의 바지선들이 사라진 것이다. 보통은 그렇지 않았는데 올해는 동절기를 대비해서 옮겨 두었나 보다.

올 겨울은 가슴 시원한 샛강을 좀 더 볼 수 있겠군.

 

몇 번의 바닥 긁기를 시도해 본 다음, 아예 캐스트 연습으로 바꿨다.

평소 문제가 많던 백워드 홀도 연습해보고, 새로 익히는 님핑과 드라이 프리젠테이션도 연습해 보았다.

좋은 물 흐름 덕에 님핑 연습도 해본다.

늘 그렇듯 겨울 한강은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꽤나 맑은 모습이다.

내년 봄 가뭄이 오기 전까지는 맑거나 하얗게 얼은 상태로 나를 맞아 줄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샛강이 내게 주는 즐거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시원한 강바람에 폐부를 씻고, 찡한 냉기에 머리를 비우며, 

그동안 밀린 낚시 공부에 불안했던 낚시꾼의 마음을 달래주며, 

전철역까지 뛰어서 돌아오는 길은 두 다리에 다시 힘을 실어 본다.

그리고 휑하니 비어 있는 샛강이 가진,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그 무엇인가가 내게 주는 에너지의 충전은 언제나 놀라 우며,

텅 비었으면서도 생명을 가슴에 가득 안고 있는 온전한 샛강을 바라보며,

감사히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저 편안한 가까운 물가가 주는 즐거움은

이제는 편안한 아내가 짜 주는 털모자 하나 만큼이나

다시금 고맙고,

 

그저그런 평범한 것들이야말로 내 인생을 늘 가득 채워 줌을 깨닫게 하는

공기며, 물이며, 쌀이며, 주머니 속의 동전이며,

한 겨울의 한 조각 따스한 햇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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