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색깔과 향


 

오랜만에 서울에서 퇴근하면서 전철로 한강을 건넜다.

저 멀리 샛강이 보인다.

 

날은 흐린데다가 바람마저 세차다. 당연히 뻔하게 빈 샛강이겠지만,

사무실이 남쪽으로 옮겨 간 이후엔 좀처럼 드문 날이라 잠시나마 이른 저녁을 샛강에서 누리고 싶었다.

 

전철간에 서서 영국 쪽 낚시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누군가 내 옆에 서서 나란히 책을 펴 든다.

모른 체 하고 읽는데 어디선가 복숭아 향이 흘러 온다. 

어 이 향은??   랄프로렌의 로맨스인가? 어디선가 맡아본 향인데,,,,

향수에 특히 복숭아 향 계열에 민감한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 옆의 책을 봤다. 어라 영어 책이다.

조금 더 고개를 돌려 보니, 중학생 쯤 되었을까?  외국인 여자아이가 서 있다.

외국에선 벌써부터 향수를 쓰는 군. 참  괜찮은 일이지....^^;

 

물고기 중에서도 복숭아 향이 나는 듯한 고기가 있다. 

녀석의 이름은 산천어다. 한참 햇살이 따스해진 봄의 복사꽃 향기 속에 낚았던 추억 때문인 것 같다.

봄에 보는 옅은 색깔의 녀석들의 살갗에는 암수를 모른 체, 옅은 복숭아 향이 감도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전철을 내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어디선가 오이 향과 물 향이 번져 온다. 

주변을 살피니 버스정거장 뒤쪽 건물에서 마침 잔디밭을 깎았다.

갓 베어진 풀 향이 저기압의 바람과 낮 동안 달궈진 지열로 바닥으로 깔려 온 것이다.

한여름 소나기 내린 뒤에나 맡을 수 있는 귀한 향이다.

맑은 물에서 낚은 끄리에서도 비슷한 향이 느껴진다.

오늘은 특이하군. 

기껏해야 샛강을 가볼 작정인데 벌써부터 후각을 마비시켜 버리는 군.

 

샛강을 마치고 돌아 올 때였다.

점점 붉어지기 시작한 노을이 샛강의 넓은 벌판을 지날 무렵 불타 올랐다.

당산철교를 배경으로 일렬로 늘어선 들불은 정신을 아찔케 할 정도였다.

언젠가 금강에서 이런 노을을 한번 보았었지....

얼른, 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에게 볼 수 있도록 아내에게 일렀다.

돌아 오는 길 내내 그 붉은 색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헝겁으로 된 낚시대 집의 붉은 색은 조금은 떠 보이고, 아파트 입구의 소화전의 붉은 등은 너무 밝다.

바로 돌아오는 버스의 "내립니다" 스위치의 붉은 등이 바로 그 색이었다.

약간은 탁한 듯하면서도 환함을 감추고 있는 적당한 붉은 느낌..

당분간 저녁에 버스 타는 일이 즐거울 것 같다.

 

집 앞에서 올려 다 본 하늘은 싯푸른 색이다.

하늘이 가장 푸르지는 때는 가을도 아니고, 봄도 아니다. 

바로 어둠이 오기 직전의 푸른 하늘이다. 검정색이 완전히 섞여 지기 직전까지 

푸른색은 절정을 달한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역시 시간을 억지로 늘려 가며 남아 있던 낚시터의 여유 때문이었지...

 

시각과 후각을 가득 채운 그날의 낚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역시 낚시를 가는 이유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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