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정지 비행
나는 어려서 부터 나는 것을 좋아했다.
실제 날아 볼 기회는 드물지만 나 대신 자유로움을 갖는 새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다음에 동물로 태어 난다면 꼭 새가 되어 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칼새가 맘에 들었다. 인간의 수명과 평생 대양을 나는 신천옹은 그럴 듯 하지만 외로웠고,
수리나 매는 피냄새가 짙었고 비둘기나 참새는 너무 여렸다.
오로지 나는 일이라면 칼새만큼 시원히 나는 새가 또 있을까?
군복무 때, 오지의 섬 해안절벽에서 올려 다 보는 비행기의 영역보다 더 높은 곳에서 고속으로 노니는 녀석들을 보는 일은
하루가 지겹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새들을 많이 관찰했었는데, 어렸을 때 보았던 까치 또한 대단했다.
부산 고향엔 태풍이 자주 온다. 다니는 중학교는 산중턱에 있었는데, 숲에는 까치가 많았다.
산비탈 높은 곳이 학교창문에서 바라 본 녀석들은 태풍을 즐기고 있었다.
줄을 지어서 차례로 높이 올라가 바람을 버티다가 더 이상 이겨낼 수 없으면, 아무 생각 없이 바람에 몸을 맡겨
마치 구겨진 종이비행기처럼 휘날아 가다가, 어딘가 부딪히기 직전에 몸을 바로 잡아 바닥에 붙어 바람을 피한 뒤,
동료들의 뒷줄에 서서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먹이 먹는 일마저 잊어 버린 채, 나뭇가지에 앉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런 놀라운 녀석들, 태풍을 즐기고 있었다...
또 한번 내가 푸욱 빠진 비행이 하나 있는데 그건 샛강 낚시를 다니면서 보게 된 녀석이다.
황조롱이인지 새매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일단은 새매로 하자.
녀석이 샛강에 나타난지는 대략 2년쯤 되나 보다.
줄곧 혼자 다니는 게 좀 안스럽긴 하지만, 녀석의 비행 만큼은 정말 대단하다.
샛강의 강바람을 버티며 먹이감을 찾기 위해서 정지비행을 하는 것이다.
온갖 난류 속의 세차며 엉킨 바람 속을 마치 찍어 놓은 점 마냥 가만히 공중에 멈춰 서 있는 것이다.
자세히 살필 땐 거의 1분 이상을 서 있기도 한다.
세상이 이렇게 가라, 저렇게 살아라고 귓가를 스치며 수없이 명령해도
녀석은 그냥 그렇게 세상을 거슬러, 오히려 바람의 어깨를 타고 앉아,
자연의 법칙을 깔보며 자신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위풍당당하게...
얼마 전 역시 바람이 세찰 때였다. 웬일로 가까이 떠 있는 녀석을 보자,
난 아예 낚시 가던 길을 멈추고 녀석을 따라 다녔다.
길이면 길, 풀숲이면 풀숲, 덕분에 녀석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 볼 수가 있었다.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 5~7M 상공까지 떠 있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날은 땅 위를 덮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은 집요하게 따라 다니는 나를 흘깃 보고는
가소로운 녀석을 보았다는 듯이 휙 고개를 돌려 어깨를 아주 조금 움직여 날개 각을 약간 비튼 뒤,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 올라 가버렸다.
※ 낚시꾼이 된 순간만큼은 새매의 흉내를 내지 말고 까치의 흉내를 내자.
뭔가가 거슬러 보려 하는 것은 도시에서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