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처음 느낌


 

몇 주 전쯤, 토요일 아침

딸아이와 둘만 있게 되어서 단둘이 외출을 했다.

 

이대 앞의 특별한 찻집에도 가보고, 장난감 가게도 가보고, 남대문 시장도 돌아 보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시청 근처엘 가면 꼭 가게 되는 모 갤러리도 들렀다.

개인적으로 무료로 입장할 수 있기에 전시가 있으면 빼놓지 않고 가고 있다...-_-;

딸아이도 가급적 어릴 때부터 미술관이나 전시관람을 당연히 여길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로 한 달에 두어 번씩은 꼬박꼬박 데리고 다닌다.

이젠 제법 미술관 간다면 즐거워 하며 함께 나선다. 

 

마침 신규전시 open 한 다음 날이라 무척 조용했다.

주제는 일종의 미래예술의 한 모습으로 문학과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쏟아내는 특이한 형태로,

단순한 Text 만으로 독자에게 내뱉듯 던지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독백 형태인 동일한 소재를 자신과 다수의 타인으로 나눠서 조금의 text 변형과 전시방법의 변형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배경음악을 하나는 차분하며 낭만적인 피아노 음 계열의 연주곡으로 또 하나는 긴장감을 더하는 드럼곡으로 풀고 있는 점이

대조되면서 자신의 독백 쪽이 더욱 느낌을 강렬하게 주었고, 

딸아이와 함께 한참 동안을 바라보다 왔었다.

작가의 의도대로인지는 모르겠으나, text 와 음악이 온몸을 사로 잡으며, 이상하게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또, 시청 쪽을 지나갈 일이 있어서 다시 전시관을 찾았다.

맘에 드는 전시관은 보통 몇 번씩 다시 찾는 편이다.

 

아예 맘 먹고 예의 그 전시물을 찾아서 자리 잡고 앉았다.

마침 사람도 없고 맘 내키는 대로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때 그 느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딸아이와 함께 하지 않아서 일 것 같지도 않고, 타인의 독백을 먼저 보고 오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왠지 감성을 다시 불러 일으키는 데는 쉽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꽤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처음 작품을 접했던 그 느낌을 다시 찾은 것 같지는 않다.

 

제 아무리 이성을 부르짖는 체 하지만 사람은 결국 그 뿌리는 감정의 동물이다.

조그마한 변화와 차이점이 다시 그 때 당시의 행복했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무언가 사물에 대한 처음 느낌이란 무척 소중한 것이다.

 

혹시 내가 첫 플라이 낚시 출조 때, 산천어를 보지 못했더라면 지금까지 플라이 낚시를 하고 있었을까?

먼 거리를 물어 물어 찾아가서 비속에서 침낭하나로 노숙하며 밤을 지새고,

그리고 다음날 비온 뒤의 그때 그 반짝이는 숲과 햇살, 시원히 흐르는 물, 머리 아찔한 대기를 느끼지 못했더라면,

첫 출조를 위해서 한 달이 넘도록 고생고생 장비를 구하고, 연습하고 사전 준비하며 가졌던 애틋함이 없었다면

나에겐 지금의 이 플라이 낚시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물론 처음 느낌이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고, 아름답지 않아도 좋다.

바로 그 처음 느낌의 순간은 절대 다시 올 수 없는, 우주의 시계가 멈추는 기적의 순간이다.

혹시라도 그 느낌이 맘에 든다면 즐길 수 있는 최대한의 여유와 깊이를 찾자.

다시 한번 그와 비슷하거나 같은 수준의 느낌을 찾으려면 무척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함을 이제는 나는 알게 되었다.

 

약간은 쓸쓸한 마음으로 갤러리를 나서던 나에게 한 가지 재밌는 일이 생겼다.

작품 촬영을 하던 촬영팀의 요청으로 작품과 함께 나오는 관람객으로 뒷모습을 쓰는 모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거의 없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원래 그런 공공의 의미를 갖는 촬영엔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였지만,

작품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처음 느낌을 잊지 않는 또 하나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구멍 속 깊은 곳의 내가 불쑥 나와서는 "예, 그러죠" 라고 답해 버렸다.

'뭐 가끔의 일탈도 그리.........'

 

찰칵찰칵 찰칵찰칵,  브라켓팅을 하는 요란한 셔터 소리와 함께 

머릿 속이 번뜩인다.

'어,  이것도 나름대로 첫 느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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