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별을 보다


 

어릴 때부터 별을 보는 걸 좋아 했다.

야외에서 지낼 일이 많아서 였는지, 바닷가인 고향 하늘이 맑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밤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 했다. 

요즘도 달이나 별을 보는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마음의 맑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알려진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이야를 찾는 일이 처음 시작이었고,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별자리는 시그너스라고 불리는 백조자리이다.

마치 한 마리의 백조가 날개를 펴고 밤하늘을 날아 가는 모습이다. 특히 별자리도 큰데다가 

별자리 전체가 은하수 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여름밤 은하수를 따라 나르는 한 마리 백조를 보는 일은 꽤 환상적인 일이었다.

 

가장 쉽게 찾는 별은 북극성이었다.

북극성은 어디엘 가나 사시사철 변하지 않은 체, 그 자리에 우뚝 서있다.

올려 다 보기에 적당한 각도에, 별로 변함이 없는 그 밝기.

아주 밝은 도시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찾아 낼 수 있다.

너무 자주 보아서 그 넓은 하늘에서도 한 눈에  척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은 못 본지 꽤 되었지 아마.....

 

최근의 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

그날 따라 귀가길이 무척 막힌다. 매번 돌아 오는 길이 이렇게 힘든 줄 알면서도 참 무던히도 떠난다.

참, 무던히도 떠나고 싶어 안달이었다.

휴일 밤의 정체는 제 아무리 숨어 있는 국도를 누빈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체념한 채, 차창을 열어 하늘을 보니

우연히 북극성이 눈에 들어 온다.

바로 저 자리에 있는 녀석이지.

차가 어디로 달리나, 내가 어디로 흐르나 북극성은 언제나 그 자리이다.

아마도 느릿느릿 달리는 이 차가 나의 집에 도착하더라도 북극성은 그냥 그곳에 있을 것이고,

내일 아침 출근해도 햇볕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며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내가 자고 있으나, 깨어 있으나,  그를 느끼던 못 느끼던 그냥 그대로 있고,

누군가 깍아 내는 산이나 꺽어 내는 물과 달리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 냥. 그. 대. 로.  인 것이다.

 

살면서 사람이 바랄 수 있는 가장 미련한 소망이 무언가 영원함인 것을 알지만,

북극성과 같은 변치 않을 녀석을 마음에 품어 보는 것도 사람에게 약간의 무게를 더해 중심을 잡는 척 할 수 있게 해준다.

어차피 끝을 알지만 영원을 흉내내는 모습은 가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서글프진 않다.

 

한 가지를 아주 오래 하는 자의 마음을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호흡하며 물 마시며, 밥 먹고 똥 싸는 정도가 익숙해짐이라는 의미만 조금 알게 되었을까?

그리고 다시 낯설어 지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장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밥 먹고 사는 일 이외에 꽤 오래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낚시라는 게 다시 한번 반가우며, 고맙고,

언제쯤이면 낯설어 질까? 맘 한 쪽 구석이 서늘해져 오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생각에 머리 어지러운 나는 차창에 턱을 괸 채, 북극성을 흘낏 바라 보자,

어쩐 일인지 북극성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사라진 북극성,,

영원은 인간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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