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쓰러지지 않고 달리기


 

나름대로 닳고 닳았다고 느끼고 있는데

아직도 여전히 마초 기질이 곰삭지 않았는지

난, 뭔가 울컥 끓어 오르는 일이 가끔씩 있고,

 

한없이 게으르기로 작정한 나에겐 어처구니 없게도 그 대상은 여전히

불굴의 의지, 역경과 고난을 이김, 민족과 애국 이런 쪽이다.

물론 최근엔 대상을 넓혀서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것까지 가끔씩 포함된다마는 그래도 어처구니 없기는 매 한 가지....

 

얼마 전에 낯선 외국 축구선수를 알게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영국쪽 프로팀 소속이며,

England 가 아닌 Ireland 대표선수인 Ryan Giggs 다.

사상최고의 Left wing 이며, 최고정상의 선수들이 부러워하고 격찬하는 선수이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든가,

England로 귀화시키려 했지만, 끝까지 조국인 Ireland를 고수하고 있는 점이라든가 

뭐, 상식적으로 감동적인 점이 많기도 하지만,

정작, 내가 아주 오랜만에 울컥 하게 된 것은 그의 드리블 모습이었다.

 

그의 신들린 듯한 드리블은 맘만 먹으면 아무도 못 막아낼 듯 폭풍이 휘몰아 치는 듯하기로 유명하다.

수많은 수비수가 사력을 다해 막고, 격렬한 태클을 쏟아 와도

거의 일자로 뚫고 들어 오며,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쓰러지지 않으며 기어코 한 골의 어시스트를 해낸다.

오히려 수비수들을 쓰러뜨리며 초원을 휩쓴다.

무수한 감동의 격언이나 위대한 위인의 일생을 담은 참언들을 수없이 모은다 해도,

Giggs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큼 와 닿지 않았다.

솔직히 눈이 젖고 콧물이 흘러 내리지 않았다...-_-;

 

수비수의 발이 공에만 닿아도 오버하며 넘어지고,

오버가 아니더라도 조금의 태클에도 그라운드에 쓰러져 프리킥을 바라는, 흔하디 흔한 선수들과 비기면

그의 돌파는 무척이나 신선해 보이며 그 사실이 서글프다.

끝까지, 그리고 끝까지 달려 가는 그의 뒷 모습에선 일종의 후광이 비친다.

 

내가 있던 군대의 역사상, 가장 무서운 훈련이 "앞으로 가"  였었다고 한다.

사라진지 몇 십 년쯤 되었지만, 앞의 적군 뿐 아니라 깍아지른 산, 깊은 물, 낭떠러지, 

그 무엇이 나타나도 방향을 꺽지 않고 "제자리에 서" 라는 명령이 있기 전에는 무조건 앞으로 가는 훈련이다.

"우향 앞으로 가" 와 같은 구령을 무척이나 우습게 보이게 만들던 이야기였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지 쓰러지지 않고 달려 나가면,

단지 걸어 나가기라도 하면 되는 걸까?

 

나의 낚시도 나의 삶도 그 빛나는 순간을 만나게 될까?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