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기댈 수 있는 것


 

알고 보면 남자로 사는 것도 꽤나 귀찮은 일이다.

아직까지 우리사회 구조는 기득권이라는 칼자루를 놓칠까 두려워 하는

겁쟁이 남자로 가득차 있다.

 

나도 나름대로는 아닌 척 하지만, 집안 일로 하나하나 뜯어 보면

똑 같은 남자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선대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아버지로부터 배운 남자들은

힘든 모습 보이기를 무척이나 두려워 한다.

사는 게 힘들다, 정신없이 바쁘다 라는 말들을 자신의 무능을 가리고, 중요한 사람인 척 하는데 까지만 써먹지,

정작 정말 힘들어 어딘가 기대고 싶을 땐 남에게 심지어 가족에게도 말을 못 꺼낸다.

기껏해야 술이나 퍼 마시며 제정신이 아닐 때나 이상한 모습으로 울분을 토해 내거나 여기저기 흘리며,

그나마 제정신이 돌아 오면 안 그런 척하느라 바쁘다.

 

철이 든 남자는 여자라는 지구인 동료에게 어깨를 슬쩍 기대 보지만,

동료가 아님을 금방 알게 된다.

세상에 어떤 여자도 끝까지 자신을 받아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쓰라린 경험의 보너스로, 그런 것이 가능한 유일한 여자는 어머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건 남자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나이가 들 수록 남자는 남들 모르게 조금씩 기댈꺼리를 찾아 낸다.

낯선 사람을 만나며,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낯선 사물을 만나며, 취미라는 것을 둔다.

자동차, 오디오와 같은 장난감을 두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만든 것은 낚시인 것 같다.

워낙 어릴 때 시작해서 몸에 밴 탓에 찾아 내었다기 보다는 아버님이 전해 주었다고나 해야 되겠지만,,

 

알 수 없게 외로운 날이나, 모든 걸 잊은 채, 하루를 지내고 싶은 때,

내가 잠시 어깨나 등짝을 기댈 수 있는 것은 낚시였다.

단 하루 혹은 몇 시간의 낚시로도 위로를 얻고 휴식을 얻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보니 낚시가 갖는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아쉽다.

그리고 낚시라는 녀석에게도 너무 많은 것을 바라다 보면, 애인 마냥 결국 소원해지기 쉽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찾아 보았다.

 

그건 무언가 거룩하거나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고,

그저 생활 속의 조각들이었다.

퇴근 길에 기대는 버스좌석의 등받이, 이어폰을 통해 전해오는 두툼한 비트의 Rap 한 소절,

화장실에 앉아서 쥔 신문 한 장,

유리창을 통해 전해오는 계절의 흐름,

입맛에 맞는 한 끼의 식사나 간식,

몇 달을 별러 구한 한 장의 음반, 작은 장난감,

시원히 웃게 만든 웹을 떠도는 유머 한 편,

 

그냥 어깨 힘을 빼고 아무 곳에나 슬며시 기대면 되는 것이다.

남들 눈 의식하지 않고, 찰나의 안식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그 조각들이 모여서 생활이라는 배터리를 충전시키며, 더 깊은 자괴로부터 조금씩 끌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순간,

어줍잖은 깨달음이나 나의 낚시 이야기도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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