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운수 좋은 날


 

오늘은 올해 첫 저수지 무지개송어 낚시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이리저리 일정이 바뀌어서 결국은 평소 친분이 두툼한 某클럽 쪽에서 가시는 저수지로 가기로 했다.

 

가깝던 멀든,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 길을 달렸다.

아침 해가 제법 삐죽 나올 무렵, 뭔가 생겼다.

앞에 앞에 차가 우회전을 하다 갑자기 급정거하는 통에, 나는 앞차를 피하지 못하고 뒤에서 받아 버렸던 것이다.

 

지금도 선명하게 3장의 사진처럼 순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 

갑자기 선 앞차, 받기 직전에 크게 보이던 앞차의 뒷범퍼, 부딪히는 순간 찌그러든 내차 본넷,,,

그리고 범퍼와 앞쪽 그릴이 촤라락, 접히는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다행히 신호에 섰다가 출발했던 터라 속도가 느려 큰 사고는 아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에어백도 터지지 않았다.

 

게다가 앞차 운전하시던 분도 별로 다치시지는 않았는지 걸어 나와 말을 나눴다.

어쨌거나 내 잘못이니 사과하고 보험에 연락해서 접수하고 벌써 달려 와 있던 렉카차에 내차만 얹어서 보냈다.

달려 온 렉카차가 두 대라서 나머지 한 대에 나는 고맙게도 얻어 타고 약속된 저수지에 도착했다.

 

관리소에서 도넛과 딸기우유를 아침 삼아 우적우적 먹고,

입어료를 치르고 물가로 나섰다.

조용한 아침낚시는 그럭저럭 잘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저수지 무지개송어들도 여전하였다....

그리고 낚시를 하면서 계속해서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난 정말 운 좋은 놈이야! 난 정말 운 좋은 놈이야! 난 정말 운 좋은 놈이야! 난 정말 운 좋은 놈이야!"

'사고가 나도 이렇게 나다니,,,'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은데다가, 앞의 운전자 분도 점잖은 분이셔서 일단 원만히 사고정리가 된데다가,

초반에 그랬더라면 낚시도 망치고 바로 집으로 돌아 갔겠지만, 낚시터에 거의 다 와서 사고가 난 바람에 낚시터까지 올 수 있었고,

사고 내고 차 망가지고 하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일텐데, 

30분 여 만에 바로 낚시를 하면서 이렇게 풀고 있지 않은가?

엔돌핀이 필요한 나를 위해 스스로 위로하느라 이런 생각을 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그 생각 뿐이었다.

"난 정말 운 좋은 놈이야! 난 정말 운 좋은 놈이야! 난 정말 운 좋은 놈이야! 난 정말 운 좋은 놈이야!"

'사고가 나도 이렇게 나다니,,,'

 

매사를 속 편하게 생각하며, 내 맘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항상 좋은 일만은 아니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 후회하거나 머리 아파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다시 한번 내가 낚시를 가졌음을 고맙게 생각하게 된 날이었다.

낚시를 하면 이렇게 된다든가 하는 어줍잖은 가져다 붙이기가 아니라,

내 맘이 아닌 내 맘을 다스릴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제법 쉽지 않은 세상살이에 맘이 놓이는 것이다.

심지가 되고, 기둥이 되고, 큰 바위가 된다.

 

함께하는 낚시 중에 동료 한 분께서 제법 시간이 흘러서야 올린 처음 한 마리를 풀어 주다가 낚시대를 부러 뜨렸다.

그 분 曰 "어, 고기 한 마리 잡으려고 낚시대를 다 부셔 먹네!"

marcco 曰 "고기 몇 마리 잡으려고 차 부셔 먹는 놈도 있는데요 뭐....^^;"

돌아 오는 길은 낚시 동료 분의 도움으로 집까지 잘 얻어 타고 왔다.

 

집에 돌아 오니 또 뭔가가 생겼다.

키우던 햄토리(햄스터) 두 마리 중에 한 마리가 죽었던 것이다. 2년이 넘었으니 노쇠하였나 보다.

햄토리를 무척 좋아하던 딸아이는 애써 어른스러운 척 무난히 넘어가는 듯 하다가, 

색종이로 접은 박스에 담아 땅에 묻기 전에 편지나 한 장 쓰라 하였더니 슬픔이 폭발하였다.

꽤 오랬동안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좋아하던 만화영화를 틀어 주고,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말에서야 겨우 눈물을 훔치었다.

스푼과 아이스크림 통을 양손에 쥔 아이의 웃는 얼굴에서

보험료 오르고, 망가진 차 다 잊고, 아무 생각없이 이어오는 입질에 즐거워 하던 내 얼굴이 보였다.

아이의 그것은 아이스크림이었다.

 

녀석이 커서도 아이스크림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아참, 난 하나 더 있다. 초컬릿,,,

 

조금은 부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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