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어느 몰출


 

오랜만에 몰출을 갔다.

갑자기 낚시가 가고 싶어져서 가기 전날밤에 아내에게 얘기하고는 훌쩍 가버렸다.

그리고 전부터 별러 온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낚시가서 책읽기다.

그래서 해 봤다.

 

벼르던 책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 다.

흔히 생태소설의 태두니 어쩌니 하는 데, 생태소설의 영역을 과도하게 넓힌 것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미국이 갖는 출생의 한계에서 오는 아메리칸 드림과 현재와의 부조리에 대해

작가 맘대로 써본 글이다.  궁금해서 구해만 두고 여태 못 읽다가 몰출을 가면서 끼고 갔다.

 

내용은 물론 딴판에 별개이지만, 일단 제목은 꽤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가?

한국 플라이 낚시의 어쩔 수 없는 부조리 중의 하나인 '저수지 무지개송어 낚시'와 '미국의 송어낚시'

 

늘 하는 새벽출조처럼 아내와 아이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사부작사부작 조용히 짐을 꾸려

오산행 첫 기차를 탔다. 그래봤자 7시반차지....

일요일엔 교회가는 아내가 차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운전하기가 귀찮아서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여행의 시각이 넓어지는 것도 꽤 큰 장점이다.  몸은 좁아지지만 마음의 자유도는 반비례한다.

오산역엔 8시쯤 도착해서 쉽게 택시를 탔는데 기사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저수지 위치를 택시회사에 물어 확인하고 있다.

오산 톨게이트 옆에 붙어 있는 저수지 아니었나?

 

한참을 달려 거금 1만6천원을 들여서야 목적했던 저수지낚시터에 닿았다.

'이런 입어료를 내고 나면 수중에 8천원 밖에 안남는 구나'

지난번 출조 때 3천원 정도 택시비가 들었던 저수지낚시터 바로 옆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약간의 현금만 챙겨 왔는 데 그건 내 착각이었던 것이다.

택시기사는 황당하며 내리는 나에게 돌아갈 때도 전화하라며 콜번호 명함을 건넨다.

쓸 수 있으면 나도 참 좋겠다....

 

일단 점심을 굶고, 낚시터를 나가는 다른 낚시꾼의 차를 얻어 타고 오산역까지 가면 겨우 집에는 돌아 갈 수 있겠지?

근처 오산에 사시는 선배에게 SOS 를 날려야 하나?

정 안되면 집사람에게 구하러 오라고 해야 하나?

그도 아니면 나가는 택시를 다시 잡고 바로 집으로 가나?

온갖 생각을 다하면서도 낚시꾼의 발은 물가를 향해 너털너털 걸어 간다.

일단 낚시는 하고 봐야지....

 

8시반이 안되었는데 낚시꾼이 제법 있다.

일단 맘 바뀌기 전에 입어료부터 셈하고 전재산 8천원을 주머니에 넣고 낚시터를 살펴 보니

민물 대낚시꾼과 루어 낚시꾼, 플라이 낚시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나 낚여 올라 오는 무지개송어의 숫자는 드물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낚여 나오는 암컷 무지개송어의 배를 눌러 알을 짜내고,

그 알을 뿌려가며 낚시를 하고 있어서 상황은 쉽지 않았다.

이러한 낚시법에 대해서는 좋고 나쁜 판단이 필요 없는 상황이다. 살다 보면 각자의 낚시가 있는 법이다. 

특히나 저수지 무지개송어 낚시터에서는.....

 

띄엄띄엄 낚아 내던 중년의 릴 낚시꾼 한 분이 자리를 옮기며 옆에 있던 나를 점잖게 부른다.

"이봐요 아저씨, 이 자리엔 내가 송어알을 듬뿍 뿌려 놨으니 계속 모여 들께야. 여기와서 해봐요"

나는 일종의 생태계와 룰이 완성된 이곳 저수지 낚시터의 상황을 깨고 싶지 않아서

"예, 고맙습니다" 라고 답하고 자리를 옮기는 척 했다.

 

그리고 적당히 볕 잘 드는 곳에 앉아 대를 펴고 책을 폈다.

따스한 겨울 볕과 적당히 지루한 책과 담궈져 있는 낚시대는 잠도 아닌 맨 정신도 아닌 몽롱한 상태를 희안하게 유지한다.

처음엔 책을 보며 흘깃흘깃 마커(찌)를 살피기도 하고, 낚시대를 한 손에 들고 있기도 하였으나

지루할 만큼의 무반응에, 아예 던져 버리고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 계획했던 것을 즐길 소중한 기회가 찾아 왔으니 그건 바로 

낚시터에서 책 읽다가 고기를 놓치는 일이었다.

어느 순간엔가 낚시대를 휙 채고 가는 입질이 왔다. 

후다닥 챔질을 했지만 물론 놓쳤다.

드디어 낚시와 독서가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경험해 본 것이다.

그건 입질을 놓쳐서도 느낄 수 없고, 고기를 잡아서도 느낄 수 없다.

평상심의 순간이다.

 

미리 준비해 간 아몬드사탕 한 봉으로 적당히 허기를 속인 탓인지 긴장을 했는지 그다지 배고픔을 모른 채, 오후가 되었다.

오산역에서 저녁6시 기차표를 끊어뒀으니 여기서 3~4시쯤에는 출발해야 된다.

낚시터를 떠나가는 낚시꾼들의 차를 하나하나 살피며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오후엔 근처에 사신다는 루어 낚시꾼 한 분과 대화를 트게 되었다.

낚시를 대충하고 플라이 낚시를 하는 주제에, 발 앞에만 낚시를 던져 놓고 있으니 몹시 초보로 보였나 보다.

여기보다 저쪽에 고기가 많다며 같이 옮기자는 둥, 어떻게 하는 편이 잘 낚인다는 둥, 돌대가리를 하나 꺼내며 이걸 써보라는 둥,

어디 저수지가 훨씬 재밌다는 둥, 친절하게 그리고 늘 어색해 하는 나에게도 심심찮게 말을 걸어 주셨다.

덕분에 고맙게도, 걸어서 이동한 후 버스타고 오산역까지 갈 수 있는 길까지 얻어 들을 수 있었다.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대략 다되었으나 버티다 보니까 낚시꾼들의 차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천상, 걸어서 아랫마을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이젠 걸어서라도 출발해야 하는 시각 쯤에 마커가 슬쩍 잠겼다.

참, 그 날과도 어울리게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법 버둥대며 올라온 녀석은 꼬리에 훅이 걸려 있었다.

여지껏 나는 머리가 아닌 고기의 꼬리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동안의 낚시 친구와 청회색의 낚시터와 은색 송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무거운 옷과 장비를 걸친 채, 시골실을 뛰었다.

턱턱턱, 턱턱턱, 또 턱턱턱, 턱턱턱

내려 오는 길의 오른편 산등성이에는 기계음이 요란하다.

촘촘한 턱수염을 깍듯 나무를 밀어내는 3대의 포크레인이 막 태어나는 민둥산의 탄생에 팔을 들어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저 달리기에 바쁜 그리고 숨쉬기에 바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옆을 지나친다.

 

버스 정류장이라고 얻어 들었던 느티나무를 지나 조그마한 다리에 도착하였더니 다행히 시간 전에 도착하였다.

정류장의 도로는 묘하게 십자 교차로를 이루고 있었다.

교차로의 한 가운데에 잘 서면 어느 방향으로 보든지 네 갈래 길의 중앙지점에 설 수 있다.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교차점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 보던 나는 저 위에서 내가 지금 서 있는 나를 내려다 보는 상상을 해보았다.

 

지나가는 차 한 대가 나에게 길을 묻는다.

마치 책과 글, 그림, 낚시 그리고 스승 비슷해 보이는 것들에게 끊임 없이 도를 묻는 나와도 같다.

아무 대답도 못하는 나는 그냥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 시간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오산역에 도착하였으나 기차시간은 오히려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새로 개통한 전철을 탈까 고민하였으나, 일단 가까운 편의점에서 가진 전재산에 맞춰서 허기를 때웠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든 버릇 중에 하나인,

기차 출발시간 전까지 마을 싸돌아 댕기기를 해보았다. 지난번엔 역 앞에서 왼쪽을 돌아 봤으니 오늘은 오른쪽이다.

발로 걸어서 돌아 볼 수 있는 거리는 인간이 갖는 가장 맘 편한 진짜 자신의 영역이다.

저 먼 시간 전에는 정말 각자의 영역이 제법 넓었겠지.

 

마주오던 두 명의 남자 중에서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아는 체를 한다. 

"어디서 만났었지요?" 선한 척하는 표정 아래에는 뭔가 숨은 냄새가 난다.

외지에서 받는 이런 질문은 여러 가지 상황을 숨기고 있다.

무시하려는 내 의지를 막기 위해서 내 팔을 잡고 시간을 끈다.

나는 대략 알고 있는 척하며 또 다시 싱긋 웃으며, 그를 흔들고 스쳐간다.

"다음에 봅시다"

 

기차로 돌아오는 중에도 책을 폈다.

읽던 구절 중에서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인간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세상 이후에 죽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끝을 이미 알고 있는 인간의 열정이나 제멋대로의 생각, 움직임, 모습들은 참으로 가상한 것이다.

왼쪽으로 돌아본 저녁 하늘은 끝내주는 노을이 져 있었다.

붉기와 푸르기, 누르기와 검기, 어둡기와 밝기, 가볍기와 무겁기, 곧기와 휘기.....

그리고 각각의 요소들이 뒤섞여 묘한 스펙트럼을 발하고 있었다.

끝내주는 노을을 달려가는 풍경 속에 홀로 서 있던 도시의 고층빌딩은 한 순간 등대가 되었다.

그곳에 도착해보면 아무 것도 아닐테지만 그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제멋대로 힘을 얻는다.

먹고 싸며, 걷고 달리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죽음을 잊는 척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인간이 얻는 것이 그것 이외에 별로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각자 빙긋 웃으며 고개를 세로로 혹은 가로로 저어 줄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니 주머니에 아몬드 사탕이 한 알 남고,

천원 한 장이 남았다.

 

눈을 감고 사탕을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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