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   가벼울 수록


 

내가 우기는 낚시의 모습 중에 하나가

줄이고, 비우고, 가볍게 하는 것이다.

 

낚시꾼의 손은 빈손일 수록 자연에 가깝다.

거창한 채비와 어깨를 짓누르는 장비를 지닐 수록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창문의 크기는 줄어 드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물질적인 것이 주는 직접적인 영향도 있지만,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보상심리 또한 큰 영향을 준다.

시간과 물질을 투자한 만큼 얻어 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미덕 아닌가?

한번의 낚시를 위해 자신의 것을 소비한 만큼 낚시꾼은 머리 속의 ROI를 이뤄내야 한다.

얻어 내야 할 것이, 큰 고기가 됐건, 많은 마리수가 됐건, 한 장의 사진이 됐건,

아니면 쉽게 남들에게 보여줄 그 무언가가 됐건,,,

 

자신의 術을 닦고, 경험을 늘리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그러한 낚시꾼이 기필코 무언가 얻어 내야 할 치사한 목록 중에서 도망칠 수 없다.

결국은 인간의 머리 속에서라도 뭔가 얻어 가야 한다는 것 아닌가?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는 게 낚시꾼이라면, 선현들의 실천처럼 가볍게 살듯,

가볍게 낚시 하는 것도 방법이 될테다.

한 번의 낚시마다 의미를 붙이지 말고, 무슨 목표를 두지 말고, 내가 흔히 하는 숙제마저 지우지 말고,

그냥 가볍게 낚시를 할 수 있게 되면, 

그때 쯤에는 낚시라는 괴물에 먹히지 않는, 세상에 몇 안되는 낚시꾼이 되어 

낚시를 때리기도 하고, 올라 타기도 하고, 놀려 먹기도 하며, 

코뚜레를 꿰지 않은 채. 고삐나 채찍도 쥐지 않은 채, 친구 삼아 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 속 깊이 뿌리 박아 둔 자존심을 버리는 게 우선일 것이다.

자존감이 인간 생존의 기본이긴 하지만, 그만큼 인간을 한정 짓는 것이 없다.

자신이 가볍지 않고서야 어찌 남을 줄이랴.

 

자존심을 버리면 낚시가 다가 온다.

세상이 가까이 다가 온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