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건강검진 중에,


 

다니는 직장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2년에 한번씩, 어떻게 살아 왔나 자신만의 성적표를 받아 보는 것이다.

 

위 내시경에 대한 부작용이 제법 심해서 이번엔 수면 내시경을 받아 보기로 했다.

내성이 있는지, 결국은 하다가 중간에 깨서 오랜만에 토악질을 반복해 봤다.

 

약간은 몽롱한 채, 병원 복도 한쪽 구석의 이동용 침대에 버려진 채 혼자 누워 있는데

주위로 환자들이 몰려 왔다.

물론 그들도 이동용 침대 위고, 간호사들이 밀고 왔지...

할머니 환자, 어린이 환자, 나와 비슷한 내시경 부적응자...

그렇게 진짜와 가짜 환자들에 둘러 쌓인 채, 몽롱한 채, 다른 내시경실의 토악질 소식을 들으며,

병원의 흰 벽면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죽을 때 병원에서 안 죽어야 겠다.'

 

문 밖만 나가면 이렇게 환하고 멋진 세상이 있는데

왜 이런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찬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덮개와 가리개와 귀마개로

빽빽한 어색한 곳에서 죽어야 하나.

사람이 길바닥에서 죽는 걸 '객사'라 부르고, 대부분은 사고로 가는 비명횡사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꺼려 하는 것이지만,

꺼져가는 촛불을 아니면 이미 꺼졌어야 할 촛불을 가스불과 같은 남의 불로 억지 늘리는 것은

불의 근원 자체를 무시하는 짓일 수도 있다.

잘 죽는 것도 생명이 가진 중요한 권리다.

요즘은 치료가 불가능한 일정시기가 되면 환자 스스로가 치료 받기를 포기하고,

그 끝을 스스로 결정하는 아름다운 죽음 맞이하기 운동도 있다고 한다.

법적인 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지만 나 역시 따르고 싶다.

조직적인 운동인 만큼 무조건 무식하게 버티다 죽는 건 아니고,

물론 고통제거와 끝까지 맨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한 최소한의 처치는 병행한다.

다만 환자가 죽음에 대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멀리 떠나가는 것만은 피하자는 것이다.

 

Knocking on Heaven's Door 라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영화에서 조금은 과격하지만,

잠깐의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말기 뇌종양 환자인 주인공은 평생 처음이자 그렇게 소원하던 바다에 도착하면서 그 생을 마친다.

물론 깔끔하지는 않다. 고통의 경련 속이지만 그렇게 죽었다.

나 역시 편안히 죽을 수 있을 꺼란 터무니 없는 욕심은 버린지 오래지만,

야외에서 환한 세상을 보며 죽을 수 있다면 꽤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물고기 생각이 났다.

그 동안 나는 고기를 집에 데려올 일이 있어도(99% 이상이 바다에서 이고, 대부분은 먹는 이유 때문이다)

바로 죽이지 못하고 미적미적 거리다가 결국엔 차량 뒷 트렁크에서 그들은 사망한다.

고통을 덜 주어야 겠다는 이성과 내 손으로 어찌해보기 안쓰럽다는 감성 싸움에서

이성이 좀 밀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이유가 하나 더 추가 되었으니, 조금은 더 책임감 있게 그 피를 뒤집어 쓰고자 한다.

녀석들도 고향의 물에서 고향을 바라보며 죽고 싶지 않을까?

 

내 성적표 결과는 2주나 되어야 나온단다.

그 동안은 뭐 하나,,,

결과가 우찌 될지 모르니,

낚시나 얼른 한번 더 갔다 와야 겠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