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 치어를 뜨다가,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한강을 나갔다.
지금 쯤이면 슬슬 올해 갓 부화한 치어들이 봄날을 즐기며 마구 떠 다닐 때다.
아직 세상 험한 줄 모르고 또래끼리 무리 지어 마냥 즐거운 듯
재잘 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작년 이맘때 쯤, 여의도 샛강에서 치어들을 좀 떠다가 집의 수족관에서 키웠었다.
키워보니 녀석들은 붕어와 줄납줄개, 밀어 등이었고,
거의 대부분 씩씩하게 잘 살며 식구들을 1년 동안 즐겁게 해주다가
얼마 전에 다시 한강으로 돌려 보냈다.
채 1cm 가 못되는 것들이 조금씩 자라서 10cm를 넘어 서도록 자라는 것을 보자면
게다가 사람까지 잘 따라다니는 걸 보자면 그리 즐거울 수가 없었다.
마침 처가집에서 한강 고기들을 무척 부러워 했었고,
올해 봄에 구해주마고 약속했었던 터라 처가집 식구들과 함께 한강을 나갔다.
아직 비가 좀 덜 왔던 터라 치어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붕어와 납줄개 치어들이 있어서 열 서너 마리 정도 준비한 통에 담아 왔다.
납줄개 치어들은 무리져 다니기 때문에 절반 쯤은 이산가족을 만들며 떠 왔던 터라 꽤나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막상 집에 가져와 처가집의 수족관에 치어를 담아 보니,
웬걸 기존에 있던 조그만 열대어들이 무슨 간식 마냥 먹어댔다.
수초도 웬만큼 있고, 야생의 녀석들이라 제법 날랠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예상보다 수족관의 수류가 너무 센 탓인지 치어들이 미처 정신 못차리는 틈에 모두 몰살 하고 말았다.
이런 허탈할 수가.....
반면에 처가집 식구들은 고기 죽은 것은 둘째 치고 열심히 고기 잡아 준 나에게 무척 미안해 하였다.
하지만 내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리디 어린 치어들이 죽어 나는 게
몹시도 가엽고 화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수족관 속이 아니라 자연에서도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Abnormal 이기 때문이겠지.
자신의 종족보다 다른 종족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증을 두는 경우 사람들은
그를 Abnormal 이라고 부르며 Minority 로 분류된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경우, 혹은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할 경우,
나는 사람과 고기 사이의 경계선에서 이 편도 아니고 저 편도 아닌 채, 경계를 헤메는 일이 잦다.
특이하게 고기에게만은 감정이입의 정도를 심하게 넘어서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은 고기를 잡아야 하는 낚시꾼에게는 얼마나 웃기는가?
내가 낚시하면서 고민이 많고 말이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속으로 품고 있는 이런 모순 때문인 것 같다.
이는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야 하면서도 물질에 초연한 척하는 삶의 모습과 흡사하다.
제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혹은 다른 희망을 품어 보지만,
모순 그 자체가 삶의 일부인 것이다.
세상이 빈틈없이 꽉 짜여진 인과관계가 아닌 원래 엉망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맘 편한가?
수족관에서 죽어간 치어들의 죽음엔 우주가 담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