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고기 다듬기
고기를 다듬는다고 하면 무슨 말일까 장만한다고 하면 알아 들을까?
난 바닷가에서 자라 났던 관계로 어릴 때부터 고기를 먹기 위해 다듬는데 익숙했었다.
무딘 칼과 평평한 바닥만 있으면 어떤 고기든 장만할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다. 성격이 이상해서인지,
어려서부터 생물의 내부구조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고, 식지 않은 따뜻한 내장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자연히 해부하기를 좋아했고, 짐승을 잡게 되면 항상 자진해서 칼을 들었다.
자라서 운동을 하면서 관절 근육의 구조 이해를 위해 공부하면서,
냉동한 양(羊)의 해체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체계가 잡히게 되었다.... -_-;
; 참고로 한국의 동남쪽에선 "고기"는 육고기 즉 소고기, 돼지고기 등을 말하고,
"개기"나 "괴기"가 물고기를 의미한다. 여기선 그냥 물고기를 고기라고 하구 있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낚시를 가게되면,
집에선 아내가 닭이라도 사오게 되면 장만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요즘은 아버님과 떨어져 살고, 고기 풀어 주는 척하느라 기회가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나보다 더 잘하시는 아버님과 함께 하는 낚시가 아니면 늘 고기 다듬는 일이
낚시의 일과였다. 바다낚시에서 먹게 되는 그 자리에서 회 쳐 먹는 고기 한 점은
제 아무리 비싼 특급호텔 일류 일식집의 사시미와도 비교되지 않는다.
얼어 붙을 듯한 세찬 바닷바람 속에서 그사이에 살짝 얼어 서걱거리는 두툼한 고기 한 점....
그리고 병째 나눠 마시는 쐬주.......
먹어 본 사람만 알 일이다.
고기 다듬기가 제목인 만큼 간단하게 방법을 보자.
갯바위에서 대강 먹을 땐, 먼저 시메를 한다.(대부분의 고기가 마찬가지지만 죽은 후 피가 근육과
살에 뭉쳐 굳게 되면 맛이 텁텁해져서 떨어진다. 간혹 짙어지는 장점도 있긴 하다. 그걸 막기
위해서 몸에 칼집을 넣어 바로 피는 빼는 걸 일본 말로 시메라고 한다. 우리 말은 뭐지? 피뽑기?
고기의 경우 척추를 따라 전신으로 피가 돌기 때문에 아가미 바로 뒤에 몸톰과 수직으로
칼집을 깊숙하게 넣으면 피가 튀며 바로 숨이 끊어진다. 확실히 하기 위해 양쪽을 다 넣는다.)
숨을 빨리 끊게 하기 위한 방법은 나중에 설명하자. 잡는 대상물의 종류마다 다 틀리다..... -_-;
작은 고기라면 머리를 잡고 칼날을 세워 꼬리에서 머리 쪽으로 비늘을 벗겨낸다.
그리고 아가미 아래에서 똥꼬까지 가른 후 내장과 척추 부근에 남아있는 피덩어리까지
마저 긁어낸 후, 지느러미만 끊어 내고 몸통을 몇 개로 나눈 뒤, 머리만 버리고 다 먹는다.
보리멸 같은 경우에는 머리까지 고스란히 원형을 살려 한 마리씩 먹기도 한다...... -_-;
큰 고기의 경우에는 시메를 한 후, 시메한 자리에서 낚시집게로 껍질을 집어서
바로 벗겨 진다. 의외로 잘 벗겨 진다. 해 보면 안다.
여기서 바로 등쪽만 살로 떠서 먹을 수 있고, 고소한 뱃살을 먹고 싶다면 기술이 늘게 되면
배의 내장막을 터뜨리지 않고도 살을 발라 낼 수 있다. 그게 안되면
처음에 시메 후에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해 두자.
잘 잡아서 식구들에게 먹이고 싶다면 우선은 최대한 살려 보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을 것 같지 않다면, 부족한 산소로 뻐끔 거리는 게 안스럽다면
바로 시메를 하고 내장을 제거한 후, 바다 물로 씻어서 최대한 시원하게 해서 가져오자.
무슨 생물이던지 죽고 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몸이 굳게 된다. 사후 경직이라고 하던가?
시메를 하면 좀 덜하지만 그래도 집에 오는 길에 주물러 보면 굳어 있다.
고기는 풀리는 시간이 빠른 편이라 냉장실에 잠시 넣어 두면 곧 다시 말랑해진다. 이걸 숙성이라고 하던가.....
바빠서 내장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먼저 비늘을 제거하고, 똥꼬에서부터 칼집을 넣어
배를 가른다. 말끔히 끍어 내고 검은 막도 없애자.
어느 부위까지 먹을 건지에 따라서, 고기의 종류에 따라서 다듬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는 비슷하다. 껍질을 따로 먹거나 못 먹는 경우에는 그냥 다듬으면 되지만,
아니면 집게를 이용해서 껍질을 벗긴다.
역시 작다면 지느러미만 떼고 그냥 뼈 채로 얇게 토막 낸다.
큰 녀석이라면 정식으로 머리를 여유있게 끊어 낸다. 실력이 늘면 그냥 칼집만 내고 한다.
우선 머리에서 꼬리로 등 가시지느러미를 따라 칼집을 옆으로 넣어서 등뼈와 등살을 분리해 내고,
다시 아래쪽 꼬리부분에서 반대로 칼집을 넣어 살을 분리해낸다. 똥꼬까지만.....
꼬리 쪽에서 살을 쥐면 등뼈 부분만 살이 붙어 있을 것이다. 칼을 수평으로 눕혀
붙은 부분을 얇게 따내면 이제 고기의 한쪽 편 살은 내장이 들어 있는 배부분만 붙어 있고
나머지는 분리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한 손으로 살을 쥐고 한 손으로 칼을 비스듬하게
눕혀 배부분의 뼈를 따라 살을 발라 낸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 적당한 압력과 칼의 각도, 뼈를 따라가는 감각 등은
경험으로만 가능하다. 다른 건 흉내내더라도 초보는 이 부분의 살이 너덜되게 되어 있다.
고기가 남더라도 가능하면 한 칼에 낸다. 뒤로 가서 다시 칼을 넣으면 고기도 너덜대고
원래 그 녀석이 갖고 있던 맛도 떨어지니 예의가 아니다.
이때 일본식 사시미 칼이 있다면 더욱 좋다.
요리하기를 꽤 좋아하는 나는 오래 전부터 쓸만한 일식 요리집에서 쓰는 것과 같은
나만의 사시미 칼을 갖고 있다. 왼손잡이인 나는 구하기도 힘들었다.
연습을 하느라 가끔씩 꺼내 써 보긴 했지만,
어째 요즘은 통 기회가 없으니 그나마 없던 실력도 줄 것 같다.
아차 그리고 이건 경험과 눈 대중으로 배운거라 전문가와는 차이가 많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뒷면을 반복하면 살 두 판, 머리가 붙은 뼈 한 판이 남는다.
뼈와 머리는 지리나 매운탕으로 쓰고,
살은 부위별로 등쪽, 배쪽, 지느러미살, 머릿살, 꼬릿살 등 취향에 따라 나눈 후
; 물론 고기가 클 때나 가능하다.
칼을 눕혀서 비스듬하게 단면이 넓게 먹을 만한 두께로 썰어 낸다.
준비한 초장이나 간장과 와사비(고추냉이), 막장과 참기름, 소금과 참기름 등의
다양한 양념에 찍어 먹는다. 난 물론 처음엔 그냥 양념없이 한 점 먹어 본다.
이 녀석의 맛을 어떨까? 궁금해 하면서...... 이 종류의 원래 맛과
살고 있던 환경과 먹이 등을 눈 감고 생각하며 그 맛과 향을 느끼려 노력한다.
물론 입맛은 별로 예민한 편이 아니라 힘들지만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최소한의 양념을 더한다. 본래의 모습을 알아보고 존중해 주려고.....
양념이야 어디서나 먹을 수 있지만
이 녀석의 살 한 점은 이 녀석을 죽이고 다듬지 않으면 없다.
뭐, 듬뿍 찍은 초장 없이는 못 먹겠다는 각각의 취향은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이상으로 질펀한 고기 먹는 잔치를 한 것 같다.
고기와 친구인 척하는 내가 다시 고기 다듬고 먹는 얘기를 하는 것은
물고기가 물고기의 본성을 잊지 않듯이 나도 인간의 본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가령, 열흘을 굶고 난 후와 같은, 궁극의 상황에선
난 지금의 내가 친구인 척하는 무슨 고기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끝을 알고도 그들을 친구로 대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가끔씩 나를 때려 가며 정신을 가다듬고 싶다.
지금 내가 인간인 이상 물고기를 먹을 수 있고,
다음 세상에선 그들이 날 먹을 수 있다.
다만, 지금 이 세상에서 덜 먹으면 나도 나중에 먹히는 기회가 줄어들까 해서
고기의 눈치 보는 중이 아닐까?
하지만 만일 내가 내 손으로 친구의 장사를 치뤄 준다면
최선을 다해 요리하고 남김없이 먹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