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혼자가는 낚시여행


 

나의 좌우명, "재밌지 않으면 안 산다."

혼자 가는 낚시여행은 언제나 재밌다.........

 

낯선 사람들 사귀기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비교적 사교적인 나임에도 불구하고

난 "나홀로 조행" 예찬자이다.

전에 얘기한대로 플라이 낚시가 공간을 많이 먹는 다소 이기적인 취미이기도 하고,

주위에 플라이 낚시에 익숙한 사람이 없어서 같이 가면, 항상 그 사람 도와주다가

내 낚시할 틈이 없다는 이기적인 내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 아마 알꺼다. 낚시 처음 해보는 사람과 낚시 갔을 때의 귀찮음....... -_-;

게다가 난 꽝치고 있는데 이상하게 나보다 먼저 잡는 그들...... -_-;

물론 친한 친구에게 애인에게 플라이 낚시를 알려 주며 나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고수와의 조행은 정말 좋은 기회이지만 극히 드물다.....

또한, 여럿이 다니며 다양한 전략과 전술로 고기와 겨뤄 보며, 현지에서 바로 정보를 교환하고,

조과를 늘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렇지만 난 가끔 나홀로 조행을 떠난다.

대화와 서로와의 배려를 위한 눈치보는 시간과 노력을 오로지 나에게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낚시여행도 여행이기에 여행의 목적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준다.

 

지난 주말에 아는 분이 알려 주신 춘천 근처로 낚시를 갔다.

예전엔 배낭 하나 메고 침낭 달고 낚시대 하나 들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몇 박씩 낚시를 다녔지만,

결혼 이후에는 가급적이면 하루 코스로 가는 편이다.

물론 어부인 결재 하에 가끔은 1박도 간다....... -_-;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난 나는 아내가 끓여 준 재첩국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끝나지 않은 대한 추위에 대비했다.

윗도리 몇 겹에 바지 두 겹, 양말 두 겹에 목도리와 장갑,

그리고 좋아하는 깜장색 거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나의 낚시 가방인 손바닥만한 가방을 어깨 가로질러 맨 후, 아끼는 플라이 낚시대 한 대를 들었다.

; 민물낚시를 개조한 거라 갈색 케이스도 원래 그걸로 쓰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민물낚시대로 보인다. 하하....

눈이 온다기에 아직 운전이 미숙한 나는 차를 두고 기차로 가기로 했다.

기차로 가는 여행도 역시 재밌지......

처음 타 보는 경춘선......

새벽이건만 토요일인 탓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차를 메운다.

거의 대부분이 남여 커플 아니면, 남여 단체...... 간혹 여여 커플도 보인다.

혼자 썰렁하게 타는 사람은 나뿐,

허~ 연 입김을 뿜어 대며 도착한 경춘선 중간 역엔 버스도 자주 없었다.

기다리기 지루한 나는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했다.

얼마만에 해보는 히치하이크인가? 대학 졸업 이후인가?

벌써 남의 시선을 신경 쓰도록 얼굴이 얇아진 나는 처음엔 어색했다.

아니..... 가만 보니 지난 겨울 조행 때도 속초 쯤에서 했었군....

예전엔 프로 였는데.....

눌러 쓴 모자도 벗고 최대한 착한 인상을 지어 보이며 어색한 척, 장갑 벗은 한 손을 든다.

몇 번의 무관심한 차 뒤로 트럭이 온다.

그는 나보다 더 난처한 표정으로 방향을 가르킨다. 반대 방향임을 연신 손으로 알리며....

역시 확률은 승용차보다 트럭이나 봉고야...... 참고로 오히려 짚차가 힘들다.

어느덧 도착한 버스를 타고 낯선 길을 달린다.

운전석에 바짝 붙어 길을 묻는 나의 낯선 말투는 춘천시민과 강원도민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고 있다.

민물대로 보기에 좀 길고, 루어 낚시대로 보기엔 좀 짧은 어중간한 길이의 작대기 한 개에

단출한 복장인 나는 등산객으로 보였나 보다. 연신 주요 등산코스를 추천하는 운전기사님의

설명을 흘려 듣고 가까스로 포인트를 찾아서 길가에 내렸다.

길가에서 낚시 포인트까지는 깍아 지른 절벽.....

그나마 좀 나은 곳을 찾아 기어 내려간 나는 물 구경부터 했다.

음.... 멋진 곳이군. 사람들이 내려오기 힘든 곳이라 여름에도 좋을 것 같았다.

옷을 털고, 플라이 대를 셋팅하고 마커와 최근에 새로 디자인한 님프를 달았다.

물에 적셔 놓고 보니 제법 벌레같군. 이상하게 난 물벌레라고 만들어 놓으면 땅벌레가 된다.

다양한 벌레와 채비, 장소를 옮겨가며 던져 보았으나 감감 무소식으로 고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꿈속에서 본 훅을 그대로 만든 호빵맨(생긴걸 보고 내가 붙인 이름)에

복권당첨과 같은 기대를 걸었으나 역시 꽝!!

봄에 강준치에게나 시험해 봐야 겠다.

다리를 건너서 반대 쪽을 둘러 보니 낚시한 흔적이 보인다. 보통은 그런 곳이 포인트일 경우가 많다.

기대를 했건만 수량이 많은 탓인지 여전히 고기의 흔적은 느낄 수 없었다.

늦은 점심을 대비해서 아침에 먹어둔 샌드위치의 열량이 떨어져 갈 무렵, 벌써 2시군.....

다시 도로로 나섰다. 또 히치하이크다.

이번엔 의외로 쉽게 승용차를 잡았다.

40대 중반의 억센 사투리의 부부......

나의 목표인 춘천시내까지 줄곳, 요즘 낯선 사람들 길에서 태우기 무섭다는 때늦은 한탄을 들었다.

엉? 반말이네..... 애들같은 복장 탓인지 대학생으로 보나 부다.

꾹 눌러 참은 덕에, 난 춘천시내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음 벌써 나도 쉽게 사는 군.....

춘천시내에 내린 나는 여기저기를 둘러 보며 길을 물어 보았다.

내 생각엔 나보다 특이하게 보이는 도인 복장을 한 흰수염의 노인 분이 날 특이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집에 가면 꼭 거울을 한번 봐야겠다.

가끔 송어가 나온다는 세월교로 가기로 했다. 초행길이고 시간을 아껴야 되므로 택시를 탔다.

춘천시내와 변두리를 동시에 구경하며 도착한 세월교.....

저 멀리 보이는 소양댐이 낯설지 않다. 수문을 열어 방류 중인지 물살이 거세다.

여기저기서 잡고 있는 빙어 얼굴을 천천히 구경하고 포장마차에서 요기를 했다.

뜨끈한 사발면 국물이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닭 꼬치도 한 가닥 했다.

준비해간 초컬릿 한 판을 우적 우적 씹으며, 나도 빙어를 하나? 송어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루어맨을 만났다. 선한 인상의 그는 데려온 애인(?)은 차에 모셔 두고

세찬 물살에 스푼을 던져 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선 뭐가 좀 나오나요?"

"송어가 어쩌다 나오지요. 작년엔 몇 마리 했었는데 올 겨울엔 연말에 입질 한번 받아 봤어요."

라는 말에도 난 희망을 얻고 그의 곁에서 낚시대를 폈다.

벌레도 달고, 스트리머를 흘려 보기도 하고 했지만 낯선 세월교는 이방인에게 너그롭지 않았다.

가끔 이쪽에서 피라미를 잡으라며 고함치는 꼬마 아이들의 소란을 들어 가며,

자리를 옮겨 봤지만 세찬 물살에 피라미들도 이리 저리 쉴 곳을 옮기고 있었다.

보여준 님프 플라이 바늘에 깜짝 놀라며 진짜 벌레 같다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

고기가 애들 같다면 후후.......   간혹 애들 같은 고기도 있단다.

트럭에 가득 담긴 채 킬로에 만원씩 팔려 가는 빙어의 눈도 맑기 그지 없다.

방향을 바꿔 가며 반짝이는 은색 띠, 은색 띠 들.....

엉뚱한 고기 구경에 정신이 없을 무렵, 하늘에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점점 짙어지는 눈발..... 기차시간은 남았지만 철수를 하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렸다. 추위 속에 금방 오지 않는다.

시내라서 히치하이크도 잘 안 될텐데.... 이번에도 고민이 짙어 갈 무렵 좌석버스가 왔다.

후다닥 올라 탄 나는 지갑을 꺼냈다. 약간 시외라서인지 버스비는 950원.

어라..... 만원짜리 뿐......

잘하면 그냥 넘어 가줄 것 같기도 한 운전기사에게 사정 얘기를 했지만

그에게도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난 잠시 머뭇대다가 몸이 따르는 대로 결정했다. 우선 돌아섰다.

모두 앉아 있는 승객들은 나에게 시선 집중.....

먼저 외쳤다. "승객 여러분!"

"차내에 계신 형님누나동생 여러분! 잠시만 안내말씀드립니다. 본인은 지난 일천구백팔십오년

십일월 이십삼일 대전 00 룸싸롱..........." 이라는 대사로 머릿 속의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다시 외쳤다.

"죄송합니다만 만원짜리 잔돈 바꾸실 수 있는 분 안계십니까아?"

"잔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만원짜리........ 안계십니까아?"

승객들을 아래위로 몇 번을 쭈~욱 훝어 보는 무언의 다그침 후,

젊은 커플 한 쌍이 서로의 지갑을 열어 오천원권 한장과 천원 다섯장을 건넨다.

"정말 고맙습니다." 를 연발하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잠깐, 근데 좀 전에만 해도 내겐 "형님누나삼촌 여러분! 부모님의 품속에서 사랑을 받을 한창 나이에

사랑을 받지 못하고........." 란 대사가 어울렸던 것 같았는데....... 후~ 아.

도착한 남춘천역에는 벌써 흰 눈이 수북하였다.

찬찬하게 오는 눈이 제법 쌓일 기세다. 기차시간은 많이 남았군.....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춘천시내를 눈 맞으며 돌아다니다가 푸짐한 갈비탕 한 그릇을 했다.

길고 미끄러운 길을 걸어 돌아 온 역근처 가게 앞에는 행인을 위해

주인 아주머니가 피워 둔 장작불이 발갛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멋진 풍경.......

고기 대신에 눈 덮인 남춘천역과 장작불을 가져간 카메라에 담았다.

학생 때 혼자 여행 다녔을 때도 왜 그리 역전사진이 그리 많던지.......

주인공이 없는 역전사진이 썰렁해 보여서 안 찍은지 오래됐지만 눈 덮인 남춘천역과 장작불은

날 유혹하기 충분했다.

빙과류인 거북이를 깨물고 들어선 역내 휴게실에는 승객을 위한 자율 도서가 비치되어 있었다.

거의 전부 70년대의 동화책......

그중에 마야의 모험이라는 책을 빼 들고 읽었다.

제목은 익숙한데 내용이 낯설다. 예전에 내가 읽기는 읽었던 것 같은데....

갓 태어난 조그만 꿀벌이 겪는 세상으로의 나홀로 여행.......

그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서 생활에 충실한다.

어릴 땐 내용만 보이다가 이젠 작가의 의도가 눈에 거슬리는 게 새롭다.

이제 숲속을 볼 수 있게 된건지, 나무만 보는 건지......

시간 맞춰 도착한 기차에 올라 탄 나의 좌석 옆에는 대여섯 살 되 보이는 꼬마가 있었다.

어리숙하고 숫기없는 그 꼬마는 나의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다.

아이의 엄마가 낯선 삼촌과 재밌게 지내라고 아이에게 일러두고 갔다.

왠지 머쓱머쓱하는 꼬마가 귀여워서 말을 걸었다.

"꼬마야!  아저씨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

"나 벌레 많은데..... 주머니 가득 있어!"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아이는 엄마에게로 가선 줄곧 돌아오지 않았다.

내 딴엔 재밌게 해준건데..... 요즘 애들은 벌레랑 친하지 않나 부다.

후후......

다시 전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였다.

아내와 아이는 늘 그렇듯이 웃으며 날 반긴다.  나의 긴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 긴 조행기는 단 하루의 여행이다.

하지만 이렇게 치밀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혼자 가는 낚시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만에 낚시가 조연이 된 낚시여행이었다. 고기보기가 힘든 겨울에만 그랬던 것 같다.

낚시여행이라는 이름 하에 나를 돌아 볼수 있었던..........

난 가끔씩은 혼자 여행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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