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낚시꾼이 낚시가 지겨울 때가 있으리라 마는,

딱 한 경우가 있다.

그건 바로 고기가 낚이지 않을 때이다.

모처럼 찾아간 강원도 산골,  늘 잡히던 잘 아는 곳에서의 계속된 꽝은 낚시꾼을 지치게 한다.

장소를 옮겨 가며, 미끼를 바꿔 가며 노력을 해보지만,

고기의 꽁무니 조차 구경하기 어렵다면 인간의 간사한 마음은

그 좋다던 낚시마저 세상에서 제일 따분한 그것으로 바꿔버리기 일쑤다.

그리곤 딴 짓을 하게 된다.

대표적인 딴 짓을 보자면,

보통의 민물 낚시나 바다 낚시처럼 체류시간이 긴 경우에는 입질이 올때까지, 혹은 조류가 바뀔 때까지

눈을 붙이거나, 식사를 하거나 하는 등의 기본 민생고(?) 해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원이 많다면 간혹 그중 누군가 어떻게 알고 준비해 왔는지 모르지만,

동/서양화(?) 감상에 패 돌리느라 낚시대를 고기가 물고가던, 사람이 업어가던 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잡기에 꼭 어울리는 음주가무에 패가망신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다... -_-"

그런 것들 외에 나도 꼭 그만했으면 하는 게 있는데

그건 낚시로 딴 짓 하는 거다.

바다 낚시에선 꼭 고기 안 잡히면, 

낚시대를 짧게 잡고 돌 틈이나 구멍 사이에 미끼를 드리우고는 재수없는 게나 손가락만한 꼬시래기(잡어)를

잡아 보겠다고 아둥 바둥 해보는 그것이다.

루어 낚시에서는 눈에는 보이면서 물듯 말듯 애태우는 녀석이 있다면

큰 바늘로 훌치기를 시도해 본다.

플라이 낚시에서는 멀쩡한 큰 녀석들을 못 꼬여 내면

물위로 철없이 뛰어노는 애꿎은 치어나 새끼 손가락보다 가는 피라미 류에 정신이 팔린다.

뭐, 물론 상황에 따라서 먹기 위해서, 또 다른 재미로 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꼬시래기만 잡다 집으로 돌아서는 길에 느끼는 허무함,

훌치기로 끌려 나온 고기의 피빛나는 버둥거림, 촐싹대며 사정없이 아파하는 치어 들을 대하게 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게 아닌데......

요즘은 플라이 낚시만 하는 나로서는 마지막 경우가 제일 많았던 것 같다.

아예 피라미를 대상으로 시작한 낚시일 경우나, 또 아주 작은 낚시바늘을 쓴다는 핑게로

상황을 대강 얼버무려 뭉게 버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어린애 모양, 꼬마 고기녀석들은 큰 애들보다 많이 아픈 모양이다.

손바닥 위에서 그렇게 정신없이 파닥대는 모습이란......

한 때는 아예 20번 이하의 작은 바늘들을 안 들고 다닌 적도 있었는데,

작으면 덜 아플꺼라는 핑게로 요즘은 그보다 더 작은 바늘을 넣고 다니고 있다.... -_-"

  ;  큰 바늘만 쓰면 큰 녀석들만 물겠지만, 큰 고기들에게도 부담될까봐 요즘은 다시 작은 바늘로 쓰고 있다.

연습 삼아 장난 삼아 하고 있던 그것들을 올해부터는 좀 줄여 봐야 겠다.

놀러 왔으면 정정당당하게 어른들과 겨뤄보고 꼬마들은 인간의 어린이를 대하듯 해야 겠다.

하지만 실제 물가에선 늘 그러지 못할 내가 어여쁘다(?).

치어들이라도 피하도록 해야겠지?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라고 외쳐볼까? 후후.....

플라이 낚시에서는 다른 낚시들에 비해 지겨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몇가지 더 있다.

낚는 재미 외에 캐스팅과 타잉이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작한 플라이 낚시꾼들은 고기가 안 잡히면 캐스팅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연습 중에 간혹 낚이기도 한다. ^^

그리고 나머지 한가지는 다음의 타잉을 위해 현장에서 고기의 먹이감을 채집하는 것이다.

보통 고기가 주로 먹고 있는 현장의 곤충류를 채집하는 것인데, 날벌레, 수중곤충 등을 잡아서

엄지손가락만한 혹은 그보다 조금 큰 유리병에 담고는 알콜이나 포르말린 액을 부어 썩는 것을 막아 보존해둔다.

그리고 한가한 집에서 그것을 본따 다음 낚시에서 고기를 꼬셔낼 플라이 미끼를 타잉하는(만드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흉내내 보느라 몇 번 그렇게 해보았다.

그런데 막상 물벌레들을 병에 담아 와 보니,

죽은 걸 들여다 보자니 맘 한 구석이 흐뭇하지 않고, 버리자니 그 또한 객쩍다.

고기를 잡으면 잡고, 말면 말지 그렇게까지 하자니 이중 삼중으로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그만두게 되었다.

물론 내가 게을러서 그런 이유도 크겠지..... -_-"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떤 만화를 보고는 마음을 굳혔다.

인간 외의 것들과 인간과의 역할을 바꿔보는 걸 주요 소재로 쓰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Gary Larson"이라는 한 컷짜리 만화작가의 "The Far Side Gallery" 시리즈 중에서 였다.

그 때 봤던 만화는 거대한 외계인들이 인간과 곰을 조그만 병에 담아서 채집하는 장면인데,

옆의 꼬마 외계인이 "흔들어 봐! 서로 싸우나 보게.." 라는 대사가 덧붙여 있는 것이었다.

어릴 땐 나도 줄곧 그렇게 놀았었다.......

물론 훌륭한 플라이 낚시클럽이나 전문가인 개인이 선의의 목적으로 우리나라 계류의 생태 연구와 정리를 위해 하는 것은

멋진 일이고 누군가는 꼭 해야 될 일이기도 하다. 내가 못하는 게 오히려 아쉽다....

하지만 난 게을러 그러지는 못할 터,

나의 어설픈 채집은 고기 한 마리 더 잡자고 애꿎은 벌레들만 괴롭히는 꼴임에 다름없다.

그래도 고기를 더 잡고 싶은 나는 요즘 다른 방법을 쓰고 있다.

접사촬영이 가능한 고화질 디지탈카메라가 있으면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출조 때마다,

조그만 수첩과 펜을 가져간다. 설계도를 그리듯 벌레의 정면도, 측면도, 평면도 등의 몇가지 각도의

그림을 그려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작은 병이 아직 필요하긴하다.

물과 함께 병에 담아서 좌우로 살펴보며 그린 후, 다시 물 속으로 , 혹은 공중으로 돌려 보낸다.

사이즈나 색깔이 불명확하다는 단점이 있는데, 부위마다 메모로써 대신한다.

가끔은 손으로 하는 스케치라, 특징 부위가 강조되는 탓에 오히려 실제 타잉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진짜 단점은 정리가 안된다. 메모 쪽지에 그려오는 경우가 많아서 잃어버릴 때도 많다..... -_-"

이제 곧 봄.....

올해부터는 고기들에게 좀더 덜 미안하게 낚시를 해봐야 겠다.

잡으면 잡고 말면 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