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플라이를 시작한 이후로, 서울 여의도에 있는 샛강을 주로 플라이 공부터로 삼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마는 가장 큰 이유는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 플라이에 적합한 깨끗한 찬물에 사는 송어, 산천어, 열목어 등이 있는 곳은

강원도 두메 산골로 오가는 데만 하루 종일 걸릴 뿐만 아니라, 적어도 1박은 하여야

적절한 시간대를 맞춰 즐길 수 있다.

어부인 눈치보랴, 직장다니랴, 장기출조가 어려운 나로서는 집에서 출발하여 낚시대를

펴기까지 30분이면 넉넉한 여의도 샛강이 고마울 따름이다.

거의 일주일에 한번은 꼬박꼬박 다닌 덕에 이젠 웬만큼 샛강의 자연생태를 익혔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직도 매번 출조마다 나를 깜짝깜짝 놀래키는 샛강에 경외감을 느낀다.

최근 여름이 끝나가고 서늘해진 어느 토요일 새벽이다.

강준치(바다의 준치를 닮은 고기로 한강에선 꽤나 큰 녀석이다)가 주로 낚이던 때라

새벽을 노리고 갔으나 웬일인지 한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지겨워 질 무렵 제법 쎈 물흐름 밑으로 뭔가 조그만 녀석들이 희번덕 대며 뭔가를 먹구 있다.

궁금해진 나는 눈꼽만한 꼬마 애벌레를 흉내낸 아주 쬐그만 바늘과 역시 쬐그만 봉돌과

마커(플라이 낚시에 쓰이는 찌; 둥근 스치로폴 덩이를 닮았다)를 달아

마치 강원도 계곡이나 되는 양 흘려 보았다. 몇번을 반복하다, 마커가 슬쩍 잠기는 듯 해서

"톡" 하고 채보았다. "다다다다~ 다다~" 뭔가 물속을 헤집으며 힘을 쓴다.

마치 바다고기와 같은 힘이다. "하하~ 이런 녀석이....!"

'쓰~윽"하고 올려보니 약 7cm정도의 납자루였다. 납자루... 민물 낚시꾼들에겐 아주 성가진

존재다. 크기만큼이나 입이 아주 작아서 미끼를 던져 놓으면 야금야금 갉아 먹기에

찌만 깔짝거릴 뿐 올리면 늘 빈바늘을 돌려주는 말썽장이 취급을 받는다.

게다가 떼로 다니면서 세력권을 형성하는 꼬마 조폭(조직폭력배) 수준이라서 웬만한

붕어도 쫓아내는 당찬 녀석이다. 민물꾼이 납자루를 정확히 입에 바늘을 걸어 올리면

실력급 조사로 인정을 받을 만큼 입질도 까다롭고 섬세하다. 그 모양은 좀 납작한 붕어 형태이고,

옅은 알록달록한 색을 갖고 있다. 산란기에는 관상어로도 훌륭하다.

이런 이유로 아주 섬세하고 여린 낚시채비로 납자루만 전문적으로 낚는 꾼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 녀석을 플라이로 낚다니... 그것도 님프 채비로.....

(님프란 물속에 사는 곤충을 부르는 영어 이름으로 플라이 낚시는 물에 떠있는 곤충을 흉내낸

바늘을 쓰면 드라이 낚시, 물속에 사는 곤충을 흉내내면 님프낚시, 기타 다른 물고기나 먹이를

흉내낸 낚시로 크게 나뉜다. 좀 어렵지만, 실제 용어는 전부 영어일색이다)

좀처럼 낚이기 힘든 고기려니와, 플라이로 낚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터였다.

그렇게 시작한 녀석이 한마리, 두마리, 자릴 옮겨가며 어느덧 20여수가 되었다.

나중엔 녀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담엔 밥이라도 주면서 해야지 이거.....

몇마리 가져다 집의 낡은 수족관에서 보며 즐길까 생각을 했지만

모두 풀어 주고 말았다. 아마 샛강에서 다시 본다면 더욱 즐거울 것이다.

나는 그날 샛강에서 또다른 낚시 친구를 찾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진정 친구로 대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할테지....

다시 한번 느끼지만 세상 어느 곳이나 물만 있다면, 비록 그 물이 맑건

흐리건, 좋은 향기가 나건 악취가 나건 상관없이 그 곳에는

숨어있는 좋은 낚시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