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덕풍조행
완연한 봄으로는 처음 출조하는 계류 조행이다.
금요일 저녁 밤 기차를 타고 가서 토요일 저녁기차를 타고 올 작정으로
미리 기차료를 예매해뒀었다. 무려 3주전에.....
마침 집사람이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해외출장이라
이틀밤 동안 혼자 보던 애기를 금요일 아침에 처가집에 맡기고 출근했다.
오늘은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군.
출발을 기다리는 낮시간이 길긴 했지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비록 같이 갈 사람을 못 구했다는 핑게를 대긴 했지만
동료들은 혼자 낚시를 간다는 사실에 늘 그렇듯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혼자 가는 게 뭐 어때서....?
저녁의 어느 집 돌잔치까지 마치고 집으로 온 나는 미리 준비해둔 짐을 꾸려서 집을 나섰다.
먹을 것과 웨이더를 담은 가벼운 쌕 하나, 어깨에 비껴 맨 쪼맨한 낚시가방 하나,
그리고 3번 대를 들었다. 낭창거리는 자작대를 들고 싶었지만 짧게 접히지가 않아
어쩔 수가 없다.
청량리 역, 11시 기차다.
일찌감치 도착한 나는 음료수와 아침꺼리를 좀 더 산 후, 내일의 체력을 위해
부지런히 뭔가를 먹어두고 기차를 탔다.
아무 생각없이 탄 기차의 좌석엔 이미 누군가가 앉아 있다.
회사원들인 듯한 여자분 5명이 기차여행으로 한 무리의 좌석을 차지하고 옆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가를
궁금해 하며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내가 털석 앉게 되자, 일행들 사이에서 "야 자리바꿔" 라는 알 수 없는(?) 대사가 들려왔다.
핸드폰으로 3시쯤 알람을 맞춰놓고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핸드폰이 울기 전에 미리 깨버린 나는 깜깜한 어둠 속의 창밖을 훝는다.
어두운 불빛 속에 가끔씩 드러나는 탄광촌들......
아~ 아직 우리나라에도 탄부들이 있었지..... 이제는 시대의 뒤안길로 잊혀져 가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탄부들이 있었다.
나처럼 하루하루를 얼렁뚱당 살며, 주말에 여유롭게 낚시가는 나홀로 중산층(?)이 있는 반면에....
보지 않으면 잊고 지내던 또 다른 어떤 것을 기억해내게 되었다.
새벽 3시 26분, 정시에 도착한 낯선 태백역은 생각보다 많은 하차객으로 조그만 역사가 붐빈다.
유리 칸막이에 극장표 좌석에 VTR심야 상영까지..... 멋진 휴게실을 갖고 있었다.
나처럼 봇단짐을 싼 노숙자들과 역무원들간의 다툼이 또 다시 나를 약간 멋적게 하였다.
빵 한조각 우유 한 통, 콘 샐러드 한 판으로 아침을 대강 챙겨먹은 나는
아직은 어둠 속이지만 앉아있기가 멋적어서 그만 일어서 역을 나왔다.
역 앞엔 태백택시 2대가 빨간 불을 밝히며 서있다. 듣던 대로군.
"아저씨, 덕풍계곡까지 얼마에요?"
"2만원 주소"
"......... 갑시다"
보기보단 친절한 기사 분은 여러가지 질문으로 혹은 길 안내를 하며 날 심심찮게 한다.
낚시를 좋아한다는 그 기사 분과는 잠시 사이에 오랫동안 아는 사이 마냥 즐겁다.
밤길 임에도 꽤나 좋은 속도로 낯설고 험한 강원도의 산길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많이 잡으라는 인사와 함께 도착한 덕풍 마을은 아직 어둠 속이다.
5시 정각, 태백에서 마을까지는 꼭 30분이 걸렸군.
덕풍계곡 입구 관리소 주위를 어슬렁 거려 보았으나 인기척은 없고
아직은 싸늘한 강원도 산골 새벽, 잠시나마 바람을 가릴 곳을 찾아보았으나 문마다 굳게 잠겼다.
그냥 태백역에서 개길 껄......
기온은 7~8도, 마을을 누벼 보았으나 개들만 이방인을 나름대로 반길 뿐, 변변한 비닐하우스도 없다.
분교를 찾아가 건물 뒷편에서 짐을 풀고 담벼락 밑에 바람을 막아본다.
예전부터 혼자 노숙하며 여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언제나 오래된 분교는 어딘가 숨을 곳이 있다.
적당한 물과 화장실도 해결된다..... -_-;
여담이지만 산 속에선 무덤 옆이 최고다. 그만큼 편편하고 부드러운 잠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에게는 잠들기 전에 인사라도 드리고 자는 게 예의다... 흠흠.
5시 반쯤이 되자 산 속의 동녁이 밝아온다.
이제 계곡으로 향했다.
입구의 구름다리를 지나, 물론 아직 관리인이 없는 관리사무소를 지나,
천천히 계곡을 구경하며 만난 첫번째 소(물 웅덩이)를 앞에 두고 계곡으로 내려가 웨이더를 입고,
신발은 벗어 쌕에 다시 담았다. 이제 여름이면 그냥 반바지에 샌달이면 되리라....
마지막으로 낚시대를 셋팅했다.
3번대에 3번라인 전에 만들어둔 18번 패러슈트를 달았다. 리더도 열심히 펴고, 드라이 액도 충분히 묻히고...
(패러슈트 : 이름 그대로 낙하산처럼 찬찬히 바른 방향으로 떨어지게 만든 물에 뜨는 벌레 같이 생긴 훅)
아직 관리사무소가 보이는 위치인데 오늘의 주인공 산천어 한 마리가 노니는 게 보인다.
역시 관리 낚시터구만, 벌써부터 기대가 넘친다.
6시부터 시작했다.
상류를 천천히 올라가며 업 스트림 캐스팅으로 훝어 보기로 했다.
(업 스트림 캐스팅 : 하류에서 상류를 항해 플라이를 던지기, 흐르는 물에 훅과 라인 다루기가 어렵지만
낮엔 계곡풍이 알맞게 불어줘서 오히려 캐스팅하기엔 쉽다)
긴 소 꼬리(하류)와 몸통을 캐스팅 연습으로 얼렁뚱땅 넘기고 큰 바위에 누워 나름대로 몸을 숨긴 나는
좀 떨어진 소 머리(상류) 부분을 노리고 패러슈트를 날렸다.
급류를 타고 약간 흐른다. 앗 뭔가 문다. 폭! 얼결에 대를 채 보니 뭔가가 끌려 온다.
벌써 혼인색이 나타나기 시작한 15급의 갈견이, 음 멋진데.....
다시 같은 장소를 향해 던지자 약한 입질로 순식간에 라이즈도 없이 빨리듯 훅이 사라진다.
엇? 탁! 대를 채자 대끝에 강한 저항이 전해온다.
후둑후둑! 후둑후둑!
전형적인 산천어의 몸짓이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저항하는......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모양, 숫처녀의 앙탈로 비유하는 낚시꾼도 있다......-_-;
보통의 고기는 머리를 반대방향으로 하고 달아나는 데, 산천어는 특이하게 후진으로 달아 나려한다.
약간 뻣뻣한 3번대가 휠 정도의 강한 저항을 계속한다. 음, 이 녀석은 제법 큰데......
앗차! 감탄하는 사이에 빈 대가 되버렸다. 물속에서 몸을 한바퀴 감으면서 멋지게 털고 가버린 것이다.
하하.... 휭~
첫 산천어를 놓친 이후로 계속 갈견이만 만나게 되었다.
계곡 하류는 평평하고 아주 얕은 런 지역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 큰 소로 이뤄져 있었다.
보가 한 두 개 정도?
큰 소마다 꼬리와 머리를 훝어보았지만 이른 시간 탓인지 갈견이만 반긴다.
뻣뻣한 대 탓에 하늘을 나는 갈견이도 몇 있었다. 초보 낚시꾼 잘 못 만난 불쌍한 녀석들......
편광안경을 끼고 숨어서 관찰한 어른 키만한 깊이의 깊은 소의 돌 틈 사이로 놀러간 대형 산천어 두 마리가 돌아 온다.
소의 바닥에 있지만 머리 위의 오각형 무늬가 뚜렸한 녀석들은 최소 35이상 40에 가까운 녀석이다.
이렇게 큰 걸 본 건 처음이다.
고무라바, 비드라바, 스톤, 나름대로 자신 있는 님프 훅들을 쭈욱 드리워 봤지만
틀어박힌 녀석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기다려 볼까 했지만 상류 쪽으로 더 가보기로 했다.
중류 쯤이 되자 작은 크기의 소와 적당한 크기의 바위로 이뤄진 포켓들이 섞여져 보인다.
(포켓 : 급류가 흐르는 사이에 지형이 패여져서 조그만 웅덩이를 이뤄서,
급류 속에서도 물 흐름이 약간 늦어지는 곳. 급류의 좌 우로 연속해서 이어져 있다)
자세를 낮춰 허리를 숙이고 18~24번 미지를 써 보지만 지형지물이 없어 내가 완전히 노출된 탓인지
소 꼬리의 손바닥만한 녀석들은 벌써 소의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린다.
소 머리를 노리고 던진다.
포말이 부서지는 급류 아래일까? 조금 떨어져 느려지기 시작하는 곳일까? 수중 장애물 앞일까?
대답은 모두 다 였다. 의외의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입질에 타이밍을 놓치기 실수 였고,
한번의 입질을 놓치게 되면 바로 사라져 버렸다.
라인이 물에 닿을 때 나는 착수음을 줄이느라 최대한 부드러운 리더를 쓴 탓인지,
턴 오버(리더라인이 일자로 펴지는 것)가 잘 안되고 흐느적댄다.
꼴에 배운 데로 경계심을 줄이느라 롱리더를 쓴답시고 13ft 이상을 쓴 탓에
캐스팅이 어려워져 한번의 잘못된 캐스팅으로 놀란 고기는 바로 숨어 버린다.
스트리머나 님프와 같은 무거운 훅만 캐스팅하던 버릇으로 가벼운 드라이를 던지기엔 연습이 부족했다.
어쩌다가 혹은 계곡풍의 덕분에 제대로 깨끗한 캐스팅이 되었을 때는
여지 없이 입질이 들어 왔다. 소마다 한 두 마리씩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수량이 많고 넓은 다리를 지나 조금 더 상류로 올라가자
계단식의 급경사 지형으로 포켓만으로 이뤄진 곳이 나왔다.
이런 곳은 오히려 쉽다.
힘들여 몸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단지 제대로 된 핀 포인트에 훅만 떨꿔 놓으면 되니까....
캐스팅과 입질 타이밍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나는
두서너 번째 포켓에서 18번 패러슈트로 드디어 산천어를 다시 걸었다.
폭! 입질과 함께 급류 속을 뚫고 나온 녀석은 20급의 멋진 산천어!
붉은 진달래와 노란 산수유가 이루는 계곡 속, 봄의 빛깔 속에서도 눈부신
반짝이는 은색 몸체에 옅은 분홍색과 자주색의 파 마크....
흐름이 느려져서 젖은 낙엽이 쌓여 있는 곳으로 이끌어 랜딩을 한 나는
카메라를 꺼내 후다닥 몇 장이고 찍었다.
자랑도 하고 싶었겠지만 회사사람들에게, 친구들에게, 집사람에게, 또 애기에게
이 멋진 생명체를 보여주고 싶어서 였다.
그리고 또, 내가 제대로 된 산천어 사진을 갖고 있지 못해서 였다.
애인 사진을 간직하듯, 나의 업무수첩에는 강준치 사진이 끼워져 있다..... 하하..
녀석은 얼른 훅을 제거하고 놓아 주었다. 다행히 별로 스트레스는 없는 듯......
그 뒤로 패러슈트 훅 하나로 상류로 올라가면서 포켓마다 계속 이어서 다섯마리를 볼 수 있었다.
30에 가까운 제법 큰 녀석도 있었고 자그마한 꼬마도 있었다.
어느 녀석이던 모두 같은 종류로 멋진 얼굴과 몸매를 하고 있었기에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급류에서도 잘 보이게 윙을 넉넉하게 만든 패러슈트 훅에 또 다른 광신을 갖게 하는 순간이다.
(보통 패러슈트는 윙 주위에만 헤클을 감지만, 난 훅 몸통에도 한번 감아 비스듬하게 다리를 표현하고 있다)
해가 중천으로 오르면서 수온이 적당해진 탓인지 신난 산천어들은 경계심을 약간 풀고
열심이 먹이 활동을 했다.
알을 낳기 위해 수면을 스치는 하루살이를 먹어 보겠다고 몸 길이의 세배를 연이어 뛰어 오르는
산천어를 보면서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낚시만 할 수 있었다.
나도 생활에선 저럴 것이고 지금, 이 낚시하는 순간에도 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어느덧 점심이 되었다. 어느덧 중상류 쯤의 보에 온 나는 짐을 풀고 점심을 먹었다.
빵 두개와 우유 한 통, 햄 한 덩이, 또 다른 주식 몽셀통통........
보에 걸터 앉아 계곡에 발을 담그고 느긋하게 하늘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서울에서 보는 빌딩사이의 하늘과 색은 비슷한데도 이 느낌은 왜 이리 다를까?
최상류에는 무지개 송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더 이상 상류로 오르기를 포기하고
하류로 찬찬히 다시 훝기로 했다.
저녁 6시18분 태백발 청량리행 기차 예약 외에는 오후에 대한 일정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운 스트림 캐스팅(업 스트림과 반대)을 연습하며 계곡을 내려왔지만 무심코 디딘 포켓 위의 바위에
내가 나타날 때 마다 놀란 산천어는 숨기 바쁘다.
원래는 물가로 돌아서 천천히 접근을 해야 한다.
일정이 바쁜 탓에 대강 내려오다 중간에 있는 다리 밑을 지날 무렵,
편광안경 속으로 다리 한 편의 그늘진 깊은 곳에 산천어 들이 떼를 지어 유영하는 것이 보였다.
드라이에 반응이 없는 애들이라 스트리머를 써보기로 했다.
16번 연두색 이노무 스트리머에 꼬마 봉돌을 훅 위 40cm 정도에 하나 물렸다.
스트리머 캐스팅이라 약간 풍덩 거렸지만 무리져 있는 산천어는 무식하게 용감하다..... ^^
가라 앉기를 기다렸다. 당기기 시작했다. 슉슉......
원하던 포인트가 아니라서 물속을 조심조심 움직여 접근한 후,
다음 캐스팅을 위해 라인을 걷는 순간 뭔가 달려 있다.
어라? 갈견이..... 20에 가까운 큰 녀석이지만 놀랍다. 정확하게 훅을 문 것이다.
예민한 감각으로 입질을 받아야 겠군. 건 것도 모르다니......
다시 캐스팅 후 당기는 데 2~3 마리의 산천어가 따라 오는 것이 보인다.
너무 빨리 움직여도 따라 오는 걸 포기하고, 너무 늦어도 훅을 보고는 돌아 가버린다.
따라오는 산천어를 찬찬히 살펴 본 결과는 심리전이었다.
따라 올 땐 속도를 늦춰주고 따라오는 걸 멈출 땐 강한 액션으로 호기심을 유발 시켜야 했다.
마지막 덥치는 척할 때, 속도늘 늦춰주면 훅이 입안으로 들어간다.
그때 훅킹을 해야 훅셋이 되는 것이었다. 정말 어렵군.....
몇 번의 입질과 실패 후에 드디어 제대로 훅셋이 되었다.
강한 저항과 함께 올라온 녀석은 거의 30 사이즈의 멋진 산천어.
입에 달린 16번 스트리머 훅이 싱겁게 보일 정도로 당당한 녀석이었다.
오늘 본 녀석들 중에 제일 큰 녀석인 듯하다. 물가로 끌고가서 사진 촬영을 하려고
라인을 들고 이끌다가 훅을 털고 가버렷다. 물가가 멀어서 그건 무리였나 보다.
그 뒤로도 2마리를 더 걸어 이노무 스트리머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려오다 만난 적당한 소의 옆구리에 섰을 때, 이상한 일이 있었다.
내가 빤히 보이게 서 있었는데 소 안에는 2~3 마리의 산천어와 갈견이 떼들이
천연덕스럽게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실험을 위해 던진 마커와 님프 채비가
떨어져도 한번 놀라는 척하고 다시 훅 주위에 몰려 들었다.
바보아냐? 몇번의 님프를 갈아 끼며 캐스팅을 하여 결국 라바 패턴으로 갈견이를
두 어마리 하고 나서 장소를 옮겼을 때 갑자기 후다닥 나의 존재를 알아채린 듯 숨어 버렸다.
이유가 뭘까?
혹시 비행기 전투에 대한 상식을 떠올리며 그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고전적인 공중전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술 중에 항상 높은 고도를 유지해서 상대방의
시선방향에서 태양 속에 숨어 있는 방법이 있다.
태양의 빛으로 눈이 부셔서 상대방의 전투기를 찾아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보니 난 고기의 시선방향에서 태양 속이 있었던 것이다.
혹시 그게 아닐까? 그다지 큰 소가 아니면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다.
고기는 눈꺼풀이 없기에 광량 조절이 안되니 그럴듯하기도 하다.
재밌는 일로 다음에 또 실험해 봐야 겠다.
4시가 거의 다되었을 때, 하루를 충분히 즐긴 나는 물가로 나와 웨이더를 벗고 짐을 다시 꾸렸다.
관리소를 지나 청소료를 셈하고, 마을 입구의 버스 정류장엘 가니
이런, 3시에 버스가 가고 없다. 다음 버스는 6시20분...... 미리 버스 시간표를 못 챙긴 나는
황당해 하면서 가게에서 물어 보았으나 택시를 부르기도 여의치 않다.
또 다시 히치 하이크를 했다.
내가 처음 마주친 경차 한 대가 바로 서준다.
평균이상으로 친절한 경차의 주인은 태백시내를 돌아 태백역까지 가서 날 내려준다.
고마운 분,
난 가끔 길에서 히치 하이크를 태워도 내가 가는 길까지만 태우고 갈림길에선 내려주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도 다음엔 좀 더 여유 있었으면.......
그 분이 주신 친절로 예매해둔 기차 6시 18분차에는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태백시내를 도보로 찬찬히 훝어 보기로 했다. 낯선 도시에서의 구경도 괜찮은 재미다.
어디가나 비슷한 가게와 사람들....... 의외로 유흥업소가 많다.
시내에는 황지연못인가? 이름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었다.
역시 물이라 고기들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낚시대를 드리웠다간 쫓겨 나겠지???
태백 주위에는 검룡소라는 한강의 발원지도 있다고 한다.
돌아갈 집 생각에 역 한편 노점에서 할머니가 팔고 있는 산 달래를 한 봉지 샀다.
집에서도 덕풍계곡의 봄을 느낄 욕심으로......
다시 돌아온 역 휴게실에는 아침의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노숙자들.....
한 노숙자는 오늘하루 살아 있었다는 증거인 듯 얼굴 한 편에 피멍이 들어 있다.....
봄 햇볕에 코와 이마, 얼굴이 검게 타버리고 지친 몰골의 나를 본, 아침의 그 노숙자는 흠칫 놀라는 눈치다.
어떻게 하루만에 자기와 같은 모습이 되었나 궁금한 건가?
기차를 탈 무렵에는 천천히 걸어야 될 정도로 지쳤다.
다이어트 겸, 저녁은 건너 뛰고, 초컬릿 큰 것 한 판과 이온음료로 대신 했다.
텅빈 객차.......
저녁 10시 50분에 청량리 도착, 전철을 갈아타고 집으로 도착한 것은 11시 반이 넘어서 였다.
돌아 온 집에는 역시 출장을 갔다온 아내와 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못 본 아내가 많이 반갑다.
오늘 월요일 아내에게 산천어와 덕풍계곡을 보여주려 필름을 현상했는데.......
처음부터 필름이 제대로 걸려 있지 않아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런 황당한......
오랜만에 맘먹고 열심히 찍었건만,
산천어만 찍은 것이 아니다.
산도 찍고, 물도 찍고, 나무도 찍고, 꽃도 찍고, 오랜만에 하늘도 찍었는데.....
언젠가 내가 달라던 사진이 필요없어 안준다는 사람이 기억 난다.
보고 싶으면 와서 보면 되지,
왜 사진이 필요하냐며 정말 좋은 사람들끼리는 사진을 갖고 있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시 또 덕풍을 가게 될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이젠 비록 사진이 없어도 좋다.
그리고 나에겐 오늘 이 조행기가 있지 않은가?
유료 낚시터이고, 자주 가기엔 먼 낚시터이고, 어쩌고 하는 모든 시비를 잊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낚시만 즐기다 왔다.
이제 생각하니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람,
가끔 나의 감각을 마비 시키며, 일상을 떠나, 육신을 해탈시키는
이 합법적인 마약(?)이 정말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