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눈 감고 하는 낚시

눈을 감고 리트리브(줄을 당겨 고기 입질을 유도하는 것)하는 경우가 있다.

시각과 청각을 닫고 모든 감각을 촉각으로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혹은 나의 스트리머 훅이 마치 살아 있는 물고기 처럼 물 속에서의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지금은 고기가 따라오고 있고, 이제 첫번째 입질을 하고 다음 공격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는 순간 순간의 상황을 그리면서 낚시를 하게 되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게다가 손 끝을 통해 전달해 오는 갑작스런 입질의 충격은 눈을 뜨고 할 때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놀라움을 전해 준다.

고기가 물어 줄 것이다는 믿음으로 시작하는 눈 감고 낚시하기는

낚시 삼매경으로 연결된다.

이렇 듯 눈을 감고 하는 낚시의 또 다른 모습을 학생 때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월남전 때 얘기란다.

한 미군장교가 베트콩에게 잡혀 사람 한 명이 겨우 몸을 접고 들어가 있을 만한

좁은 우리에 2년을 갇혀 있었단다.

그런데 이 사람은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포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그가 제일 즐겨하는 취미인 골프를 시작했었다고 한다.

우선 눈을 감고,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골프채를 딱고 공을 딱은 후,

짐을 싸고 아침을 먹은 후 집을 나선다고 상상을 한다.

늘 가던 골프장에 도착하여 등록을 마친 후,

그린에 들어선다. 

1번홀, 파 5에 중간 지점에 대형 워터 해저드, 그린 주위로 벙커가 둘러 쌓여 있는 난 코스군......

티 오프를 위해 핀을 꽂고 공을 올려 놓고,

1번 드라이버를 꺼내 그립을 확실히 수정하여 잡은 후, 천천히 몸을 돌려 스윙 연습을 하고

스텝을 견고히 잡은 후, 허리부터 돌려 어깨, 팔꿈치, 손목, 드라이버 헤드에 이르기 까지

천천히 백 스윙을 시작한다.

정점에 다다랐을 때, 태엽이 풀리 듯 힘을 빼고 샷 포인트를 집중하여 스윙을 한다.

따~ 악,

워터 해저드 전방의 페어웨이에 정확히 떨어진 멋진 티샷이다.  나이스 샷!  다행이군.

천천히 다음 샷을 위해 이동한다........

그는 이렇게 매일 실제로 골프를 치는 상황을 머리 속으로 재현하며,

2년여 동안의 포로생활 내내 하루도 빼지 않고 18번 홀까지 돌았다고 한다.

스윙 때는 몸 부분부분의 필요한 근육을 실제로 긴장시켜가며 연습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 오류를 수정해 가며 말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포로들이 자포자기로 혹은, 정신착란으로 죽어간 반면에

그는 정전 후, 살아남아 미국으로 송환되어 올 수 있었다.

병원에서 며칠 간의 요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자 마자, 그가 처음 한 것은 골프였고,

월남전으로 인해 수년 간의 공백 이후, 처음 친 그의 기록은 전성기 때와 다름 없는 싱글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이미지 학습이라는 이론으로 정착되었지만,

역시 놀라운 일이다.......

비록 골프의 경우지만, 이 이야기를 읽은 이후,

나도 가끔 낚시를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혹은 이동 중의 대중교통 속에서와 같은 어쩔 수 없는 무료한 상황에서,

혹은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흉내를 낸다.

우선 눈을 감고,

낚시를 준비하고, 낚시를 위해 떠나고, 현장상황을 상상하고,

적당한 채비와 플라이 훅을 선택하고,

여건이 된다면 캐스팅을 하듯 팔도 흔들어 본다.

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캐스팅을 다시 수정해 본다.

입질이 있다면 적절한 타이밍으로 훅킹도 해보고,

낚은 고기도 감상하고 릴리즈도 해본다.......

이런 짓은 내게 여러가지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준다.

낚시를 못 감으로써 발생하는 금단(?) 현상을 줄여 줄 뿐만 아니라,

고기에 정신이 팔려 보지 못 했던 많은 상황들을 다시 볼 기회를 주고,

눈 뜨고 느끼지 못 했던 것에 대해 생각하고 기뻐하고 혹은 반성하게 해준다.

혹,  나중엔 낚시를 안 가게 돼도 되는게 아닐까?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  현실의 베이스 없이는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또 다른 큰 낚시를 하게 된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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