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캣치 앤 릴리즈와 방생
플라이 낚시를 시작하고 나서는 줄곧 물고기를 잡으면 놓아주는 일에 익숙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민물이건 바다낚시이건 잡게 되면 작은 녀석을 제외하고는 부지런히 먹어 주었다.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나중에 내가 죽어서 염라대왕에게 벌을 덜 받는 길이라 생각하고......
플라이 낚시에는 "캐치 엔 릴리즈"란 말이 있다. 민물낚시에도 방생이란 말이 있지만
자기가 잡은 고기를 놔준다는 말보단 어디선가 돈으로 구해준 걸 놔준다는 느낌이 든다.
자기가 잡은 고기를 다시 풀어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얘기다.
힘들여 밤새 플라이 바늘을 만들고, 땡볕에 혹은 비를 맞아가며, 하루 종일 플라이 라인을
앞뒤로 흔들어 댄 결과로 겨우 한마리 걸은 고기를 풀어주다니... 차라리 잡지나 말지.
먹지도 않을 걸 괴롭히고 풀어 주면서 좋아하다니... 차라리 나나 주지.
이런 낚시꾼들이 많으리라고 본다.
나도 한때는 그 문제로 방황했었다. 잡은 고기를 풀어 주는 척(어차피 담에 또 잡을테니.....)해서
자연 보호자인양 거들먹거리는 건 아닌지?
어떤 고기는 풀어주어도 스트레스로 고통받다가 금방 죽게되는 수도 많다.
다음에 낚을 기회를 얻기 위해 풀어 줌으로써 고기 수를 보호해야 된다는 낚시꾼 자기만의
욕심을 숨길 수 도 있다.
그래도 난 풀어 준다.
왜냐고? 모든 걸 떠나서 다만 그게 인간적으로 같은 생물로서 덜 미안하기 때문이다.
조선(釣仙)이 되기 전까지는 낚시를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고,
당장의 눈앞의 상황에 미안해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잡고는 미안해 하고, 또 잡고는 미안해 하고..... 악순환일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난 초보 낚시꾼이니까.....
낚시에는 큰 바늘을 쓰면 큰 고기가 물고, 작은 바늘을 쓰면 작은 고기만 낚는다는 속담이 있다.
낚시꾼 사이에도 크기와 관계 없이 많이 잡기 위해, 작은 바늘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큰 고기만을 노리기 위해 큰 바늘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한때는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작은 바늘을 쓰다가 다시 큰 바늘로 바꿨다가 이제는 또 작은 바늘을 쓴다.
어차피 큰 고기든 작은 고기든 바늘을 물게 되면 입속의 상처는 당연히 나게 되고,
생사를 넘나드는 필사의 탈출을 위해 몸부림 치게 되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급격한 운동에 의해 혈중 산소농도가 떨어져서 실신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어차피 상처를 준다면 작은 바늘을 문다면 조금 덜 상처나고 아프지 않을까 해서이다.
티펫(바늘과 플라이라인과 연결하는 가느다란 나일론 낚시줄.... 민물낚시의 목줄이라고
보면 된다. 중간에 리더라는 낚시줄도 있긴 하다)의 굵기도 마찬가지다.
티펫이 가느다라면 물속에 잘 가라앉고 물고기 눈에 보이지 않아서 고기를 속이기 쉽다.
하지만 큰 고기를 걸면 줄이 터지기 쉽다. 초보는 안전을 위해 굵게 쓴고 고수가 되면
자신감에 가는 줄을 쓰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가느다란 티펫으로 큰 고기를 다룰 수 있다면 고수의 경지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굳이 가늘게 썼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다시 굵은 줄을 쓰고 있다.
줄이 터진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 녀석은 당분간 바늘을 물고 생활해야 하다.
사람이 낚시 바늘을 물고 산다고 생각해 보라. 환상적일 것이다.
보통은 바늘이 걸린 부분이 상해서 피부가 느슨해지면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다.
물고기의 위는 쇠도 녹일 수 있다고 하니 안심은 되지만, 바늘이 입에 가로 걸리면
먹이는 먹는 데도 지장이 있고 굷어 죽을 수도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생각이 가끔은 든다.
고기를 풀어준다는 것에는 상황과 어종에도 문제가 있다.
누구는 토종 민물고기를 잡아 먹는 수입어종이 배스는 절대 풀어주기 말고 죽여야 한다던지....
양어장에서의 고기는 풀어줘도 다시 잡힐테니 빨리 죽여서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 낫다던지.....
찬반 양론이 여기저기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각자의 이유를 대어 가며...
나도 답을 모르겠다. 원래 답이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내 죄를 덜기 위해 내 손으로 죽이기는 싫은 게 내 맘인 걸까?
아차! 배스에 대해서는 나도 미련하게 다른 낚시꾼들처럼 의견이 있다.
인간세계와 비유하면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을 몰살하자는 것과 같다.
어차피 같은 인간이고, 고기인데.....
인간이 자연을 위해 조정자 역할을 하는 건 어린아이의 어설픈 발짓이다.
각각의 생명은 살아 있던 죽었건 현실에서는 소중하다.
잠시 얘기가 새어 나가지만, 내가 플라이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생각났다.
플라이는 가짜미끼를 쓰기 때문이다.
지렁이에 바늘을 찌를 때마다 피로 손을 얼룩이는 거나, 사정없이 손가락을 물어오는
갯지렁이의 이빨을 피하는 것을 생략할 수 있는 간편한 상황을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낚시 바늘에 꾀여 파르르 떠는 작은 생명을 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플라이 낚시를 좋아하는 것은 가짜미끼로 고기를 속이기 보다는
미끼를 위해 죽여야 하는 또다른 작은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많은 얘기들은 낚시꾼마다 많은 이견이 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어차피 이 어설픈 고기 아끼는 척하는 나의 태도들은
생명을 담보로 한, 타고난 인간 유희의 보상심리에서 기인된 것 뿐이다.
고기를 이뻐한다면 밥이나 줄 것이지 왜 입에 바늘을 박고 기를 쓰고 당겨 오나.....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내세가 있다면 니가 낚시꾼이 되고, 내가 물고기가 되어서
그 아픈 낚시바늘을 물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