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꾼들에겐 비공식적인 출조 결정자가 있는데

그건 바로, 아내다.

본인의 일이나 여타 상황, 그리고 매달리는 애들도 있지만

최종 출조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내다......^^

총각 때의 자유롭던 시절엔 아무 꺼리낌 없던 때가 있지만, 결혼한 낚시꾼들에겐

늘상 그렇듯 낚시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원활한 출조를 위해 낚시꾼들마다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는데

몇가지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가장 흔한 Give and Take 형이다.

한 번의 출조를 위해서 몇 주를 벼르고, 애들과 놀아주기, 처갓집에 점수따기,

밤에 충실하기(?) 등의 온갖 계획된 작전을 낚시꾼 나름대로 구사한다.

그리고 슬며시 출조 전날 말을 꺼낸다. "나 낚시 갔다와도 돼?"

하지만 늘 상, 집 떠나는 날 뒷통수는 따갑기 그지 없다.

가족을 생각하는 나름대로의 애교가 있어 보인다.

그 치밀한 작전 짜느라 최소한 치매는 안 걸릴 것 같다.

해본 사람만 알 일이다.

둘째는 무대포 형이다.

멋진 조행기나 친구나 선후배의 전화 한 통에 고기 욕심을 못 이기고

무작정 떠나버리는 무대포 낚시꾼의 경우다.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경우로

부인되시는 분을 존경해야 한다.

셋째는 거짓말 형이다.

낚시를 가는지 안가는지 가족이나 동료는 모른다.

오직 자신만 알뿐.......

온갖 핑게로 낚시갈 틈을 만들어 내고, 친구나 동료의 부모님이 수시로 돌아가시게 된다(?).

차 트렁크 뒤에는 항상 낚시대와 장비가 들어 있고,

양복이던 잠옷이던 복장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열정에는 같은 낚시꾼으로서 탄복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첫번째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가고 싶은 날은 기를 쓰고 가는 편이다.

솔직히 오늘은 꼭 가야겠다고 털어 놓는다.

다만 맘 좋은 아내 덕분에 스타일을 좀 덜 구긴다고나 할까?

우리집 얘기를 해보자.

남자가 처음 만날 때부터 낚시가 취미라면 대부분의 아가씨들은 꺼려하기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숨기기도 하고, 아예 대놓고 낚시를 데이트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밤낚시도 있으니...... 후후.....

우리 부부는 불같이 만나서 순식간에 결혼한 특이한 경우라,

연애기간 동안엔 같이 낚시갈 기회가 없었다.

대신 결혼 이후, 생활이 안정되면서 난 낚시를 자주 가게 되었고,

물론, 출조에는 꼭 아내와 함께 하게 되었다.

당시 아내는 한번의 바다 배낚시와 견지낚시 경험 외에는 전혀 낚시를 몰랐고,

게다가 내가 하던 낯선 플라이낚시를 익히기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나의 의견을 먼저 따라 주던 아내는 지루하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출조길을 함께 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아내는 내가 잡지 못한 날에도 꼭 한 두 마리는 낚는

놀라움을 보여줬다. 가끔 나의 낚시 수준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할 정도였으니.....

이것도 원활한 출조의 기술이라고 생각이 든다.

자신은 못 잡아도 아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게 해두면 다음에도 꼭 갈 수 있다....-_-;

물론 내가 플라이 낚시를 하는 동안 아내는 주로 루어 낚시를 하였다.

내가 언제나 물고기를 잡으면 놓아주는 것도 의당 그르려니 하고 지냈다.

그러다 언젠가 부모님과 함께 민물낚시를 간 적이 있었다.

아는 분의 별장을 빌려 하루 쉬고 오기로 하고, 낮엔 잠시 낚시를 하려

저수지를 찾았지만 대부분이 낚시금지로 되어 있어 결국 근처 강으로 갔다.

때마침 폭우로 강은 흙탕물로 뒤집어질 듯 거세게 흘렀다.

난 플라이 대를 펴보지도 못했지만 아버님께서는 몇 개의 조그만 섬으로 가려진

강가의 조용한 지수(물 흐름이 느린 곳) 부분으로 가족들을 이끌었고,

붕어낚시를 하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나눠진 한칸 반 혹은 두칸의 잘막한 민물대와 지렁이 외봉........

아니 다를까 입질이 끊이지 않는다.

바로 몇 미터 옆은 10cm도 보이지 않을 흙탕물로 뒤범벅인데도 말이다.

그 난리를 피해 물 흐름이 조용한 이 곳으로 고기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아버님의 오랜 경험으로 엮어진 낚시는 아직도 나의 이상(理想)이다.

아내는 깜빡이는 찌 놀림에 마냥 흥이 겨웠었다.

두 어 시간의 낚시 끝에 꼬마들을 풀어 주고 손바닥만한 녀석들로만 몇 마리 담아 뒀다가

저녁 찬을 했다.

붕어 매운탕.......

이 곳 경기 쪽의 매운맛만 나는 뭔가 부족한 매운탕이나, 경북 쪽의 조림 형태의

텁텁한 매운탕과는 달리 경남 쪽에는 특이한 향신료를 쓴다.

"제피" 와 "방아 이파리"로 불리우는 일종의 허브를 넣어 끓이는 어머님의

매운탕은 특이한 향과 함께 바다 매운탕과 같은 시원한 맛이 난다.

민물고기를 입에 못 대던 아내마저 몇 그릇을 비우게 되었다.

그 뒤로 아내의 취향은 바뀌었다.

찌놀림 멋이 있는 대낚시와 잡은 고기로 맛있게 요리해서 먹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아내는 어찌보면 나와는 다소 상반되는 낚시 스타일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죽은 물고기 다듬기도 꺼려하는 순진한 아내라

내가 잡아서 다듬어 주지 않는 한은 아직 못 먹고 있다....^^

아내의 스타일은 낚시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통적인 낚시의 즐거움과 수확물을 맛있게 먹는 즐거움.......

내가 잊어버리고, 혹은 딴 짓으로 메꾸던 낚시의 원본을 문득문득 떠올리게 해준다.

절름발이 낚시가 될지도 모를 나의 낚시를 보완해 주는,

말하자면 낚시 내조인 셈이다.

나의 플라이 낚시가 아내에게 낚시 외조가 되었으면..... 후후....

요즘은 아이가 태어난 이유로 아내와 같이 낚시 가본지가 거의 1년쯤 되는 것 같다.

아내의 몸이 무거워서 혹은 애기가 어려서........줄곧 혼자 다녔다.

혼자 다니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움도 빼먹을 순 없다.

아버님께서 나에게 낚시를 가르치시며 느끼셨을

어느 정도의 귀찮음과 남모를 즐거움을 나도 이제 느낄 수 있겠지.

그동안 말없이 나홀로 출조를 보내준 아내가 고맙다.

애기가 조금 더 자라면,

이제 늘 가족과 함께 낚시를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난 벌써 올겨울 저수지 송어낚시에 쓸 아내를 위한 플라이용 민물찌를 만들어 TEST 해두었다.

아내는 플라이를 하면서도 찌놀림을 충분히 맛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가끔은 9개월째인 딸아이에게 플라이 아랫대를 쥐어 휘두르게 해본다.

좌우로 아래 위로 휘젓는 통에 낚시대를 부러뜨릴까 걱정도 되지만

아이는 연신 즐겁다.

언제쯤이면 이 녀석에게 플라이 낚시를 가르칠 수 있을까?

아니 낚시를 알려줄 수 있을까?

낚시는 나만의 혹은 낚시꾼만의 세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족이 얽혀드는 것도 꽤나 재밌는 일이군.

혹시 또 모르지, 이 글을 아내가 읽어 준다면

이번 주말 출조가 쉬울지....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