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붕어 플라이
몇 주를 별러 준비했던 한강 모처의 출조,
계획한 어종은 누치......
월말을 계획했지만 드디어 못 참고 출발하게 되었다.
어제 저녁 사소한 일로 아내를 섭섭하게 대했던 게 못내 미안했지만
새벽에 눈을 뜨자 마자 참았던 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 한강 좀 갔다 올께요. "
벌써 알고 있다는 듯 아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 미안해요' 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리며 세수를 하고 짐을 꾸렸다.
반바지에 푸른색 긴팔 소매 셔츠를 입고 손수건과 모자를 챙겼다.
주머니가 많은 걸로 새로 구해둔 조그만 낚시가방에 3번 이상 감긴 릴을 모두 빼내고 2번과 3번 라인 릴만 담았다.
계류에서 쓰던 자작 9ft 3번대 한 대를 천 주머니에 담아 끈을 질끈 묶었다.
가방을 비껴메고 나서니 6시 15분.....
조금 만 더 서두를 껄..... 늘 그렇듯 출조 시간은 아무리 서둘러도 아쉽다.
택시를 타고 가까운 전철역으로 간 후, 전철을 탄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다들 바쁘게 사는 구나.
난 낚시 가구....... 왠지 그들과 난 평소보다 더 낯설다.
마치 이방인 마냥,
그나마 오늘은 덜하다. 평일날 아침 전철타고 가는 낚시는 정말 어색하곤 했다.
내린 전철역은 처음 가는 곳이라 약간 헤맸지만, 낚시꾼의 본능인지 물이 어딘지 금방, 감이 온다.
7시 10분, 드디어 시작이다. 예상보다 냇물 폭은 좁았고, 수위도 낮다.
자연 친화적인 좌우 뚝방은 시멘트 구조물이 없다. 마치 시골 외갓집 냇가를 보듯.....
잔잔한 새소리에 아침 풀내음이 그 득하다. 이름모를 꽃향기 마저.....
잔잔히 흐르는 여울에 라이즈가 간간이 인다. 밝은 색 패러슛을 달아 던져 보지만 반응이 없다.
색을 바꿔가며, 훅을 바꿔 가며 반 시간 가량 써 보지만 반응이 없다.
소식처럼 피라미가 없나?
게다가 늘, 드라이 훅이 물에 닿기 전에 잠자리들이 한참을 가지고 놀다가 놔 준다.
" 거기가 아니라니깐!! "
얄궂은 녀석들..... 좋은 데나 떨꿔 주지.
한번은 티펫이 날개에 걸려 같이 물에 떨어 졌다. 조심 조심 걷어서 풀어 주니 좋아라 날아 간다.
그래도 녀석들의 드라이 훅 가져다 놀기는 그치지 않는다.....-_-"
오솔길 따라 하류로 조금 더 내려가다 라이즈가 있는 곳을 찾아 조심 조심 물가로 내려섰다.
가시덩쿨이 발목을 긁는다. 그래 미안 미안.....
어느덧 해는 뜨거워 졌지만 정강이를 물속에 담그니 견딜만 하다.
바닥은 약간의 모래와 진흙, 그리고 군데군데 중간 돌이 깔려 있다. 수심은 50~60cm.
편광안경 너머로 물속을 찬찬히 살피니 번득 번득, 초식 어종의 바닥 훑는 모습이 있다.
' 어라? 먹는 모양은 납자룬데 크기는 약간 더 크군. 큰 납자루 아니면 붕어렸다. '
채비를 님프로 바꾼다.
6X티펫을 좀 더 길게 늘려 새로 끼고 쪼그만 마커, 납자루 전용 24번 빨간 미지 라바,
그리고 유속이 느려 중간 크기의 납 봉돌을 물렸다.
물가에 선 나는 업스트림으로 던져 하류까지 찬찬히 훑기로 했다.
물의 오른쪽 뚝으로 들어선 지라 왼속잡이인 나는 캐스팅이 불편하기 그지 없다.
할 수 없이 백 캐스팅으로 착수를 시킨다. 철푸덕~ 철푸덕~ 고기 다 놀래키겠군.
익숙해진 뒤, 좀 쉬었다 다시 던졌다.
몇 번의 드리프트 중에 돌 무더기 부근을 지날 무렵, 마커가 갑자기 깜박인다.
" 엇! " 엉겹결에 대를 세운 나는 뭔가 파닥이고 있음을 알아 챘다.
" 퍼덕 퍼덕! " 제법 당기는 걸 봐서는 납자루는 아니다.
근처에 와서 보니 제법 뚱뚱하다. 그렇다면.....
손에 쥐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건 붕어 였다. 아랫 입술에 정확하게 미지 훅이 걸린......
15급이 조금 안 될려나?
놀랄 겨를도 없이 고기를 놓아 주고 뺀 훅으로 같은 장소를 지나가게
다시 캐스팅, 바로 입질이 온다. " 쑤 욱 "
" 턱! " 아까보다 훨, 쎈 녀석이다. 붕어 전용 민물대를 개조한 거라 벌써 대가 1/3 가량 꺽인다.
' 이 녀석(자작 플라이 대) 붕어를 걸었으니 여기서 꺽어져도 원은 없겠군. ' 속으로 중얼 거렸다.
6X 티펫이 불안하며, 아니 24번 미지 훅이 불안하며, 올라 온 녀석은 20이 약간 넘는다.
맙소사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감탄사. " 오 시트! 시트! "
갑자기 머리가 혼란 스러워 왔다. " 이거 붕어 플라이 아냐? "
궁금하기도 했지만, 말도 많고 의견도 많던 붕어 플라이였다.
될 턱이 없다, 아니다 된다, 되면 뭐 하냐? 플라이낚시는 연어과 어류 전용이다......
그런데 우연도 아니고 두 번 연속해서 정확하게 입질을 하고 바늘을 입술에 걸고 올라 온 것이다.
생각은 이제 접고 현실만을 보기로 했다. " 그래 앞으론 붕어도 플라이다 "
흘러 내린 정신을 줏어 담고 걸어 올린 붕어를 살펴 본다.
참붕어인 듯한데 강붕어라서 그런지 힘찬 녀석들이었다. 환경이 좋은지 상당히 뚱뚱해 보인다.
연속해서 아랫 입술을 건 것으로 보아서는 내려 먹는 일반 붕어 특성(민물낚시는 윗입술에 걸린다)과는 달리
강붕어의 경우, 물 흐름 속의 먹잇감에 대해 받아 먹는, 혹은 올려 먹는 입질을 보인 것 같다.
수심은 바닥을 기는 것보다 약간 띄워 흐르는 편이 오히려 입질이 나았다.
확실히 계류어 처럼 올려 먹는 것이었다.
수중을 찬찬히 살펴 보니 꽤 많은 숫자의 붕어 떼가 보인다. 무리져 다니고 있다.
제법 큰 잉어 무리도 보인다. 살치도 있는 듯 하고,
뚜렷한 검은 옆 줄무늬에, 꼬리에 검은 색 띠가 있는, 확실한 배스도 있었다. 내내 한 마리 밖에 못 본 걸로 봐서는
다행히 배스의 수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마릿 수 욕심을 버리고 붕어 플라이를 좀 더 공부하기로 했다.
훅과 수심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던져 봤다. 입질 형태도 파악하고.....
우선은 잔챙이들만 있는 탓인지 18번 이상의 큰 훅에는 도무지 반응이 없다.
메이, 스톤, 러버라바, 비드라바, 줄줄이 갖다 대 보지만 역시 반응이 없다. 결국 아까 그 빨간 24번 미지 라바란 말인가?
이번엔 똑 같은 크기의 24번 노란색과 갈색, 그리고 연두색을 흘려 봤다.
정작 입질이 들어 온 것은 연두색이 한번 뿐이었다.
아마도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이 냇물에선 제대로 된 수서곤충을 취식하긴 어렵겠지.
모기 류의 미지들이 우점하고 때마침 이 바닥엔 붉은 색 계열이 많나 보다.
스캐빈져는 정확한 이미테이션이 아닌라면 손도 아니 지느러미도 안댄다고 하더니,
어슬픈 내 훅보다는 차라리 녀석들도 구분하기 어려운 미지에만 반응이 있나부다.
다시 입질을 보려고 붉은 라바로 바꿨다. 입질은 느린 흐름이어서 인지 보기는 쉬웠다.
하지만 붕어의 올림 입질은 둥근 스폰지 마커가 알려주진 못한다.
그 입질도 표현 가능한 자작 막대기 마커가 있지만 그것 마져 달면 민물 대낚시로 흐를까봐 차마 달지 못했다.
깜빡깜빡, 멈칫멈칫, 쑤욱!, 쏙!, 부르르...... 정말 다양했다.
순간의 입질을 놓치면 그냥 흘려 보내기 때문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했다.
드랙 프리로 흘리느라 라인을 다소 느슨하게 두고는 도저히 대를 드는 방식으로 훅킹이 되지 않아,
라인을 당기는 방식으로 우선 훅을 입에 거는 데 중점을 둬야 했다.
하지만 워낙 훅이 작으니 물속에서 투둑! 거리다 빠지는 일이 많았다.
바늘 키우자니 물지를 않고, 그냥 두자니 훅이 안 걸리고...... 의외의 문제가 생겼군.
누치를 위해 새로 디자인 해둔 구더기 훅(16번 둥근 훅에 베이지 색 매끈한 더빙)을 달고
한동안, 잉어를 대상으로 꼬셔 보지만 쉽지 않다.
진짜 모양은 구더긴데.... 처음 만들어 보여준 아내가 놀라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다 장애물에 훅을 걸어 버렸다. 회수하지 못하고 남겼다. ' 강에 미안 미안 '
다행히 처음 디자인한 훅은 두 개씩 만들어 두는 버릇이 있어서.... 이제 하나 남았군.
다시 빨간 미지로 붕어를 한 두 수를 더 하고, 10시반.... 하류를 좀 더 살펴야 되는 데....
발로 풀밭을 헤쳐 가며 나름대로 뱀을 경계하고 수풀을 빠져 나왔다.
가시 덩쿨은 여전히 ' 그래, 미안 미안 '
이제 하류, 다리가 있고 약간 크고 깊은 소가 있다.
하수구 물 나오는 곳이 한 군데 있어 또 다른 움푹한 소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본류에 비하면 상당히 깨끗한 수질이다.
다리 그늘 아래 뚝방에 서서 하수구 구덩이로 빨간 미지 라바를 던진다.
이번엔 구리 립을 감은 24번이다.
어랏! 소가 깊은 탓인지 쑥! 하는 센 입질을 보인다.
제법 깊은 물을 차고 다니는 붕어...... 그래 정말 오랜 만에 보는 붕어의 몸놀림이었다.
연속해서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비슷한 또래로 서 너 수를 했다.
대부분 질긴 6X 티펫 덕에 들어 뽕을 할 수 있었지만, 한 녀석은 굵어서 뚝방아래로 내려가서 풀어 줘야 했다.
물 가운데 깊은 소에 나타나는 굵은 녀석들, 잉어도 끼어 있다.
이 낭창대는 3번대와 6X 티펫으로 잉어를 걸며 어떻게 될까? 호기심에 훅을 이것 저것 바꿔봤지만
역시 소식이 없다. 미지 라바도 수심이 깊어지니 꼬마봉돌을 더 써야 되고 경계심만 늘린 탓인지.
입질이 드물다. 아차 갈색 스톤 이미지에도 한번의 입질은 있었다.
남겨둔 또 하나의 구더기 훅을 달았다.
실납을 많이 감은 탓에 스플릿 샷 없이도 제대로 수심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다운 스트림으로 수심 깊은 곳을 따라 흐르게 하자 웬일, 팍팍! 하는 강한 입질을 보인다.
턱! 물속을 맹렬히 끌고 다니는 25에 가까운 큰 녀석..... 그것도 붕어 였다.
이번엔 윗 입술에 걸렸다. 아마도 훅이 큰 탓이겠지.
점점 구경꾼들이 몰렸다. 그늘에 차를 세우고 쉬던 택시기사, 지렁이를 싸들고 지나가던 동네 낚시꾼 아저씨....
" 이거 플라이 낚시 아니요? 이걸로 붕어도 되요? "
" 허허... 되네요..."
이젠 정말 된다구 해야 겠구만.
" 잉어는 안되요? "
" 전 아직 못해 봤습니다. "
아차, 원래 계획대로 누치를 위해 준비해둔 또다른 게 있었다. 냄새나는 플라이.....
아니 플라이에 향과 맛을 더하기 위해서 만든 물약!
좀 거시기 한 방법이지만 외국의 잉어 플라이어들이 쓰는 방식이다. 개인이 만드는 독특한 항료,
난 간편하게 옥수수 통조림 국물을 물엿으로 조려서 약간 흐를 정도로 굳혀뒀다.
딸 아이의 감기약병에 담아 짜 쓸 수 있도록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했었다....^^
구더기 훅의 물기를 짜내고 듬뿍 발랐다. (미리 발라서 말려도 된다)
물어라 잉어!
왠걸, 잉어는 물지 않고 붕어만 더 큰 녀석들이 나온다.
이상하게 횟수는 잦아 졌지만 부르르 떨거나 약간 멈칫 거리는 형태로 입질이 약아 져서
훅킹을 아주 긴장해서 해야 했다. 약간의 타이밍만 놓쳐도 푸둑 푸득~ 그걸로 끝이었다.
" 아 입질 왔는데 아깝네요! 저 위로 한번 더 해보세요! "
" 예 그러지요. "
그렇게 동네 아저씨들과 함께 몇 마리를 더 즐긴 후 바늘이 수풀에 걸려 잃어버렸다.
때마침 누군가 지켜보던 다른 아저씨가 " 여긴 원래는 낚시 하면 안되는 데요 " 라고 한다.
" 엥? 그래요? 몰랐네요. "
내심 좀 의심 스러웠지만 그래서 이렇게 고기가 많나부다 하면서 주섬주섬 대를 접었다. 낮 12시 반.
이젠 어디서 또 이런 낚시를 할 수 있을까?
다음엔 잉어 플라이를 해야 되는데........
다음 주에 아마존에서 " Carp on the fly " 가 오는데......^^
올라오는 도로변에 있는 돌기둥, " 고기를 잡으면 안 됩니다." 라고 써 있다.
푸 훗~ 난 고기 낚았는 데.....
낚는 다와 잡는 다의 차이점을 나라에선 알까?
본의 아니게 도둑 낚시를 하게 된 셈이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돌아 오는 길 내내 정신이 혼미 했다.
배도 고팠지만 색다른 낚시를 한 까닭이리라.
계속 해서 엉터리 플라이 낚시꾼이 되고 있는 것 같다......-_-;
다음엔 또 뭘 낚을 수 있을까?
우선, 나라는 녀석을 낚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붕어플라이 소식에 아내도 즐거워 한다. 어제의 섭섭함도 잊어 주며.....
돌아 온 후, 샤워를 했지만 아직도 자판을 치는 나의 오른 손엔
붕어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