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지금은 낚시 중
턱! 어? 이거 뭐야... 바닥에 걸렸나?
탁! 탁!
몇 번의 챔질 뒤에 대를 세우자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이 녀석........!
순간 깨닫는다.
여지껏 상대해 왔던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대물이다.
민물 대낚시에서 처럼 대물의 입질은 언제나 그렇듯 느긋하다.
덩치가 커서 굼떠서 인지, 언제든 가느다란 낚시 줄을 끊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
촐싹이지 않는다.
찌를 퍽퍽 거리지도 않고 스물스물 기어 올리듯,
잔챙이들의 팍팍하는 입질과 달리 바위와 같은 묵직함만 전해 온다.
분명히 바늘에 걸렸음인데도 전혀 조급하지 않다.
음....... 오늘 이럴 줄 알고 1.5호 티펫을 썼지.
작년에 첫 캐스팅에 1호줄을 낼름낼름 끊어 먹던 그녀석들인가 보다.
그때도 딱 요맘 때였지.
우선 첫 타에 티펫을 살렸으니 승산은 있다.
아까 그 세찬 물 흐름 곁에서 확 잡아채는 엄청난 입질로 날 놀래키던 그 녀석인가?
비슷한 크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1분이 지났건만 전혀 보여 주지 않으니 짐작할 수가 없군.
게다가 여태 제자리네.......
아무리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런........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군,
하지만 보통 강준치들과는 달리 아직 물 속에만 있다. 혹시 잉어 아냐?
이 사이즈라면 릴로 붙어 봐야 겠군.
검지로 라인을 끼고 새끼 손가락에 여분줄을 건 다음 릴을 감기 시작했다.
멀리서 입질이 와서 롱 캐스팅하느라 여분줄이 엄청 길다.
대물은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에서 불쑥 불쑥 나타 난다니깐, 물가에서 겨우 7M나 될까?
엇! 순식간에 차고 나간다.
릴 감으랴, 검지로 라인 풀어 주랴...... 정신 없다.
이노무 10번 바늘이라 훅셋은 웬만큼 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미늘이 없어 무작정 풀어 주기도 그렇다.
줄의 전체 길이가 늘어나면 유리한 건 녀석일테니까,
줄 감는 내 손보다 녀석을 치고 들어 오는 게 빠르겠지.....
몇 번의 차고 나감을 가까스로 컨트롤하며 여분 줄을 다 감았다.
휘~ 유, 한시름 놓았군.
대가 긴 덕분에 지렛대 역할을 하나 부다. 한 손으로 대를 버티기가 꽤나 어렵다.
대의 릴시트 부분을 배에 대고 버틴다. 한결 낫군....
릴링을 계속하며 조금이라도 고기 머리를 내 쪽으로 돌려 보려고 차고 나가는 방향에 맞춰
로드를 돌려 달래 본다. 왼쪽, 또 오른쪽, 또 왼쪽....
철푸덕~! 물속에서의 몸 부림....
은색 배와 좁고 넓적한 몸통.... 그래 강준치다.
덕분에 머리 방향을 물가 쪽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 순간,
까르르르르........!
정확하게 일 년만에 들어 보는 릴의 드랙음.....
끼릭끼릭끼릭, 다시 릴을 감고,
순간 또 까르르르르......! 손바닥을 펴서 릴을 감싸 조금이나마 마찰을 더한다.
한 타이밍이 지났군. 지금이 감아야 할 때다.
다시 끼릭끼릭끼릭.....
아차! 아까 본 티펫의 윈드노트 생각이 났다.
티펫에 매듭이 나 있었던 것이다. 티펫 굵기만 믿고 내버려뒀었지.
지금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다. 내가 소극적이 되는구만,
녀석이 그걸 알까? 안다면 한 순간에 사력을 다해 볼텐데......
이제 넌 체력, 난 정신력의 싸움이다.
녀석이 차고 나가는 순간을 놓치면 1.5호 티펫의 매듭이 터져 나갈 터....
대로 전해오는 장력만으로는 녀석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할 순 없다.
바늘을 입에 물었다는 가정하에 물에 잠긴 리더라인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핀다.
라인 근처의 일렁이는 물 움직임도 살핀다.
조금만 떠 오르면 녀석의 움직임을 살피기 쉬울 텐데.....
다행히 몇 번의 드랙음과 릴링 크릭음이 교차 된 후,
물가로 끌어 올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당기면 얕은 곳이다. 고기는 수심이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 있다.
바닥은 흙과 중간 돌이 박혀 있는 완만한 경사, 때마침 불어난 물 덕분에
잠겨진 풀더미가 있다. 이 위에 얹어야 겠군.
마지막 순간을 녀석도 노리고 있겠지. 내가 방심하고 있기를 바라며.......
최후의 반격을 로드를 눕혀 주는 것으로 제압하고, 다음의 작은 몸부림을 기다렸다.
바로 머리를 들어 올려 풀더미에 얹기엔 녀석이 너무 무겁다.
머리를 물가 쪽으로 둔 상태에서 정신이 없는 녀석은 다시 차고 나온다.
이 순간을 이용해서 대를 들어 계획한 풀더미에 1/3가량을 얹었다.
작은 녀석들 처럼 한 손으로 대를 무작정 뒤로 젖힐 순 없었다. 대 꺽기 딱 좋으니까......
대신 쪼그려 앉아 뒷 걸음질 치며 대 각도를 유지한 채로 녀석을 풀더미 위에 고정시켜 둔후,
로드를 옆으로 눕혀두고 얼른 달려가서 고기와 티펫을 잡는다.
마지막 몸 부림에 고기는 미끄러 지고 오른손에 쥔 티펫이 끊긴다.
역시 윈드노트..... 매듭 부분 이었다.
다행히 녀석을 다시 쥘 수 있어서 훅을 뽑아 들 수 있었다.
그런데 웬일, 훅은 주둥이 왼쪽에 살짝 꿰여 있다.
이걸로 여태 버텼단 말인가?
멋진 녀석..... 넓쩍한 몸집에 잘 어울리는 멋지게 빠진 몸매를 갖고 있다.
얼굴을 찬찬히 살핀다.
강준치 대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놀라운 눈 크기.....
왠지 표정이 있어 보인다.
이상하게 잔챙이들과 달리 큰 녀석들의 얼굴에선 표정이 있다.
' 나와 겨룬게 바로 너냐? '
" 그래 나다. 고맙다 내 바늘을 물어줘서... "
물 속으로 머리를 돌려둔 녀석은 점차 힘을 얻어
천천히 사라진다. 어슬렁 어슬렁.....
멋진 녀석,
언제 까지나 안녕히....
멋진 한 판이었다.
오늘은 내가 낚시꾼 넌 고기, 다음엔 어떤 인연으로 만날지.......
시린 손목만큼 마음도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