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표정있는 고기
낚시를 하다 보니 고기들에게도 표정이 있어 보인다.
희노애락을 안면 근육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나타내는 표정...
인간 외에도 원숭이와 유인원 혹은 돌고래 등의 고등동물에게도 표정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소나 개와 같은 가축류에도 가끔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기에게는 그런 표정과는 약간 다른, 소위 Mask 라고 부르는 독특한 얼굴모습이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각 어종마다 갖고 있는 특이한 얼굴표정...
계류어가 갖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순진함이 서려 있는데,
그 중에 열목어가 고소(高笑)이다.
동글한 얼굴
둥글고 검은 큰 눈...
게다가 많이 울어 약간 붉은 기가 도는 듯도 하다....^^
약간 두툼한 입술....
낚아 올려 보면 바늘을 빼도 입을 약간 헤~ 벌리고 있다.
바늘에 달려들 때와는 달리 잔뜩 겁 먹은 표정으로 낚시꾼을 바라 본다.
마치 인적드문 계곡에서 이상한 복장의 플라이 낚시꾼을 만난 산골 소녀처럼,
그러지 않아도 놔 줄텐데...
가끔 내가 그 표정을 흉내내보고 혼자 웃곤 한다.
귀여운 녀석들...
반면에 같은 계류어임에도 산천어는 성격과 같이 약간의 영악함이 느껴진다.
약간 갸름한 얼굴,
적을 위협하는 아프리칸 전사들의 분장인 듯
수레바퀴 모양의 검은 눈....
굳게 다문 입술...
평소의 날렵하고 잽싼 모습처럼, 표정에서 벌써 다부짐이 흐른다.
아롱한 무지개색 세로 띠는 도시 오피스 걸들의 화장 마냥 새침함을 더한다.
물론 난 흉내가 안 내진다...-_-;
이들과 달리 무지개송어는
어느 정도 한국 내에 토착화 되었음에도 현란한 무늬와 큰 덩치,
사나운 이빨은 여전히 국제화시대에도 낯선 서양인의 모습이다.
어쩐지 우리 계류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그외의 자그마한 계류어 들 중에는 금강모치나 버들개와 같은
약간 둥그스럼한 얼굴모습와 얼굴크기에 비해 쬐그만 눈을 가졌다.
마치 우리네 얼굴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강준치도 살펴보자.
이 녀석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부리부리한 눈에 길게 찢어진 입.
영락없는 강계의 폭군 같지만,
일단 입을 열면 약간 꺼벙해 보인다.
엄청나게 큰눈과 어쩐지 제 위치가 아닌 듯한 비례에 맞지 않는 입 모양.....
나 같은 엉터리 플라이 낚시꾼에게도 덥썩 덥썩 덤벼주는 것 보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내 맘에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녀석들을 낚아 올려 만난 순간, 가끔은 그 큰 눈으로 날 살펴 보는 것 같다.
정확하게 녀석들의 표정을 읽을 순 없지만
" 도대체 넌 뭐냐? " 혹은 " 재수 없이 걸렸군 "
대충, 뭐 이런 표정인 것 같다.
녀석들의 정확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면 꽤나 황당할 것 같기도 하다.
" 흑흑.... T_T 저는 집에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어요 "
" 야! 비늘 벗겨, 배따! "
" 사실은 이 바늘 벌써 유행이 지났는데요 "
" 엉! 또 너냐? "
후후......
그래도 녀석들의 표정을 읽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