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아버님과의 출조계획
이번주말 애기 돌잔치로 부모님께서 올라오신다.
그리고 내가 아버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낚시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난 마냥 설레고 있다...
결혼하기 전 부산 본가에서는 늘 아버님의 차로 아버님이 인도하시는 물로 따라 다니던 낚시...
아버님께 배운 낚시방법과 아버님의 손때 묻은 낡은 장비로 하던 낚시...
그런데 이번엔 나의 차로 아버님을 모시고,
내가 모시는 낚시터로, 나의 장비로, 나의 채비와 낚시법으로
아버님과 낚시를 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감개무량"이다....
"그동안 가르쳐 주신 낚시를 이제 혼자 익혀서 아들놈이 이만큼 낚시로 자랐습니다"
라고 보여 드릴 기회란 생각이 든다.
낚시로선 대선배이신 아버님께 낚시로 뭔가 보여 드린 다는 게 좀 쑥스럽긴 하다.
갑자기 한석봉이 불 끄고 붓글씨 쓰다 쫓겨 간 이야기가 생각난다.
낚시하다 대 접고 그만 가자고 하실까 봐 겁도 난다. 후후...
혹시 아버님의 떡쓰는 칼솜씨가 무뎌지신 건 아닐까 하는 안심도 하고,
한편으로는 염려도 한다....
낚시로 먹고 사는 것도 사람들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낚시하나 가지고 무슨 비약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낚시꾼인 나는 그 역시 중요한 인생의 한 조각이다.
나보다 두배나 많은 조각들을 가지신 아버님께서는 아마 날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아버님과의 즐거운 낚시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출조지를 물색해 봤다.
플라이 대는 한번도 안 써보신 아버님이라 플라이만 하는 내 장비만으론 계류를 가긴 아무래도 좀 어려울 테고,
마침 일찍 문을 여는 저수지 송어낚시터가 있다고 해서 가기로 했다.
그동안 부산가서 경남일대의 바닷가, 저수지, 낙동강 등에서
나의 어줍잖은 플라이 낚시로 늘 꽝만 보여 드렸던 관계로 이번 기회에 분위기도 쇄신하고(?),
아버님께 오랜만에 손맛도 보여 드리고 싶었다.
몇 년 전부터 겨울에 오시라고 모셨지만 틈내시기가 어려우셨나 보다.
아마 낚시를 가도 캐스팅은 내가 해드리고, 리트리브나 마커보기만 아버님이 하시는
일종의 효도낚시가 될 것 같다....^^
그래도 모르겠다. 아버님 역시 맥가이버에 버금가는 놀라운 채비 개발자이시니까
아버님 나름대로의 독특한 플라이 낚시를 하시게 될지....^^
그리고, 평소와는 달리 꿰미를 가져가야 될지도 모르겠다.
아버님께서는 낯선 고기, 송어의 살 한점을 드시고 싶으실지도 모르니까....
내겐 이미 어색한 일이 되어 버렸지만,
그런 건 잠시 잊고 아버님의 낚시를 존중해드려야 겠지?
처음엔 온 가족이 다 갈까 했는데, 아이들도 있고 해서,
나머지 가족들은 다른 일정을 갖고, 나와 아버님 이렇게 오붓하게 가게 되었다.
동생까지 가면 딱 좋은데 이 녀석이 워낙 바쁜 척 하는 통에,
아쉬울 뿐이다..... ; 뭐 진짜 바쁘덴다..... -_-"
언젠간 우리 삼부자가 각각의 모습으로 고기와 노니는 날이 있었으면.....
그리고 난 어제그제 이틀 밤을 새가며 밀린 바늘 맸다.
돌대... 도 매고, 비드라바도 매고, 이노무도 매고, 캐디스도 매고...
행여 어렵게 모신 아버님께서 고기를 못 낚으실까 봐,
내가 아는 채비를 다 준비하느라 그렇게 되었다.
고기야 못 낚더라도 오랜만에 함께 하는 부자간의 낚시
그것만으로도 넉넉하겠지.
밀린 잠 탓에 아직도 어질어질하지만
그래도 아버님 모시고 낚시 갈 생각을 하니
아빠가 오시는 가을 운동회 기다리는 초등학생 마냥,그저 즐겁다.
눈을 감으니
송어를 걸고 웃으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낯선 곳의 고기들이 아는 체나 해줄런지....
이번에 물어주면
내가 다음에 니 바늘을 두 배로 물어주마
그만큼 난 우리 아버님이 좋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