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부전 자전....
지난 토요일,
드디어 기다렸던 낚시를 다녀왔다. 아버님을 모시고....
전날 저녁이 딸아이 돌잔치라 과음을 하여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여전히 설레는지 5시로 맞춘 시계보다 먼저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다행히 아버님도 조카녀석의 칭얼거림 때문에 일찍 깨셔서 5시 정각에 출발할 수 있었다.
미리 실어 둔 짐 덕분에 옷가지만 챙기고 올라탄 내차....
늘 그렇듯 새벽출조에서 느끼는 얼얼한 썰렁함이 왠일인지 오늘은 적다.
아버님께서 계시기 때문이겠지.
지도는 대략 살펴두었지만, 처음 가는 밤 길이라 만만치 않다.
서울시내 한복판을 뚫고, 의정부를 지나 포천 방향으로 항해 달린다.
중간에 한번 차를 멈추고 속을 게워야 했다. 어제 작작 마실 걸....
집사람 사무실의 손님들까지 잔을 건내느라 무리 했나 보다....^^
차문을 열고 돌아 보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송구스럽다.
이젠 그나마 내가 정신을 차려서 술 적게 먹으란 말씀도 거두신지 오래되었지만,
아무 말씀 없이 바라만 보시는 모습이 더욱 죄송스러웠다.
덕분에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차를 몰았다.
날이 밝고 7시경 도착한 포천의 금주지.....
우선 물 구경을 먼저하고, "음.. 정말 물이 맑구나."
관리실을 들리고, 화장실을 다녀와 만반의 준비를 끝낸 후, 낚시대를 뽑아 들고 물로 나선다.
벌써 몇 분들이 플라이 대를 드리우고 있다.
간혹 송어를 걸고 있는 모습이 나와 아버님의 흥분을 돋웠다.
난 싱킹라인으로 스트리머만 쓸 생각으로 다소 뻣뻣한 기성품 5번대를 들었고,
아버님께는 손맛을 위해 계류에서 쓰던 자작 9ft 3번대에 님프채비를 해드렸다.
수심이 깊다는 정보에 티펫을 길게 새로 달아 수심을 3M 이상으로 맞췄다.
훅은 오렌지색 비드라바 10번을 달았다. 지난해 시즌에 조황을 확인해둔 녀석이라
아무래도 돌대...보단 나을 것 같았다.
빨리 가라 앉히기 위해 꼬마 봉돌도 두어개 달고, 약간 앞으로 던져 드리고,
어제 미리 보여 드린 VTR 자료와 비교하며 입질을 설명 드렸다.
뒤에서 잠시 지켜보다 내 채비를 한참 차리고 있던 찰라,
"엇!" 하는 아버님의 탄성과 함게 휘는 대....
붕 붕 붕.... 휙~!
초릿대 노는 소리가 한참 들리더니 바로 바늘이 빠져 버렸다.
"아부지! 입질 왔었어요?"
; 난 아직 친근감을 위해 아부지라고 호칭하고 있다. 초등학교 전부터, 어머님은 엄니....^^
"오냐, 힘이 대단하네!"
다시 채비를 갖추고 던질려는 찰라, 또 초릿대 노는 소리가 들린다. "붕 붕 붕..."
틱~! "어? 또 빠져부렀네요"
"바늘이 뻗었나?" 바늘을 살펴 보시던 아버님은 내가 미늘을 없앴다고 혼내신다.
아니 미늘을 없앴다고 얘기를 미리 않했다고 혼내신다....^^
"짜슥! 여유있게 놀리다가 놓쳤다 아이가, 미리 얘길 해줘야제..." 후후....
어느덧 나도 입질이 왔다.
패스트 풀 싱킹라인이지만 3M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45초~1분을 기다려야 했다.
한번 던지고 초시계 보고, 던지고 보고....
1.2M의 숏리더에 1.5호 티펫, 12번 보통 사이즈의 이노무스트리머....
두어번 만에 뭔가 엄청난 힘의 입질, 사람이 물속에서 손으로 당겨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다.
대를 세우지도 못하고 잠시동안의 어리버리 후,
바늘이 빠졌다. "음 정말 엄청나군, 수심이 깊은 것도 있지만 힘이 장난이 아니군"
가슴이 뛴다..... 그래도 아버님이 먼저 거셔야 되는디....
다시 던지자 바로 입질이 왔다.
턱! 아까와의 똑같은 입질, 걸리는 순간 파고 드는데,
2M권까지는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임에도 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힘으로 뻣뻣한 5번대를 허리 너머까지 꺽어댄다. 발판이 허술하면 미끄러질 정도였다.
재차 파고드는 힘에 온몸으로 버텨야 했다.
보통 저수지에 비하면 거의 2배이상의 놀라운 힘이었다.
수중에서 뒤트는 은색 몸놀림이 몇 번 보인 후, 표면으로 올라왔다.
40이 넘는 암놈 무지개송어..... 늘 그렇듯 이상하게 스트리머엔 그 드문 암놈이 많이 따른다.
이쁘장한 이노무 스트리머가 맘에 드나?
재빨리 끌어온 후, 자작 랜딩핸드(손에 끼는 장갑모양 그물)를 물에 적셔 고기를 쥐고,
바늘을 뺀 후, 아버님께 보여 드렸다.
"이렇게 생긴 녀석이에요." "입안이 딱딱해서 바늘이 박히지 않으면 금새 빠져요."
"음, 대단한 놈이구나. 알았다."
곧이어 아버님도 시작하셨다.
턱! "오! 아부지, 드디어 거셨네요! 천천히 하세요!!"
흥을 돋우기 위해 추임새를 넣는 내가 더 신이 났다.
민물대를 개조한 3번대라 대는 이미 허리이상을 꺽고 있고,
한번씩 용을 쓸 때마다 물로 처박는 초릿대....
아버님은 "으허허허" 하는 너털 웃음과 함께 즐거워 하신다.
한참을 겨룬 후, 힘이 좀 빠질 무렵 조심스레 줄을 잡고 랜딩핸드로 고기를 쥐었다.
한손에 쥐어지지 않는 멋진 녀석이었다. 고마운 녀석......^^
첫 고기라 놓아주자고 했었지만 아버님께서는 식구 생각을 하시며,
두어 마리만 가져 가신단다...-_-"
내키진 않지만 주섬주섬 꿰미를 꺼내 매었다.
벌써 많아진 다른 플라이 낚시꾼들의 눈치도 보이고, 주인장이 싫어하는 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아버님이시니까.
그 뒤론, 내가 거의 낚시를 할 수 없었다...^^
던져드리고 돌아서면 바로 거시는 통에, 줄곧 바늘을 빼드리거나
끊어진 훅을 새로 달거나, 부러진 훅을 교체해드려야 했다.
빨리 가라 앉히려고 1호 티펫을 썼지만, 거친 이빨과 심한 몸부림에 자주 상했나 보다.
잠시 후, 막간을 이용해서 스트리머로 낚은 암놈 한 마리와 아버님의 한 마리를 더해
꿰미에 낀 후부터는 나도 부담없이 낚시를 할 수 있었다.
아버님께서도 느긋하게 입질을 즐기셨다.
고기 색깔 이야기도 하시고, 물색 얘기도 하시고....
처음 낚아보신 무지개송어에 대해 "멋진 놈이구나!" 를 연발하셨다.
남들이 입질이 뜸할 무렵까지 "입질이 부르르 떤다." 하시며 예민한 입질을 가려 보시며
간간히 올리셨다. 역시 아버님의 떡(?)써는 솜씨는 여전하시구만....
아버님께서만 계속 올리시자, 비드라바 훅을 보여 달라는 다른 분이 계셔서 나눠 드리기도 했다.
내심 아버님께 우쭐해 보이려고 했건만,
미끼를 나눠 쓰는 민물과 바다낚시를 즐기시던 아버님은 당연한 듯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_-"
나도 추임새를 하느라 줄곧 입으로만 낚시를 했건만,
간간히 던진 스트리머로 고기를 보았다.
한번의 무지막지한 입질에 12번을 끊어 먹고, 할 수 없이 10번 이노무2000버젼으로 갈아 끼자
조금 덜했지만, 계속 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낮이 되어 님프에 입질이 멎었지만, 물가(수중그물)의 얕은 곳으로 회유하는 무지개송어를
노려서 수심 2M권에서 따라오는 고기를 보고 스트리머를 놀릴 수 있었다.
따라오면 멈추고, 멈추면 당기고.... 따라오는 고기를 보고 미끼를 놀리는 재미.....
작은 바늘과 달리 큰 미끼는 무지개송어도 수직공격을 해 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바늘이 입가에 가로 걸렸던가?
바늘을 무는 순간을 보고 느끼는 희열은 스트리머 낚시의 백미인 것 같다.
맑디 맑은 금주지의 물속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잠시 더운 한낮을 피해 점심식사를 했다. 어제의 과식으로 아버님께서 선택하신 메뉴는
짜장면....!
오랜 만에 두 부자는 국민학교 졸업식 때 먹었던 짜장면의 추억도 떠올릴 수 있었다.
나 어릴 때 최고의 음식.....
아버님도 아직까지 중국집에선 짜장면이 제일 맛있다는 말씀에 세대차이를 좁힌다....^^
낚시터의 주인장(사장님)과도 얘기를 나누며 쉬고 2시경에 다시 시작했다.
님프입질은 끊겼지만 마커를 무는 것 같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12번 흰색 거미를 달아 드렸다.
잠시 후, 팟!하는 챔질 소리와 함께 대가 휘었다가 뻗었다.
입질이 왔었다는 것이다. 음... 한낮에 오히려 배고픈 송어들이 물위를 살피는 구나.
가만 보니, 산속에 있는 금주지의 표면엔 노린재, 딱정벌래, 등등 테러스트리얼이
간간히 떠 간다.
얼마 후, 제대로 거셨다. "하하.... 이놈은 입질이 확실하게 보이는 구나!"
드라이 플라이낚시의 재미를 아시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알려 드리지도 않은 깔짝이는 액션을 주시면서 입질을 유도해내시고 계셨다...^^
다시 티펫을 터뜨리시고, 흰색 스폰지 벌레(다리가 뚜렷한)로 한 수와 몇 차례 입질....
그렇게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4시가 되면 일어나시기로 하셨고, 시간이 되자 아버님과 나는 즐겁게 대를 접었다.
꿰미를 들어 봉투에 담고, 여러 가지로 소란스러웠던 통에 다른 플라이 하시던 분께
죄송함이 남는다....
끝나고 나니, 나도 아버님도 마릿수를 제대로 세고 있지 못했다. 후후....
물론 산술이 안되는 엄청난 마릿 수의 고기를 낚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염화시중의 마음이 이럴까?
아는 사람만이 아는 이 흐뭇함.....
그리고 가장 맘에 남았던 것은 내가 캐스팅 해드리겠다고 해도,
연습을 해야지 하시며, 가까운 곳은 굳이 직접 던지시는 아버님의 모습이었다.
내가 캐스팅을 해드리면서 내 낚시를 제대로 못 할까봐 마음도 쓰셨지만,
새로운 새 낚시에 도전하시는 모습이 정말 가슴 찡했다.
남들이 던지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시고, 내가 드리는 설명에 귀 기울이시며, 캐스팅을 반복하시는 모습은
나중엔 내가 던져 드리겠다고 말씀을 못 드릴 정도였다.
낚시가 끝날 무렵엔 벌써 전방 캐스팅은 어느 정도 모양이 생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낚시의 열정은 부전자전이었나 보다...^^
막히는 토요일 오후, 3시간에 걸쳐 돌아오는 길 내내
두 부자는 낚시 얘기로 지루하지 않았다.
옛날 내가 어릴 때, 낚시 다니던 얘기,
아버님이 어릴 때, 낚시 다니던 얘기,
먼 훗날, 나의 아이에겐
할아버님이 낚시 다니던 얘기와 이 아버지가 낚시 다니던 얘기,
그리고 할아버님과 아버지가 낚시 다니던 얘기를 해줄 수 있겠구만....
그때까지 플라이 낚시를 즐길 수만 있다면....
그날 저녁엔 오랜만에 아버님의 솜씨로
멋진 송어회 한 접시를 온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아버님이 낚아 온 고기 한 점에 온 가족은 감탄하며,
신나게 저녁 상을 준비했고, 아버님은 반주도 한 잔 하셨다.
내 혼자 낚시 다녀서야 우찌 그런 낚시를 즐길 수 있으랴?
잠시 예전에 내가 다니던 길을 다시 걸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떠오른 고마운 고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