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나는 무슨 파(派) ?
세상엔 도대체 몇 종류의 생물들이 있을까?
해마다 꾸준히 발견되는 새로운 종들과 아무도 몰래 사라지는 종들도 많으니
정확하게 세는 건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 겠지.
하지만 그중에 종류로는 곤충이 제일 많다고 한다. 그래서 타잉패턴이 그렇게 많은 걸까?
같은 종이라고 해도 각 개체마다 다른 개성을 갖고 있을 테니
구분하여 세어 본다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중에 낚시로 낚을 수 있는 종류는 어류 뿐?
남자가 여자를 낚고, 여자가 남자를 낚는 상상하기엔 약간 엽기적인 상황을 빼면,
실수로 낚시바늘에 네발 짐승이나 날개달린 녀석들이 걸려 나오는 황당한 상황을 빼면,
정말 어류 밖에 없나 보다...^^
그렇다면 그 중에 플라이 낚시로 낚을 수 있는 종류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열 손가락을 못 채우고 좌절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서식 어종만 수백 수천가지가 될 터인데,
대부분의 플라이 낚시꾼들이 즐기는 대상어는 에게~ 서너가지....
게다가 개개인 별로 특히 선호하는 어종은 한 두가지로 요약된다.
나름대로의 단계가 올라 갈수록 강원도 산골의 귀한 계류어인
"열목어" 혹은 "산천어"....,
플라이 낚시꾼마다 무슨 조직마냥 열목어파와 산천어파로 나눠진 것 같기도 하다.
그 외 나같이 엉뚱한 플라이 낚시꾼들은 강준치, 살치, 피라미 등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_-;
앞의 두 어종이 국내의 플라이 낚시에 가장 적합하고, 매치 더 해치나 타잉의 영역, 캐스팅의 기술 등
전통적인 플라이 낚시의 단계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플라이 게임 피쉬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그들이 사는 곳은 인간이 봐도 경치마저 끝내 준다.
분명 멋진 고기임에 틀림없다.
그 덕분에 나날이 많아져 가는 플라이 낚시꾼들에 의해
그들의 안식은 줄어간다.
좋은 계절, 가을인 요즘, 왠만한 알려진 강원도의 계류는 휴일과 평일을 구분않고
플라이 낚시꾼들이 포인트를 가득 메운다고 한다.
비록 몸이 바빠 못갈 망정, 마음만은 나 또한 다름 아니다.
먹이로 여겼던 것들이 생사를 뒤흔들 바늘로 언제 변신할지 불안하기 짝이 없으리라.
그들의 변별력과 플라이 낚시꾼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날지 모르지만,
더욱 삶이 고달플 것은 고기와 낚시꾼 모두 마찬가지지,
그렇다고 낚시꾼보고 낚시 가지 말라고 하는 건 나도 낚시꾼인 이상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대상어를 좀 바꿔 보면 어떨까? 그보다 좀 넓혀 보면 어떨까?
"귀한 계류어"는 마음의 편견일 뿐이다.
강계에 널려 있는 피라미 한 마리는 어찌 귀하지 않을까?
전체 총량이나 개체수에 의해 중경후박(重輕厚薄)을 결정하는 물질주의의 잣대가
생명에게도 걸쳐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금이 귀하고, 금광석이 비싸다는 건 자연의 이치일까?
사람이 만든 것일 뿐일까?
가끔 지구상 곳곳의 환란에서 일어나는 사망사고에서 그나마 사람에게는 평등한 체하는 걸 보면 더욱 아쉽다.
아마 기독교에서 갖는 인본주의의 영향일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나머지 모든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고 하는 이야기가 가끔은 아쉽다...
한 마리의 계류어나 피라미나 죽고나면 썩어 사그러진다.
심지어 그것이 한 마리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아는 산천어 전문의 어떤 고수는 여의도 샛강에서 살치를 낚는 일이 더욱 즐겁다고 한다.
나도 이젠 계류는 공부하는 장소로 여길 뿐, 특별한 종류에 대한 고기 애착은 줄일려고 노력한다.
게을러서 자주 못다닐 뿐이지 물가만 가면 플라이 대를 들고,
어종불문, 장소불문, 기법불문을 신조로 삼고자 한다.
전통적인 매치더 해치나 수서곤충학에 대한 외면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불문(不問)낚시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은 여전히 굵은 기둥으로 남아 있으니까,
가까운 예로 강준치를 들어 보자.
시즌이 되면 한강 주변에서 손쉽게 낚을 수 있는 녀석으로 생각하지만,
그들에게도 매치 더 해치가 있단다.
이른 봄 갯지렁이의 산란에 맞춰 훅을 준비해야 하고,
늦봄으로 민물고기들의 산란이 시작되면 프라이 패턴이 필요하고,
여름내내 찾아오는 살치를 이미테이션 해야 하고,
가을이면 깊은 수심으로 이동할 몇몇 소형어종의 이미테이션이 적절하고,
그리고 연중 내내 찾아오는 다수의 산란어종에 맞춰 타잉을 해야 한다.
아직까지 강준치의 산란과 계절별 migration은 분명하지 않다.
한 겨울에도 얼음장 밑에서 올라오는 그들은 무엇일까?
여름철이면 분명할 댐셀플라이 해치도 있건만 그들에 대한 님핑도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고,
잠자리와 같은 드라이 플라이의 Test도 이뤄져 있지 않다.
게다가 그들의 회유를 결정하는 요인들은 더욱 난감하다.
그렇게 초보와 고수를 차별하지 않고 물어주는 고마운 강준치에 대해서도 말이다.
플라이 낚시에 대한 강준치의 연구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플라이 낚시의 굵은 기둥 뿐만아니라 새가지와 새싹들도 피어 날 것이다.
이는 강준치에 그칠 것이 아니다.
이 친구도 사귀어 보고, 저 친구도 사귀어 보고....
플라이 훅을 구경 못한 촌구석들의 고기들도 아직까지 얼마나 많이 있을까?
이미 그들의 환경마저 가련한 계류어들에게만 갈고 갈아 시퍼런 날을 세운 바늘을 드리워야만 하나?
그건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플라이 낚시가 생명과 환경에 친화적이란 오만함이 전제이다...-_-;
모든 고기를 두루두루 다 사랑하는 플라이 낚시꾼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낚시의 진정한 즐거움이 소유나 집착이 아닌 만물애(萬物愛)라면,
고기 뿐만 아니라 사람도 사랑하고, 풀 한포기, 돌 한덩이도 사랑하고....
새치기 하는 앞사람이나, 딸아이의 볼을 깨문 모기 한마리도 미워하는 나에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도 저도 아니면 한 가지만 열심히 공부 해도 좋을 것 같다.
강준치파도 있고, 피라미파도 있고, 납자루파, 붕어파도 생겼으면....
엉터리 플라이 낚시꾼 소리를 들어도 좋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나중엔
더 큰 플라이 낚시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