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출조의 종류
출조(出釣)란 말은 낚시간다는 걸 어려운 한자로 옮겨 쓴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요즘은 복잡한 세상마냥, 출조의 종류도 다양하게 구분하고 있고,
모두 약어로 줄여 쓰고 있다.
그런데 출조 마다 각각의 즐거움이 다르고 감상이 틀리다.
어디 내가 좋아하는 순서대로 출조를 구분해보자...^^
아니, 역순으로 하는 편이 재밌겠군.
나같은 낚시꾼에게 출조는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아무래도 제일 못한 건 의출(義出)이다.
이는 의무출조의 줄인 말로 시조회나 납회를 위해 의무적으로 가는 낚시다.
그나마 시조회나 납회는 일년의 큰 행사로 참가의 의미나 있지만,
혹은 직장상사나 선배를 모시고 약속한 낚시를 가는 일은 이건 낚시도 아니다.
그런 날은 아예 낚시할 생각은 접고 몸으로만 낚시를 하게 된다.
혹은 제사에 쓸 고기를 낚으러 간다던가, 누구의 부탁으로 고기를 잡아와야 하는 경우엔
조황마저 부담되니 난감하기 그지 없다.
다음은 제일 흔한 정출(定出), 정기출조의 줄인 말로 단체나 개인이 일자를 미리 정해두고 가는 낚시를 뜻한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정출이랍시고 정해두면, 일이 꼬이거나 날씨가 막거나 해서
오히려 가기 어려울 때가 많다....-_-;
오기로 한 사람들이 안 오기도 하고, 모임 식구들 챙기랴 처음 낚시하는 사람 챙기랴
사람이 많아지면 어지럽기 그지 없다.
다만 낚시가는 날짜 세는 맛만은 그럭저럭 괜찮다.
다음은 연출(聯出), 연합출조의 줄인 말로 각 모임들이 서로의 친분을 돈독히하고, 그동안의
갈고 닦은 기량도 선보이며, 정보도 교환하는 교류를 위한 출조로 실제 낚시는 뒷전이 된다.
간혹 경쟁으로 색이 흐려지기도 하지만 일년에 한 두번 쯤은 가볼만도 하다.
세상은 다녀봐야 넓은 줄 알기 마련이니 말이다.
다음은 번출(燔出), 번개출조의 줄인 말로 누군가 온/오프 라인상에서 갑자기 번개를 때려서
그 핑게로 몇몇이 몰려가는 낚시다. 우선은 누가 올까 궁금해하는 점도 재밌지만,
막상 참여하는 인원은 적지만 오랜만에 혹은 처음 만나는 이들의
반가움 덕분에 낚시는 둘째가 되고 또 다른 즐거움에 빠진다.
조황이 좋다면 더욱 좋겠지만 늘 그렇듯 번출은 아쉬움만 남긴다.
다음은 몰출 혹은 암출(暗出), 몰래 출조한다는 의미로 번잡한 절차를 버리고, 아끼는 특정 포인트를 찾아
혼자 혹은 두어명이 살짝 다녀오는 낚시로 조행기도 없고 조황결과도 없다, 그래서 부담도 없다.
낚시는 즐거울 수 있겠지만 남는 게 별로 없다. 어디 낚시가 고기만 낚으러 간 것인가?
그리고 가출(家出), 물론 아예 집 나가서 낚시하는 건아니고, 가족출조의 줄인 말이다.
온 식구들을 데리고 가는 떠나가는 낚시다. 낚시라기 보단 소풍이나 놀이라는 의미가 가깝겠다.
물가라 아이들 돌보랴, 부인네들 미끼끼랴, 초보들 채비만들랴, 게다가 점심 찬이라도
마련해야 될 판이라면 낚시꾼에겐 고역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낚시를 보여주고,
자연을 보여줄 좋은 기회이다. 게다가 다음 출조를 위한 점수도 딸 수 있다..-_-;
다음은 동출(同出), 동반출조의 줄인 말로 애인이나 친구 혹은 선생과 제자사이에 오붓하게 가는 둘만의 출조이다.
조황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맘에 드는 사람에게 친절히 낚시를 배우고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초보자가 남의 낚시에 끼어서 가는 경우에는 상당히 행동이나 몸가짐이 조심스럽게 된다.
맘에 드는 사람과의 오붓한 낚시임은 틀림 없지만, 그래도 자유롭지 못한 점이 조금은 아쉽다.
그 다음은 단출(單出), 단독출조의 줄인 말로 이는 혼자만의 출조이다.
혼자 짐싸서 혼자 오밤중에 출발하고, 혼자 낚시하고, 혼자 먼길을 돌아오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입안마저 껄껄할 메마른 출조이지마는 꼭 그렇지도 않다.
던지고 싶은데 바늘을 던지고, 배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옮기고 싶으면 옮기고,
낚시를 해도 좋고, 달리던 차를 세워 경치 구경을 해도 좋다.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고, 다만 자유롭기 그지 없다.
조황이 나빠도 좋다. 고기를 낚는 즐거움 외에도 얻을 것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장출(長出), 장기출조의 줄인 말이다.
머리아픈 현실이나 일상을 화 악~ 던져 버리고 한 두어달 오로지 낚시만 하며,
오랫동안 맘 내키는 대로 낚시를 가고 싶을 때가 많다. 한강에서 텐트치고 한달을 살거나
강원도 계곡을 누비며 민박을 거처로 삼든 어딘들 어떠랴?
원하는 낚시를 원없이 해보는 것만큼 낚시꾼의 꿈이 있을까...
하지만 막상 그렇게 가도 금방 지루하기 쉬울 것 같다.
다음은 상출(常出), 상시출조의 줄인 말로 집앞에 낚시터가 있거나 차의 뒷트렁크에 언제나
낚시대가 있어서 출 퇴근길에 한번, 오가다 한번, 틈나면 한번....
마치 알콜 중독자처럼, 낚시대를 홀짝인다. 중독이라도 좋다. 내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낚시를 늘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만큼 낚시꾼에게 큰 복은 없다.
조상 9대가 공덕을 쌓아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님 앞으로라도 좋은 일을 많이 하자.
그 다음은 초출(初出), 처녀출조의 의미로, 낚시대를 배우고 혹은 잡고
처음 물가에 고기 잡으러 가는 일이다. 하지만 난 이미 써먹어 버린지 오래군.
고기를 잡으리란 보장도 없고, 길도 낯설고 포인트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첫 출조는
누구에게나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는 소중한 출조이다. 게다가 첫 수를 할 수도 있다면...
평생에 단 한번 뿐인 출조.... 그게 언제 였던가? 기억마저 어렴풋한 난 벌써 아쉽다.
혹시 아직 잊지 않은 사람은 잘 간직하자.
그리고 말출(末出), 마지막출조의 의미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는 출조도 될 수 있고,
혹은 여러 사정상, 더 이상 낚시를 갈 수 없을 때 가는 일생의 마지막 한번 출조도 될 수 있다.
내일 죽을 낚시꾼 사형수가 오늘 한번 낚시를 할 수 있을 때의 마음일까?
초를 나눠가며, 구석구석 끝까지 즐기는 낚시가 될 것 같다.
그게 언제인지 알기만 한다면....
하긴 매번 말출의 심정으로 낚시를 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만출(滿出), 더 이상 낚시를 가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그동안의 출조가 그득 차서 낚시를 가지 않아도 머리와 마음만으로도 고기를 낚을 수 있고,
출조를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 고기를 낚기도 하고 돌을 낚기도 하고 마음을 낚기도 한다.
굳이 바늘에 고기를 꿰지 않아도 온 세상이 낚시니 언제나 즐거움이 그득하다.
낚시와 생활이 구분이 없고 생활이 곧 출조이다.
이렇게 따져 보니 아직 못 즐겨본 출조도 몇 있구만,
실은 출조에 상하고저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낚시꾼에게 별의미가 없는 듯하다.
이름이야 뭐면 어떠랴? 내용이 뭐면 어떠랴?
지금 당장 내 손에 낚시대만 쥐어져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