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잔인한 패턴....
이번주 금요일 밤, 덕풍을 가기로 해 놓고,
나름대로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있다.
조황이 좋다는 내린천이나 다른 곳도 있지만,
굳이 먼 곳을 찾아 가는 이유는 겨울이 되기 전에 덕풍계곡을 한번 보고 싶은 까닭이고,
게다가 좀 늦었겠지만 좋은 때를 훌쩍 지나버린, 차라리 마른듯한 단풍을 보고 싶은 까닭이다.
단풍이라하면, 불 붙는 듯한 붉은 색과 그 보색을 이루는 여전한 푸르름,
그리고 그 둘을 섞어주는 노란 색의 조화...
그리고 각각의 변화와 중첩....
이런 한참의 단풍사진들이 연상되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난 좀 다른 단풍을 즐기게 되었다.
나의 출근길엔 늘 특이한 나무와 만난다. 내 키를 훌쩍 넘는 높은 나무 하나,
그 녀석의 가을은 특이하다.
짙붉은 단풍이 시작되는 듯 하다가, 어느새 진짜 불타버린 듯 입 끝이 검게 말라 삭아든다.
남들의 단풍이 질펀한 잔치라면 그 녀석의 단풍은 오히려 요절한 우인(友人)의 장례식에 가깝다.
공해의 잔상이란 의견도 있지만, 유독 그 녀석만 심한 걸로 봐서
타고난 기질일 것 같다.
가을 내내 만추의 풍만한 단풍 속에서 혼자 메마른 단풍을 뿌리고 있는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고, 그 뒤로 말라가는 단풍 보기를 즐기게 되었다.
피기도 전에 지는 꽃 마냥.....
아마 지금의 덕풍도 그러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 단풍 속에서 산천어 그들도 말라가고 있겠지....
계곡의 녀석들은 벌써 산란이 시작되어 일부는 끝내고 조용히 지친 몸을 쉬고 있다고 한다.
덕풍엔 대부분 양식장 출신이라 우찌될지 모르지만 분위기는 비슷할 것 같다.
가급적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물바지(웨이더)는 가져가도 계류화를 신지 않고,
그냥 등산화로 버틸 생각이다.
깡패도 아니고 남들 연애전선에 훼방 놓는 일은 좀 껄끄러운 일이지만
강원도 조행길이 드문 내겐, 이성으로 날 막기엔 다소 역부족이다....-_-;
가급적 조심스럽게 다녀야 겠다.
그리고 산란을 하고 있다면 먹는 덴 별로 관심이 없겠지?
조행의 또다른 목적은 산천어 님핑을 좀 더 확실히 공부해두고자 하지만,
먹지 않는다면 우찌 혼인색의 산천어 구경을 할 수 있겠나?
그래서 이것 저것 공부하다가 찾아낸 게 있다.
해외의 연어플라이용 훅 중에 보면 좀 잔인한 패턴인지만,
Egg sucking minnow 라는 게 있다.
연어가 열심히 알을 낳아 놓으면 딴 꼬마 고기들이 알을 물고 도망간다.
그걸 흉내낸 훅으로 미노우 훅을 달기 전에 티펫에 알 모양의 비드를 하나 끼우고,
미노우를 달아서 당기면 마치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비록 먹을 생각은 없어도 자기 알 도둑을 쫓으려는 연어는 따라와서 물게 된단다.
어찌보면 모성애를 자극하는 상당히 잔인한 패턴이다.
어제쯤 산천어의 알 크기로 짐작되는 몇가지 굵기와 색상의 비드(구슬)을 구해 뒀지만,
맘 속으로는 쓸까말까 내심, 고민 중이다.
잔인한 패턴....
내가 판단한 잔인의 근거를 찾아보면 모성애라는 이유일 것 같다.
그냥 미끼를 무는 것은 고기의 식탐에 비롯된 거라고 나의 이성은 구분짓고,
인간에게 식탐은 부도덕에 가까우니, 고기에게도 한번쯤 바늘에 걸리는 건 당연한 것이고,
모성애는 순수미 그 자체이니, 고기에게라도 그것을 짓밟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구만...
알고 보면 완전히 인간의 잣대로, 지맘대로 구분짓고 있지 않나?
산천어에게는 먹이를 먹으나 산란을 하나 모두 개체의 생존, 종족의 생존을 위한
동일한 움직임이 아닐까?
차라리 잔인한 바늘이란, 세발갈고리의 트레블 훅이나 무지막지한 큰 바늘과 같은
실질적인 피해를 많이 주는 것들이란 생각이 든다.
나도 인간인 이상, 인간의 잣대로 사는 것이 그럭저럭 합리적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맘 편한 삶으로 전락해버리는 건 여전히 게운치 않다.
하긴 뭐 고기들도 지맘대로 살고 있을테지....^^
잠시 딴 생각으로 자의식을 떨쳐버리려 노력해봤다.
산란에 지쳐 쉬는 녀석들은 어차피 바늘도 물지 않을 꺼란 합리화도 꺼내 본다.
그래도 이 시기에 낚시가서 집적대는 데 대한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다.
물론 녀석들이 문다는 보장은 없지만....-_-;
덕풍의 단풍도 이미 메마를 텐데, 나의 바늘인정 마져 메마를 순 없지.
오늘 밤도 난 부지런히 바늘을 매어,
이것 저것 푸짐하게 차려주마.
비록 물지는 못해도 눈요기라도 실컷 하도록....